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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약초식당, 몸이 먼저 고른 점심

1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토요일에도 함께 근무하는 직장 동료가 점심을 밖에서 먹자는 반가운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곧바로 응했습니다. 원래 가려던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휴무였습니다. 더 고민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떠오른 이름은 약초식당이었습니다. 언제 가도 보통 이상을 유지하는 곳입니다. 오늘도 기준을 넘겼습니다.산청읍 내에서 경호강을 건너 동의보감촌 방향으로 가면 금서면입니다. 강을 따라가다 보면 흰 벽의 작은 건물이 보입니다. 산청약초식당입니다. 차를 세우고 문을 여는 순간 공기가 달라집니다. 겨울바람을 막아낸 온기가 식당 안에 고여 있습니다. 밥이 먼저 말을 겁니다. 반찬이 먼저 놓이는 점심식당은 홀과 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방은 예전 좌식 공간이었고 지금은 모두 입식입니..

경남이야기 2026.02.01

진주시립교향악단, 뒤벼리를 닮은 붉고 힘찬 새해 선물

2026년 1월 중순, 진주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가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렸습니다.이번 공연은 네 대의 호른 협주곡과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으로 구성된 신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진주 시민에게는 한 해를 음악으로 시작하는 상징적인 저녁이었습니다. 뒤벼리와 경남문화예술회관, 공연 전의 풍경퇴근길에 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공연 시작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했습니다.회관 앞 뒤벼리는 겨울 저녁빛을 받아 붉게 서 있었습니다. 조명을 받은 절벽은 자연이 만든 무대처럼 보였고,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처럼 느껴졌습니다.회관 안 카페에는 발달장애 예술가 효석의 유화 〈도시의 밤〉이 걸려 있었습니다. 붉은 노을과 보랏빛 어둠이 겹친 도심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림 앞에 서 있으니 공연이 이미 시작된 듯..

진주 속 진주 2026.01.31

황금박쥐상 386억, 이 돈은 혈세일까요

아내가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일이 있습니다. 큰아들 돌반지를 일찍 팔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무 해 전 돌반지는 5만 원이었습니다. 지금은 백만 원이 넘습니다. 시간은 금값을 바꾸었습니다. 기억의 무게도 함께 달라졌습니다. 1월 28일자 동아일보 지면에서도 같은 감정이 스쳤습니다. 신문 제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금은값 폭등에 ‘함평 황금박쥐상’ 27억→386억”. 기사에 따르면 순금 162kg과 은 281kg으로 만든 함평 황금박쥐상은 금값 급등으로 가치가 386억 원을 넘겼습니다. 2008년 제작 당시 재료비는 약 27억 원이었습니다. 18년 만에 13배 이상 오른 셈입니다. 가로 1.5m, 높이 2.1m의 이 조형물은 은으로 된 원형 위에 순금으로 만든 황금박쥐 6마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

해찬솔일기 2026.01.30

진주닭칼국수, 점심 콜 한 통으로 식구가 된 날

“점심 콜?”전화기 너머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묻는 말이었지만 함께 하자는 정겨운 말입니다. 평일 휴무인 날, 한마디가 하루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반차를 낸 아내, 군대에서 휴가 나온 둘째, 그리고 나.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주 상대동 현대아파트 뒤, 선학산으로 오르는 길로 향했습니다.골목은 길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담장과 건물 벽 사이로 겨울 햇빛이 흘러들었습니다.빛의 끝에 닭칼국수집이 있습니다.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먼저 들러 먹었던 집입니다. 맛나다는 말은 우리 가족에게는 이미 검증이 끝난 곳이었습니다. 전화 한 통, 길이 열리다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가로 햇빛이 쏟아졌습니다.나무색 테이블, 소박한 의자, 점심시간 특유의 조용한 소음. 주문을 마치자 배추김치와 무김치가 먼저 나옵니다. 큼직합니..

진주 속 진주 2026.01.29

진주 늘새솔 한식 디저트 카페

“특별한 곳으로 모실게요.”점심을 먹고 난 뒤, 아내가 말했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함께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진주 선학산으로 오르는 길목, 상대현대아파트 뒤편. 이 길에 정말 카페가 있을까 싶어 반신반의했지만, 문 앞에 서는 순간 알았습니다. 오늘은 손님이 아니라, 정중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되는 날이라는 것을요.노란 외벽의 작은 집, 늘새솔. 진주 선학산 골목에 자리한 단층주택을 개조한 한식 디저트 카페입니다.가정집이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문을 여는 순간부터 마음이 낮아집니다. 이곳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는 공간입니다.차를 주문하고 바로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먼저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벽마다 놓인 아기자기한 소품들, 조용히 놓인 장식들이 일상에 쌓인 ..

