가을이 농익어 갑니다. 초겨울의 문턱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편으로 왠지 모를 허전함도 찾아옵니다. 어디로 떠나도 좋을 지금이지만 훌훌 떠나도 좋은 곳이 보물섬 남해군입니다. 아름다운 길 중 하나인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 보물섬으로 와도 좋고 노량대교나 남해대교를 건너와도 괜찮습니다. 가을을 만끽하는 풍성한 여행길은 어디로 가도 좋습니다. 남해까지 왔으면 남해읍 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를 건너면 보물섬 남해군이 나온다.
하동에서 노량대교를 건너 보물섬을 내달리다 남해읍 내 입구인 심천 삼거리에 이르면 커다란 은빛 조형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입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글귀와 함께 활활 타오르는 사이로 칼을 움켜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보입니다.
남해읍 입구인 심천 삼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 칼을 형상화한 조형물
뒤에는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장군의 칼에 새겨진 글귀입니다.
남해읍 심천 삼거리 이순신 장군 칼을 형상화한 조형물 뒤편에는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이라 새겨져 있다. 장군의 칼에 새겨진 글귀다.
심천 삼거리에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가을 햇살이 저와 함께 하는 길이었습니다. 읍내 도심은 작습니다. 그런데도 도심 속에는 걸음을 세우는 조형물이 하나둘 나옵니다.
남해읍 내 도심(화전로)
‘비낀 은하, 강 언덕을 끼고/ 별꽃 가득 피어난 하늘 아래/ 새오듯 바람이 일고 물결은 뛰어//~(중략) 저어 머얼리 적이 밀려오는가/ 파도 소리/ 힘줄 거센 파도 소리//’
이순신 장군의 연이은 승첩과 순국의 일대기를 그린 김용호가 지은 장편 서사시 <남해찬가(南海讚歌)> 일부가 새겨져 있습니다. 김용호는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육주갑(六周甲: 306년)이 되는 임진년(1952년)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조국의 현실에서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남해읍 내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연이은 승첩과 순국의 일대기를 그린 김용호가 지은 장편 서사시 <남해찬가(南海讚歌)> 조형물
조금 전에 보았던 이순신 장군 칼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함께 지금 걷은 읍내 도심 ‘화전로’가 마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자아냅니다.
역사 속으로 성큼 들어선 기분을 느끼며 한 걸음 더 걸음을 옮기면 남해의 민속문화인 ‘덕신 줄당기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반깁니다. 열심히 줄 당기는 모습에 걸음을 세우고 힘차게 응원을 보냅니다.
남해읍 내에 있는 ‘덕산 줄당기기’를 형상화한 조형물
남해시장을 곁을 지나자 남해의 특산물 남해 마늘과 마늘 축제 소개하는 조형물이 쉬어가라 자리를 내어줍니다. 걸터앉아 가져간 캔커피를 마십니다. 바람마저 달곰하게 인사하게 하고 지납니다.
남해읍 내 남해 특산물 마늘을 형상화한 쉼터
읍내 도심 화전로를 거닐며 오가는 사람과 남해 번화가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찬찬히 읍내 한쪽을 거닐다 길 건너로 가자 고려 시대 무장으로 왜구를 무찌른 정지 장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남해의 역사와 문화가 전해주는 깨알 같은 재미가 흥을 더합니다.
남해읍 내 도심 발길 닿는 곳마다 남해의 역사와 문화가 전해주는 깨알 같은 재미가 흥을 더한다.
왜구를 무찌른 최영 장군 이야기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효자문 삼거리입니다.
남해읍 효자문 삼거리 앞에 있는 최영 장군 이야기 안내판
길 너머에 기와 한 채가 서 있습니다. 길을 건너자 ‘귀양살이 장소로 정해진 남해라는 한 곳의 읍은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노량나루를 건너가야 한다~’는 남해문견록 중에서 발췌한 글이 저만치 보입니다. 그 뒤편에 영모문이 있습니다.
남해읍 내 김백렬 영모문
▣ 김백렬 영모문(金栢烈永慕門)
남해군 남해읍 서변리에 있는 효자 김백렬을 기려 세운 효자문이다.
자손 번영을 상징하는 석류나무가 한쪽에서 전각을 들여다보는 저를 내려다봅니다. 남해의 이름난 효자 김백렬(金栢烈 1873~1917)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모문(효자문)입니다. 전각 전면에 영모문이라는 현판이 씌여있고 내부에는 김백렬의 초상화와 행적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남해의 이름난 효자인 김백렬을 기리기 위한 영모문. 김백렬은 부모가 병상에 있을 때는 손수 약을 달여 올리고 만약의 일에 대비해 옷을 벗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김백렬은 지극 정성으로 부모를 섬겼다고 합니다. 부모가 병상에 있을 때는 손수 약을 달여 올리고 만약의 일에 대비해 옷을 벗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남해읍 내 영모문
전각 뒤편에 감나무에 가을이 내려앉아 빨갛게 익어갑니다. ‘잎은 글을 쓰는 종이가 되어 문, 단단한 나무는 화살촉으로 쓰여 무, 겉과 속의 색이 가은 과실이라 충, 노인도 치아 없이 먹을 수 있어 효, 서리가 내려도 늦게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어 절’이라는 감나무가 지닌 ‘문무충효절’ 덕목이 떠올랐습니다.
문득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왜 전화를 걸었냐는 말씀에 “그냥요”.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소중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남해의 이름난 효자 김백렬을 기리기 위한 영모문 뒤편에 있는 감나무. ‘잎은 글을 쓰는 종이가 되어 문, 단단한 나무는 화살촉으로 쓰여 무, 겉과 속의 색이 가은 과실이라 충, 노인도 치아 없이 먹을 수 있어 효, 서리가 내려도 늦게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어 절’이라는 감나무가 지닌 ‘문무충효절’ 덕목이 떠오르게 한다.
남해 읍내를 거닐며 이순신 장군의 충과 김백렬의 효를 배웁니다. 심천 삼거리에서 영모문까지 약 2km의 거리를 마실 가듯 소풍 가듯 거닐며 어제를 마주하고 오늘을 둘러본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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