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도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요즘입니다. 이제 가을을 떠나보내고 겨울을 맞을 때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저물어가도록 뭐 했나 싶은 마음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가을의 끝을 붙잡으며 답답한 마음에 삶의 에너지를 다시 채우고 싶어 남해유배문학관을 찾았습니다. 유배라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잡은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남해유배문학관
▣ 남해유배문학관
남해군 남해읍 남해대로 2745(남변리 555)
관람시간 : 매일 09:00 ~ 17:30
휴관일 : 월요일 휴무(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 1월1일, 명절 당일 휴관
관람료 : 일반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전화 : 055-860-8888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서는데 한쪽에서 푸른 하늘을 향해 나갈 듯이 커다란 배가 보입니다. 실제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화장실입니다. 유배문학관의 화장실은 한양에서 천릿길 넘는 멀리 있는 길을 배 타고 유배 온 것을 뜻하는 배 모양입니다.
남해유배문학관 야외 화장실은 한양에서 천릿길 넘는 멀리 있는 길을 배 타고 유배 온 것을 뜻하는 배 모양이다.
화장실 앞 뜨락에는 여기 남해로 유배 온 김만중이 쓴 사씨남정기를 그림으로 요약한 전시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찬찬히 걸음을 옮기면서 책을 읽는 기분입니다.
남해유배문학관 뜨락에 있는 <사씨남정기> 이야기 전시물
문학관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데 십장생 조형물이 걸음을 붙잡습니다. 그 앞에는 세월을 낚으려는 지 강태공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뒤편으로 초가가 보이고 마루에 선비가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해유배문학관 야외에 있는 낚시하는 조형물
잠시 선비 곁에 앉아 덩달아 하늘을 봅니다. 선비는 1771년(영조 47년) 쉰넷에 남해로 유배를 온 유의양입니다. 이곳에 귀양 온 뒤 유배기행록 <남해문견록>을 지었습니다.
남해유배문학관 야외에 있는 초가에 앉아 유배 온 선비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초가 앞에는 봉천사 묘정비가 서 있습니다. 1692년과 1721년 두 번에 걸쳐 남해로 유배 온 소재 이이명 선생을 기리는 비입니다. 비 뒤편으로 하늘로 통하고자 하는 바람인지 솟대 세 개가 서 있습니다. 솟대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남해의 소식이 멀리 전파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남해유배문학관 뜨락에 있는 솟대
이제 본격적으로 문학관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유배 온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이 또다시 걸음을 세웁니다. 끌려가는 심정이 어떤지 헤아리기조차 어려운데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 등을 떠밉니다.
문학관 바로 앞에는 김만중 동상이 가을 햇볕을 등지고 앉아 있습니다. 유배 온 자신의 처지 비관하기 보다 어머니를 걱정하고 임금을 깨우치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지은 심정을 헤아려봅니다. 동상 옆으로는 남구만, 김구 등 유배 온 이들이 지은 작품들이 빗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남해유배문학관 바로 앞에 있는 김만중 동상이 가을 햇볕을 등지고 앉아 있다.
문학관으로 들어서자 묵향이 와락 안깁니다. 서예 전시가 한창입니다. 전시실 앞에는 1990년 초 태풍으로 고사된 천 년 느티나무가 다듬어져 놓여 있습니다. 천 년을 한결같이 서 있었을 나무가 죽어서도 당당한 자태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남해유배문학관 안 로비에는 1990년 초 태풍으로 고사된 천 년 느티나무가 다듬어져 놓여 있다.
유배 온 총 27종의 어패류의 생태와 잡는 방법 등을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 어보인 <우해이어보> 소개 글 앞에서 걸음을 쉽사리 떨어지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유배 온 지역을 관찰해 기록한 이들의 덕분에 후학들이 쉽게 공부하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인근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러시아 등 외국의 유배 사례를 살펴보는 기회도 색다릅니다.
인근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러시아 등 외국의 유배 사례를 살펴보는 기회도 색다르다.
유배의 종류를 살피며 유배객 감금 체험실에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 한 사람 앉을 공간 유배객의 이야기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옵니다. 체험객이야 나가면 그만이지만 언제 유배가 풀릴지 알 수 없는 유배객의 처지에서는 암담하고 절망한 마음이 솟구쳤을 겁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유배객의 심정을 느껴보는 유배체험실
정계 복귀 가능성이 큰 유배객 윤양래를 위해 18일 동안의 유배길에 며칠씩 쉬어가기도 하고 인근 수령들의 접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해랑이가 들려주는 초호화판 유배길 에피소드는 쓴웃음만 짓게 합니다.
남해의 상징 캐릭터 해랑이가 들려주는 남해 유배 이야기실
남해에 유배된 사람들이 느낀 유배객으로서의 고독과 절망의 감정을 표현한 남해 유배문학 전시실.
‘날마다 고향 그리워 높은 봉우리 오르니/ 소식은 아득하고 바다와 산은 겹겹이로구나/ 먹거리 떨어지니 아내는 약을 봉하여서/ 환약을 보내고 어머니는 옷 지어 부쳤네/ 곤궁한 처지에 홀로 시 읊으니 흥도 나지 않아/ 근심어린 곳 술잔 가득 들이켜 쉽게 취하지/ 스스로 생애 보아하니 남쪽 땅에서 늙겠고/ 한 줄기 기쁜 소리는 북쪽서 온 기러기라네//’
경기체가 <화전별곡>을 지은 자암 김구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사향(思鄕)을 읊조리는데 가슴 한켠이 먹먹해집니다. <사씨남정기> 한글 필사본을 관람하면서 문득 고등학교 시절 어렵게 배웠던 고전 문학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를 다녀간 뒤 공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남해유배문학관에 전시 중인 <사씨남정기> 한글 필사본을 관람하면서 문득 고등학교 시절 어렵게 배웠던 고전 문학을 떠올리게 한다.
<난중일기>도 한쪽에 있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에서 졸지에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백의종군을 명 받은 이순신 장군도 어쩌면 유배 온 이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4수 끝에 32살에 겨우 시험에 합격한 이순신 장군도 역경을 딛고 올라섰기에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23전 23승의 신화를 만들었겠지요.
남해유배문학관 내 유배문학 전시실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유배 온 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오히려 유배라는 위기를 기회로 잡은 이들의 모습에서 삶의 활력소를 얻습니다. 또한, 고즈넉한 문학관 뜨락의 풍경이 마음의 평화를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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