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사천여행, 사천(동성) 이씨의 뿌리를 찾다 - 사천 조원사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9. 3.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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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동성) 이씨의 시조를 모신 조원사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일세, 꽃 좋고 열매도 많네,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 아니 그칠세, 내가 되어 바다에 이르네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뒤 한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나오는 저 구절은 지금도 입에 착 달라붙습니다.

 


사천시 사천읍 경남자영고에서 정동면 송보파일빌 아파트 못미친 여옥마을 앞 교차로 언덕에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사당 조원사가 있다.

 

나무의 뿌리 뿐 아니라 우리 삶의 뿌리도 깊다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자손이 번성하리라 믿습니다. 사천시 사천읍 경남자영고 앞을 지나 정동면 송보파인빌 아파트에 이르기 전 교차로 옆 언덕에 차를 세웠습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 입구

 

사천읍과 정동면의 경계를 이루는 여옥마을 어귀 부봉산(浮蜂山) 햇살 바른 비탈진 언덕에 맞배지붕에 나무 기와집이 있습니다. 사천 이씨의 시조를 모신 사당인 조원사입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 외삼문 앞.

 

교차로에서 비탈진 언덕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泗川(東城) 李氏 始祖祠宇 肇源祠(사천(동성) 이씨 시조사우 조원사)’라 적힌 빗돌이 서 있습니다. 사천 이씨의 근원을 기린다는 사당으로 향하는 걸음은 절로 경건해집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 내 참의공 재실(叅議公齋室)

 

비탈진 언덕을 올라가자 주차장이 나오고 계단 위로 외삼문인 추원문(追遠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

 

비록 문이 닫혀 까치발일망정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참의공 재실(叅議公齋室)과 공덕비 등이 보입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에는 시조 이식을 비롯해 6위를 배향하고 있다.

 

담을 천천히 돌아 거닐었습니다. 사당 뒤편에 이르자 햇살이 곱게 드리웁니다. 머리 위 나무는 너른 부모의 마음으로 손 가지를 내밀어 쓰다듬습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에서 바라본 풍경

 

사당은 사천(동성) 이씨 이식을 비롯해 6위를 제향하고 있습니다. 담장 너머에서나마 잠시 고개 숙여 예를 올렸습니다.

 


사천 이씨 문중인 구암 이정 초상화(사진제공=구암 이정연구소)

 

동성(東城)은 사천(泗川)의 옛 지명으로 동성 이씨와 사천 이씨는 같은 말입니다. 시조(始祖) 이식(李軾)은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때 국자진사(國子進士)로 송악군수(松岳郡守)를 역임(歷任)한 분이라고 합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

 

후손 중에는 사천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로 불리는 구암(龜巖) 이정(李楨1512~1571)이 유명합니다. 구암은 정치가이자 학자요 교육자입니다. 24세 때 유배 온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를 만나 스승으로 삼고 학문을 익혔고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1470-1550)에게도 공부를 해 25세에 대과에 장원급제했습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 사당 연꽃 문양

 

사당 주위 담장을 따라 거니는데 매화향이 밀려옵니다. 봄이 왔음을 매화는 하얀 팝콘 같은 고소한 색으로 폭죽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 기와 지붕 위로 햇살이 곱게 드리웠다.

 

고결한 마음이라는 매화의 꽃말처럼 맑은 마음으로 사천 이씨의 시조 사당을 둘러본 기회였습니다. 비록 제 선조와 시조의 사당은 아니지만, 우리 이웃의 근원을 살폈습니다.

 


사천 이씨 시조를 모신 조원사에 핀 매화가 봄이 왔음을 알리는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찾아가는 길

위치 : 사천시 정동면 화암리 259-1번지(여옥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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