진주 속 진주 2026.01.28

신문 사진 속 커피 한 잔이 멈추게 한 이유

– 덴마크 커피값·물가가 말해준 세금과 복지의 구조 남강 쪽 창으로 겨울 햇살이 들어오던 아침이었습니다. 걷지 않는 날에도 남강은 늘 하루의 방향을 정해 줍니다. 신문을 읽다 눈이 멈췄습니다. 기사 내용이 아니라 사진 속 종이컵 때문이었습니다. 그린란드에서 열린 덴마크 군함 개방 행사. 군함의 좁은 선내로 들어온 주민들 손에 들린 커피 종이잔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전투 장비도 국기도 아닌 커피였습니다. 짙은 검청색 바탕의 종이컵을 들고 무리 속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 사진은 1월 26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 이후 그린란드 문제를 취재하러 파견된 특파원의 기사에 담긴 장면이었습니다. 정치 기사 한 귀퉁이에 실린 사진이었지만, 제 시..

해찬솔일기 2026.01.27

빛이 머무는 밤, 진주빛마루

밤에 피는 장미가 있다면 바로 ‘진주빛마루’입니다. 밤의 진주는 낮보다 말수가 적습니다. 대신 빛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옛 단목초등학교가 있던 자리, 이제는 ‘진주빛마루’라 불리는 공간에 들어서면 어둠은 곧바로 물러섭니다. 아내와 나란히 걷는 발걸음 앞에 빛이 먼저 길을 내어줍니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서 빛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집니다. 이 밤의 산책은 걷는 게 아니라 빛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갈대 물결 위로 열린, 금빛의 산책로입구를 지나자 하얀 덱길이 부드럽게 휘어집니다. 길은 직선이 아니라 머뭇거리는 곡선입니다. 난간 아래에 박힌 작은 조명들이 발밑을 조심스럽게 밝히며 길의 윤곽만 남겨둡니다. 밝히는 것이 아니라 안심시키는 빛입니다. 그 빛을 받은 갈대들은 낮의 색을 버..

진주 속 진주 2026.01.26

진주 촉석루에서 바람맞고, 진양호에서 마음을 말리다

– 겨울날 진주 산책, 바람이 하루를 정리해 준 길 진주에서 바람을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촉석루입니다. 그 바람을 천천히 돌려보내는 곳은 진양호입니다.추운 날이었습니다. 진주성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마음도 함께 굳은 듯했습니다. 그래도 촉석루에 오르면, 바람이 먼저 말을 걸어올 줄 알았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도착한 바람이 반길 줄 알았습니다.성문 앞마당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하늘은 모든 구름을 몰아내고 해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촉석루 기와 위에는 겨울 햇살이 얇게 걸려 있었습니다.사람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소리가 또렷해집니다. 깃발이 흔들리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 바람이 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촉석루,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지 않은 바람촉..

진주 속 진주 2026.01.25

통영 원문공원에서 숨을 고르다, 충혼 넋을 기리다

그저 숨을 고르고 싶었습니다. 1월 9일, 통영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차를 세우고 원문공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어디를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멈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공원은 통영 시내로 오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자리이지만, 한번 발을 들이면 걸음이 느려집니다. 이곳은 늘 목적지가 아니라 일상 속 쉼표입니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낮추고, 호국 충혼의 넋을 기리는 자리. 겨울의 공기는 차분했고 햇빛은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도심의 입구에서 만나는 기억차를 세운 자리에서 바라본 언덕 위는 고요했습니다.해병대 상륙작전을 기리는 전적비는 계절이 바뀌어도 같은 자세로 서 있었고, 그 아래에 새겨진 사람들의 형상은 여전히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장..

경남이야기 2026.01.24

통영 충렬사, 새해의 고요에서 만나는 이순신

해가 바뀌면 사람은 곧잘 다짐합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마음을 세우기도 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새출발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해돋이 명소도 좋지만, 의미를 품은 공간에서 마음을 다지는 일도 의미가 색다르고 깊습니다. 서울과 대전에 현충원이 있다면 통영에는 충렬사가 있습니다. 새해의 시작을 여기에서 출발했습니다.통영 도심에서 멀지 않은 언덕 위, 충렬사는 늘 조용히 사람을 맞습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집니다. 숨이 길어지고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도시의 소리가 낮아지고 마음의 속도도 함께 내려옵니다. 이곳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람을 고르게 만드는 자리입니다. 돌계단에서 시작되는 충렬사의 시간마당에는 300년을 넘긴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계절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아름드리 동백이 저만치에서 ..

경남이야기 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