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울다 목이 쉬어버린 아이를 부둥켜안고 나도 퍼질러 울었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1. 5.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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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아지매들이 만든 들꽃어린이집“잘 놀아야 잘 큰다.”

 

 

“울다가 울다가 목이 쉬어버린 아이를 부둥켜안고 나도 퍼질러 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경남 진주시 금산면 들꽃어린이집을 개원 기념자료집에 실린 글 중 일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이도, 엄마도 울었을까?

 

2층에 위치한 들꽃어린이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모퉁이.

 

농촌이나 도시나 다 그렇겠지만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제일 걱정이 육아다. 젖먹이를 업고 들에서 일하고 간혹 하우스 한쪽 귀퉁이 마루 위에 눕혀놓고 일하는 여성농민들.

걸음마를 배우고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 뒤를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이건 농약이야. 아주 위험한 거니 만지면 안 돼”, “여긴 물이 깊어서 빠지면 큰일 난다. 가까이 가지마” 몇 번씩 이르고 위험한 물건을 갈무리하는 여성농민이자 엄마. 엄마가 잠깐 한눈을 팔면 아이는 어느새 경운기에 코를 처박거나 흙을 주워 먹기 일쑤. 아침에 일 나가면서 옷을 서너 벌씩 챙겨가 갈아입히지만 아이는 늘 눈물과 흙범벅에 땟국이 흐른다. 당시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금산면에는 어린이집이 거의 없었다. 농부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모신 아이들은 보호자들의 손길 없이 혼자 알아서 놀던 때였다. 그쯤 인근 대곡면 농업용 수로에 아이의 익사사고가 발생하면서 농부의 아이들을 봐줄 수 있는 어린이집을 꿈꾸게 되었다.

 

작은 텃밭.

 

 

옥상에 있는 텃밭. 작은 자투리 공간도 텃밭이며 화분으로 식물을 키우고 있다.

교실에 있는 콩나물 시루. 콩나무를 직접 키워보려고 가져온거라고... 


 

 

 

도시에 흔한 놀이방이며 유치원도 농촌지역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농촌실정에 맞지 않는 운영에 들로 일 나갈 때 맡기고 일 끝나는 저녁에 데려오는 농촌에 맞는 탁아소를 만들자고 진양군(현 진주시의 시군통합전)여성농민회 <아지매>들이 손을 맞잡고 두려움 반, 희망 반으로 일을 벌였다.

 

턱없이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생전 처음 장사꾼이 되어 도시 빈터에 난전을 열어 부침개도 구워 팔고 손수 만든 딸기잼도 팔았다.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직접 공사도 거들었다. 힘겨운 과정 속에 모두들 하나둘 지쳐갈 무렵 탁아소 사업을 포기하자는 의견도 나왔단다. 주위의 크고 작은 도움들이 다시금 이들을 다시 불러 세웠다. 또한 내 아이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내 손으로 마련해 보자던 아지매들의 부푼 꿈과 희망이 다시금 버팀목이 되었다.

 

<잘 놀아야 잘 큰다.>를 중심으로 어린이집 현황 소개판.

 

이런 우여곡절 속에 들꽃어린이집은 1994년 11월 24일 경남 진주시 금산면 장사리 우체국 건너편에 농촌아이들의 건강한 자람터, 진주여성농민회부설 들꽃어린이집으로 개원했다. 문은 연 들꽃어린이집은 공부를 하지 않고 오히려 놀기를, 그것도 <잘 놀기>를 적극 권유한다. 오죽하면 어린이집 곳곳이며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알림문에도 <잘 놀아야 잘 큰다>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이상한 어린이집은 잘 놀아야한다며 들로 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길 좋아 한다. 공책에 가나다라 적고 학습지라는 교재를 가지고 가르치기 보다는 그림책을 이용한 문학활동을 비롯 들과 산에서 직접 식물, 곤충 등을 찾아보고 살펴보는 <생태교육>을 하고 있다.

 

어린이집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린이 헌장과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자는 당부의 말씀이 먼저 반긴다.

 

교통안전 영상을 보는 아이들.

 

영상에서 본 교통안전을 교실에서 재현해 직접 횡단보도는 건너는 상황을 연출하는 아이들.

 

간식이 아니라 새참시간.

여느 어린이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딜이 먹는 사과 한쪽도 모두 유기농이다.

 

6~7세반 아이들이 이용하는 백두산반. 

 

내가 찾았을 때는 봄을 주제로 한주일 배운다. 이른바 과학동화 <신기한 스쿨버스>처럼 테마를 정해 교실 안과 밖에서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배운다.

한주 교육일정을 보면 텃밭만들기.나무껍질프로타쥬,꽃이름단어책쓰기,꽃이름 퍼즐맞추기,모자르트 봄의 노래 듣기,꽃모양바람개비만들기,노래 꿀벌의 여행,게임 고사리꺽기 등등...

 

들꽃어린이집은 비가 와도 밖에 나간다.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나가면 또다른 세상을 볼 수 있기에... 다행히 이날은 햇살이 가득했다.물론 비가 많이 오거나 햇살이 세상에 비출때보다야 덜 간다. 들꽃어린이집의 선생님들은 귀찮은지도 않은지 자주, 너무 자주 아이들과 들과 산으로 나간다. 하루 1회 이상.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아이들을 밖에 데리고 나가면 얼마나 많이 신경쓰이고 준비해야하는지.

