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고려거란전쟁 영웅 하공진 모신 진주 경절사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3. 11.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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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전쟁>와 더불어 가볼 만한 곳 - 진주 경절사

 

 

고려 거란전쟁은 당시 최강국인 거란제국과 고려가 맞붙은 26년간의 전쟁입니다.

여섯 차례에 걸친 거란의 침략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으로 거란군을 전멸시킨 자랑스러운 역사가 11월 11일 KBS 드라마 <고려 거란전쟁>으로 방영됩니다.

 

 

이 드라마를 보시기 전에 찾아가 보면 좋은 유적지가 진주에는 2곳이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호국의 성지인 진주성 내 경절사(擎節祠)입니다. 고려 충신 하공진(河拱振,?~1011) 장군을 모신 사당입니다.

 

진주성 정문인 공북문을 지나자,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이 나옵니다.

 

 

장군 뒤편으로 난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옛 경남도청의 정문이었던 영남포정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영남포정사를 지나면 왼편 3m 거리에 하륜(河崙, 1348~1416) 선생의 탄생지를 알리는 비가 있습니다. 선생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제1, 2차 왕자의 난을 통해 태종으로 즉위하도록 도왔습니다.

 

 

태종은 하륜을 자신의 장자방(한 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충신)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륜 선생 태지(胎地) 표지석을 지나면 저만치에서 사당이 나옵니다. 경절사입니다.

 

 

외삼문인 덕망이나 인품을 사모하여 우러러본다는 뜻을 가진 경앙문(景仰門)이 나옵니다.

 

 

찾았을 때는 바닥 석 공사 중이었습니다. 공사 중이지만 둘러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동쪽에 수덕재(修德齋)가 있고 맞은 편에 충의당(忠義堂)이 있습니다.

 

 

충의당 앞쪽에 <아시고려인 불감유이심(我是高麗人 不敢有二心)>이라는 빗돌이 서 있습니다.

 

 

나는 고려인이다. 어찌 감히 두 마음을 먹겠는가.”라며 거란 성종에게 일갈하는 고려의 충신 하공진 선생의 말씀이 울려오는 듯합니다.

 

 

빗돌을 뒤로 하고 내삼문인 열일문(烈日門)을 향할 때 계단 양쪽에 해태를 닮은 형상의 조형물이 사악한 기운을 몰아냅니다.

 

 

문을 지나자, 정절을 떠 받든다는 경절사가 나옵니다.

 

 

사당에는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잠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습니다.

 

 

고려 현종 1(1010) 선생이 상서좌사낭중으로 있으면서 고려에 입조한 여진족 95명을 죽인 죄로 유배 중일 때 거란제국 요나라 성종이 고려 목종을 시해한 강조의 죄를 묻는다며 고려를 침략하자 관직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때 고려 현종은 강감찬 장군의 권유로 수도 개경을 버리고 남쪽으로 몽진 중이었습니다. 서희가 거란의 침략군 소손녕(蕭遜寧)과 담판해 강동 6주를 얻은 거란 1차 전쟁과 달리 2차 전쟁은 1차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거란군에 맞설 중앙군은 소멸했고 고려 임금은 호위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피난 가는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현종을 뒤따라가 거란군의 철수 교섭을 자청했습니다. 선생이 거란 성종과 담판을 벌여 군대를 철수 시키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볼모로 거란으로 끌려갔습니다. 거란 성종의 신임을 얻어 연경(燕京)으로 옮겨져 양가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았지만, 한시도 고려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선생은 평소 준마(駿馬)를 많이 사 고려로 가는 길에 배치하고 도망할 계획이었지만 탄로가 나자, 심문을 받았습니다. 거란 성종의 온갖 심문과 회유에도 거란 신하가 될 것을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나는 고려인이다. 어찌 감히 두 마음을 먹겠는가.”라는 선생의 일갈에 결국 거란 왕은 선생을 죽이고 간 마저 씹어 먹을 정도로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후에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郎)에 추증되었습니다.

 

 

경절사를 둘러보고 외삼문을 나오자, 봉황과 돼지 형상의 조형물이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풍경에 마음마저 평온이 깃듭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는 허투루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공진 선생과 같은 충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진주를 일컬어 충절의 도시라 하는지 아는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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