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느린 걸음, 여름이 남겨둔 풍경으로 이끌었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6. 9. 1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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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일요일이지만 출근했다. 일요일에 모두가 쉬지는 않겠지.

 

아침부터 선물을 받았다. 일기 쓰면 받을 수 선물 중 하나가 주변의 대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법이라는 <글쓰는 삶을 위한 일년>(책세상)에 공감한 날이었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 일터에서 아침 식사 뒤 산책하면서 익숙하던 길들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덕분에 선물도 받았다.

 

평소 무심하게 그냥 지나가던 사물이 눈에 띄었다. 다리 이름표에 거꾸로 매달린 사마귀를 발견했다. 졸지에 생명의 탄생 순간을 함께하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발아래에는 망초가 나와 더불어 이 신비로운 생명 탄생의 현장을 지켜본다. 여느 때 같으면 낯선 이에게 중국 무술 고수처럼 날개를 펼치고 앞다리를 크게 휘두를 녀석은 전혀 움직임이 없다. 다만 하얀 거품과 함께 알집 속에 겨울을 날 알들을 낳는다.

 

아쉽게도 아침 쉬는 시간이 끝나가 발길을 돌렸다. 점심도 거르고 쉬는 시간에 다시 찾았다. 사마귀는 없다. 녀석이 남긴 엄지손가락 마디 크기의 알집만 딱 붙어 있다. 이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생명이 나오겠지. 이제 겨울을 견딜 까닭 하나 생겼다.

 

알집을 한참 들여보다 산책을 나섰다.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웅벽 위에는 한때는 쓸고 단맛으로 목마른 마음을 적셔주었을 소주 한 병과 구겨진 종이컵이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 아래 사철나무 잎사귀에 매미의 허물이 눈에 들어온다. 매미 허울 위에는 거미줄이 바람에 일렁인다. 점심인지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에 매달린 벌레 하나를 칭칭 감더니 허우적허우적 먹는다.

 

남 먹는 것지켜보는 것처럼 미안한 일도 없을 듯해서 자리를 떴다. 주위에는 마치 빨래를 널 듯 거미줄 한 가닥에 낙엽들이 매달렸다. 빨랫줄 같은 거미줄 아래에는 겨울을 나려는 또 다른 벌레의 집이 뿌리기시 엿보인다.

 

15cm가량의 어찌 보면 도깨비방망이 같기도 한 붉은 타원형의 열매가 여기저기 익는다. 높이 20m의 일본목련이다. 나무 아래에서 도깨비방망이 휘둘러 소원을 빌고 싶은데 껑충 뛰어올라도 열매는 손에 닿지 않는다.

 

아쉬움을 달래며 느티나무 사이로 걸어가자 매미의 허물들이 하나둘 보인다. 매미는 허물을 남기고 허물은 유난히도 무덥고 길었던 여름을 기억한다.

 

느린 걸음이 여름이 남겨둔 풍경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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