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갑니다. 겨울이 저만치 다가옵니다. 가을을 그냥 보내기 싫다면 우거진 숲과 바다가 함께하는 길을 걸어보면 좋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11월의 추천 길 중 하나가 남해 바래길 13코스 ‘이순신 호국길’입니다. 노량해전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육지에 닿은 이락사가 출발점입니다.
남해 바래길 13코스의 출발점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육지에 닿은 이락사가 있는 이순신순국공원
▣ 남해 바래길 13코스
일명 ‘이순신 호국길’로 이락사와 충렬사를 연결하는 7.2km 길이다.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 ~ 첨망대 ~ 이순신영상관 ~ 월곡항 ~ 감암위판장 ~ 남해 충렬사 .
2시간 30분 소요, 난이도 보통
보물섬 남해군으로 건너가는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양쪽 하동군 금남면과 남해군 설천면 마을 이름은 노량(露梁)마을 입니다. 한양에서 천릿길 남해섬으로 유배당한 선비들의 눈에 나룻배에 부딪히는 물방울이 이슬방울로 보였다고 ‘노량’이라고도 합니다.
노량대교을 건너 오른쪽으로 읍내 방향으로 4km 정도 더 가면 커다란 거북선 모양의 건물과 한옥 여러 채가 나옵니다.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로 ‘이락사(李落祠)’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순신순국공원’입니다. 여기 고현면 차면리 앞바다를 관음포라 부르는데 관음보살(觀音菩薩)의 관음입니다. 고려말 왜구를 물리친 큰 공을 세운 정지(1347~1391) 장군의 '관음포대첩'에도 등장하는 곳입니다.
남해 이순신순국공원에 있는 이순신영상관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락사로 향했습니다. 커다란 소나무 네 그루가 마치 해를 떠받치듯 서 있습니다. 지난여름의 뙤약볕을 닮은 붉은빛의 배롱나무는 모두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매끄러운 가지만 햇살에 빛납니다.
남해 이락사로 가는 길, 커다란 소나무 네 그루가 마치 해를 떠받치듯 서 있다.
이락사 앞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하늘 향해 힘차게 솟아 있습니다. 유언비에는 "戰方急 愼勿言我死(전투가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는 충무공의 유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남해 이락사 입구
유언비를 지나면 바로 충무공의 전사를 기리기 위해 전몰지에 세운 사당인 이락사가 나옵니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은 선조 31년(1598) 음력 11월 19일, 고니시 부대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부대와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해협에서 시작되어 이락사 앞바다인 관음포에서 끝났습니다.
남해 이락사 앞뜰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언비. 유언비에는 "戰方急 愼勿言我死(전투가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는 충무공의 유언이 새겨져 있다.
충무공은 이 싸움에서 손수 북채를 쥐고 북을 두드리며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다가 일본군의 조총의 유탄에 맞아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뒤 충무공의 시신을 육지로 옮긴 곳이 관음포입니다. 관음포 옆에 세워진 사당이 이락사입니다. 충무공이 돌아가시고 234년 후인 1832년(순조 32년)에 충무공의 8대손인 이항권이 통제사를 지내던 시절에 이곳에 충무공의 유허비를 세운 것이 이락사의 시초라고 합니다.
남해 이락사
이락사라 적힌 현판을 들어서면 바로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대성운해(大星隕海)’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습니다.
남해 이락사라 적힌 현판을 들어서면 바로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대성운해(大星隕海)’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대성운해 편액 아래에는 도깨비뿔을 한 용머리가 붙어 있는데 무섭지 않습니다. 오히려 앙증스럽습니다. 어서와 인사를 건네는 듯 웃으며 반기는 모양새입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공의 기상인 양 하늘 향해 우뚝 서 있습니다.
남해 이락사 '대성운해(大星隕海)’ 편액 아래에는 도깨비뿔을 한 용머리가 붙어 있는데 앙증스럽다. 어서와 인사를 건네는 듯 웃으며 반기는 모양새다.
이락사를 나와 첨망대(瞻望臺)로 향했습니다. 첨망대로 가는 500m 길은 충무공의 성정을 상징하는 키 큰 소나무들이 좌우에 줄지어 함께 합니다. 솔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금세 땀을 식혀줍니다.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남해 이락사에서 첨망대로 가는 길.
1991년에 세워진 첨망대에 이르자 노량 앞바다가 바로 지척입니다. 멀리 광양제철소도 보입니다.
남해 이락사에서 첨망대로 가는 길.
“바다는 전투의 흔적을 신속히 지웠다. 저녁에 사라진 빛들이 아침이면 수평선 안쪽 바다를 가득 채우고 반짝였다. 지나간 것들의 흔적이 물 위에는 없었고 바다는 언제나 새로운 바다였다.”
라는 김훈이 지은 소설 <칼의 노래> 구절이 떠오릅니다. 지금 보이는 바다는 그날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남해 관음포 첨망대에서 바라본 광양만
눈을 감자 일본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충무공을 비롯한 조선 민중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카랑카랑 들려옵니다. 조·명 연합함대 150척은 왜선 500여 척을 부서며 7년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남해 관음포 첨망대에서 바라본 광양만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칼의 노래> 중에서)”
남해 관음포 첨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바다에서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지였던 노량해전이 펼쳐졌다.
첨망대에서 나와 돌아가는 길, 올 때는 미처 몰랐던 동백들이 보였습니다. 소나무 사이사이로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강렬한 붉은 꽃 피우는 동백이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4월이면 꽃잎이 시들기도 전에 통째로 떨어지는 동백나무를 보면서 충무공을 떠올렸습니다.
남해 이락사에서 관음포 첨망대까지 500m 길에는 동백나무가 심어있다. 동백은 나뭇가지에서 피고, 땅에 떨어져서 한 번 더 피고, 꽃을 본 우리 마음에서 마지막으로 피듯 충무공을 기리는 우리 마음에 다시금 피어난다.
동백은 나뭇가지에서 피고, 땅에 떨어져서 한 번 더 피고, 꽃을 본 우리 마음에서 마지막으로 피듯 충무공을 기리는 우리 마음에 다시금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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