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고려거란전쟁 영웅 강민첨 모신 진주 은열사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3. 11.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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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고려거란전쟁>과 더불어 가볼만한 곳- 진주 은열사

 

 

고려 거란 전쟁은 당시 최강국인 거란제국과 고려가 맞붙은 26년간의 전쟁입니다. 여섯 차례에 걸친 거란의 침략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으로 거란군을 전멸시킨 자랑스러운 역사가 11월 11일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으로 방영됩니다. 이 드라마를 보시기 전에 찾아가 보면 좋은 유적지가 진주에는 2곳이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시내에서 도동지역으로 넘어가는 말티고개 입구 삼거리에 있는 은열사(殷烈祠)입니다.

 

 
은열사는 옥봉삼거리 앞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습니다. 이곳은 고려 거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 상원수(총사령관)를 도와 부원수(부사령관)로 참전한 은열 강민첨(殷烈 姜民瞻,963~1021) 장군의 탄생지입니다. 입구에 이르면 ‘고려 공신 병부상서 강민첨 장군 탄생지 - 은열사 경상남도 기념물 제14호’라는 선 간판이 우리를 반깁니다.
 

 
은열사로 들어서기 전 입구에는 마치 주렁주렁 매단 훈장 같은 안내판이 연달아 3개가 이어져 있습니다. 먼저 진주 개경원 터 안내판입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 출장 온 벼슬아치가 묵던 일종의 공공여관이 개경원인데 이곳에 그 터가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또 하나는 은열사 강민첨 초상에 관한 글입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보물 제58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은열사 소장본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53호입니다.
 
보물 <강민첨 초상(姜民瞻肖像)>은 강민첨 장군을 그린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61.3㎝, 세로 80㎝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개에 따르면 과거에 급제한 후 쓰던 모자인 복두에 정장하고 홀()을 들고 앉아서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반신상이다. 의자 등받이에 있는 호랑이 가죽은 18세기 초상화의 특징을 보여준다.’라고 합니다. 이 그림은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 정조 12년(1788) 박춘빈이 원본을 그대로 옮겨 그린 그림이지만 고려시대 초상화가 희귀한 상황에서 고려 공신상 형식과 표현형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나란히 세워져 있는 안내판 3개를 읽고 나면 절로 역사 공부가 됩니다. 안내판을 읽고 난 뒤 솟을대문인 양양문(洋洋門)이 나옵니다.
 

 
샘물이 흐르고 흘러가듯 장군을 기리는 마음도 이어지리라는 다짐처럼 느껴집니다. 큰 바다처럼 넓은 문을 지나자, 은 열사가 나옵니다.
 

은열사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경원당(景源堂), 서쪽으로 개경재(開慶齋)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당에는 은열 강민첨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장군은 1018년 거란(契丹)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강감찬(姜邯贊) 원수를 도와 부원수로 출전합니다. 흥화진(興化鎭, 현재 평안북도 의주시 일대) 에서 격파했습니다.
 

 
흥화진(의주)을 흐르는 하천을 소가죽으로 꿰어 물은 막은 뒤 거란군이 마음 놓고 건너가기를 기다렸다가 수공을 가해서 강을 건너는 거란군의 허리를 끊고 매복한 기병을 돌격시켜 거란군을 크게 격파하였습니다.
 

이에 거란군이 바로 개경(開京)으로 들이치자, 이들을 추격해 자산(慈山)에서 크게 이겼습니다. 이런 전공으로 1019년 응양상장군 주국 우산기상시(鷹揚上將軍 柱國 右散騎常侍)에 올랐습니다.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으로 녹훈(錄勳)되었습니다. 다음 해 오늘날 국방부 장관과 같은 지중추사(知中樞事)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올랐습니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주어진 토지와 백성인 식읍(食邑)을 받았던 장군은 자신의 식읍이었던 하동군 악양, 화개, 적량, 고전면 지역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고려 현종 12년(1021년)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고려 조정은 3일 동안 조회를 하지 않았고,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탄생지인 곳에 사당을 지어 봄, 가을로 충절과 은혜를 기렸다고 합니다.
 

 
고려 문종이 즉위하자 아래와 같은 조서를 내렸다고 합니다.
 
대중상부(大中祥符 : 북송 眞宗의 연호) 11(1018) 거란이 무단히 침입했을 때, 병부상서(兵部尙書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강민첨이 힘껏 싸워 반령(盤嶺)의 들에서 크게 승리했다. 거란이 패주하면서 버리고 간 무기와 갑옷들로 다니는 길이 막힐 지경이었으며, 이 전투에서 1만 명을 사로잡거나 목베었다. 그 전공을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표창을 함이 마땅하거니와 공신각에 초상을 걸어서 후세 사람들의 모범이 되게 하라. (국역 고려사: 열전,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사당 옆에는 유허비(遺墟碑)가 있습니다.
 

고려. KOREA. 이 이름을 세계에 알린 강민첨 장군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이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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