 

놀이터로 걸어가면서 보도블럭 사이에 낀 민들레를 저마다 한번씩 불어보는 아이들. 민들레 훌씨처럼 무럭무럭 자라길...

 

아직 어린이집 전용 놀이터가 없어 근처 공용놀이터를 이용하는데 올해 9월이면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전하면 더 넓은 곳에서 어린이집 놀이터 등에서 신나게 놀수 있을 예정이다.

 

아침 새참먹고 나들이 다녀오니 어느새 점심.

 

이날 점심 메뉴는 자장밥. 식당 메뉴판에 붙은 한달 음식 차림표는 기장밥,찰밥,보리밥,새싹비빕밥,흑미밥 등이 올라와 있다. 마시는 음료도 결명자차,보리차,옥수수차,녹차 등이다. 새참으로 나오는 것도 유기농 우유, 산양유, 유기농건빵,유기농와플과자 등등 온통 유기농이다.

 

 

농민단체가 만든 까닭에 들꽃어린이집의 식단은 다른 육아시설보다 먹거리에 더욱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식재료 중 95%가 유기농이고 나머지 5%도 지역 농민들에게 직거래로 국산 참기름,들기름,쌀 등을 구입해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다. 어린이집이 돈을 번느 수단이 아닌까닭에 지원받거나 받은 보육료는 거의 대부분 다시 아이들에게 돌아가 이렇게 먹거리를 건강하고 풍성하게 한다.

 

이제는 초등학생이 된 아들만 셋을 둔 나역시 들꽃어린이집에 아이를 모두 보냈다. 그것은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사진만 찍고 오는 현장체험학습이 아니다. 예전 큰 아이를 근처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 달달이 화일에 꽃혀 오는 아이의 사진에 짜증이 났다. 고구마 앞에 아이친구들과 돌아가면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작 고구마를 캐보지도 못한... 보여주기 위한 사진에 넌저리가 났기에.

그런데 들꽃어린이집은 정말 흙 만지고 코구멍에 바람 쐬며 온몸으로 느끼고 오는 아이들의 종알거리는 이야기에 실내에 갇혀 사는 나는 자연의 소식을 접했다.

 

 

농사짓는 아지매들이 만든 “들꽃 어린이집“

그 속에서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어울려 더불어 함께살아가는 세상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낀다.

농심(農心)을 가진 아이들은 이름 없는 들꽃도 잡초라고 무시하거나 뽑아버리지 않는다. 이제는 농부의 자식들만이 아니라 지역의 소외되고 힘겨운 이들을 포듬은 열린 어린이집으로 거듭나고 있다.

 

 

 

 

 

○원장보다는 <딸기선생님>으로 불리는 조성주원장과 미니인터뷰

 

 

대기자가 많아서 줄을 서서 입학을 기다린다고 하는데 입학자격과 원생들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잘 놀아야 잘 큰다>는 교육철학이 어린이집과 맞다면 입학자격이 됩니다. 현재 37명의 원생 중에서 농업관련 일을 하는 부모를 둔 자녀 8명입니다. 아무래도 입학우선 순서는 농업인자녀, 다문화가정 자녀, 저소득층자녀, 봉사활동가정 자녀를 우선 선발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이 지향하는 교육운영방침이나 철학이 뭔가요?

<잘 놀아야 잘 큰다>입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전교육이거나 성장, 발달, 변화를 추구하는 목표 지향적 교육이 아닌 “지금 여기 우리는 행복한가 ” 라는 전제하에서 예전의 조상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교실이 따로 없고 어린이집의 실내는 물론이고 바깥이 모두 교육의 현장이고 놀이터입니다. 동네시장, 골목, 뒷산, 논, 밭, 친구집, 지역의 다양한 기관 등 사람이 살고 자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교실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경험들이 우리 아이들이 커 가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들꽃은 여타 어린이집과 달리 학부모회가 구성되어 있고 학부모를 상대로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뭔가요?

들꽃어린이집이 지향하는 교육을 같이 해나가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집만의 일방적인 교육이 아닌 아이들, 부모님, 선생님이 함께하는 교육을 하기위해서는 꼭 소통을 할 수 있는 부모회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고추농사를 짓는 김규태 어머님이 수고하셨고 올해는 작물 모종을 키우고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시는 강희숙 어머님이 회장님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올해 중으로 새로운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고 하는데 어디에 어떻게 건립하고 있나요?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에 친환경 목조건물로 9월 완공 목표로 건립 중입니다. 토지는 자체로 매입했고 건물공사비 약 3억여원은 희망재단에서 2억원, 도비 5천5백만원, 시비 5천만 지원받아 1층 70평, 2층 20평으로 지어집니다.

 

 

입학시키고자 하는 학부모 등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이는 어린이집 교사들만 돌보는 게 아닙니다. 우리 들꽃 아이들, 부모님들, 선생님들 우리 모두가 서로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어린이집이 되겠습니다.

 

 

들꽃어린이집 홈페이지 http://www.jinyeonong.net/flower/

연락처 경남 진주시 금산면 장사리 333-8번지/055)761-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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