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된 사랑하는 아들, 찬솔에게
찬솔아,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지난해 중학생이 된 네 형처럼 올해 너도 중학생이라니 참 시간이 빠르구나. 다시한번 더 초등학교 졸업을 축하해.
날이 꾸물꾸물하니 어둡다. 오늘 거실에 있던 화분들을 베란다로 옮겼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도 나온다는 경칩(驚蟄)도 지나고도 아빠는 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때문에 좀 더 거실에 두었다. 봄을 매화에서도, 산수유에서도 보면서도 정작 이 녀석들에게는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 쌀쌀하다고는 하지만 봄이다. 베란다와 거실은 따스하기가 차이 난다. 베란다 창 너머의 세상은 더 차갑다.
어제 아빠가 일하는 곳에서 본 <개불알풀꽃>이 떠오른다. 요 녀석을 보려면 허리를 굽혀야 해. 아주 작아서 찾아보기 어려워. 손톱만큼이나 작아. 그럼에도 햇볕 잘 드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서는 봄이 왔음을 연보랏빛으로 알리고 있었어. 이름이 재미나서 잊어버리지 않는다. 씨앗이 개의 불알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야.
그런데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는 까치처럼 봄을 알려주는 꽃이라고 해서 <봄까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데. 또한, 봄까지만 핀다고 <봄까지꽃>이라고도 한단다. <개불알풀꽃>이라는 거시기한 이름보단 <봄까치꽃>이나 <봄까지꽃> 이 더 정겹고 반갑다. 아빠는 이 녀석이 너무 귀여워서 화분에 옮겨 우리 집으로 데려올 가도 생각했지. 옮겨오지 못했다.
네가 다녔던 들꽃어린이집이름처럼 들꽃(야생화)은 혹독한 겨울을 지날수록 꽃이 더 아름답게 잘 피운데. 예쁜 화분에 심어 겨울에 얼어 죽을까 봐 따뜻한 온실이나 집안에 두면 이 녀석들은 생명을 잃는 거야. 늘 푸른 잎을 가진 열대지역 식물을 제외하고는 눈 속에서 겨울을 나야 오히려 더 건강하다는구나.
너도 이제 한 걸음 한 걸음 집이라는 따뜻한 온실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겨울을 만나러 나가는 중이야. 어린이집도, 초등학교도 졸업하고 이제는 중학생이 되었네. 학년이 높아지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너는 세상이 더 넓고 춥다는 것도 느낄 거야.
6학년 교실 게시판에 붙어 있던 네 장래의 꿈과 다짐처럼 음악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할 거라는 다짐을 믿어. 추운 겨울도 이겨내고 환하게 인사를 건넸던 <봄까치꽃>처럼 너도 네 꿈을 펼칠 거야.
비록 학교 성적은 네가 노력한 만큼 나오지 않아 속상했겠지만 너는 재능이 많은 아이다.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배운 북과 장구, 꽹과리소리는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노동자문화한마당 때 공연도 아직 눈에 선하다. 형과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던 네 목소리가 들린다.
형과 함께 감기에 걸려 열이 펄펄 났던 그 날, 새벽도 잊을 수 없구나. 귀와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도 카메라를 든 내게 환하게 웃었지. 너는 오늘날까지 크게 아프지 않았다. 다만, 요즘 네가 누워서 책을 읽고 스마트폰 게임을 해서 그런지 시력이 나빠 걱정이다. 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너지만, 읽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울러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만화로 나온 <조선왕조실록> 20권을 나도 열심히 재미나게 읽었다. 너도 열심히 읽더구나. 만화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만화책도 읽고 다양한 책을 읽고 있겠지만, 요즘은 너무 만화만 읽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렇다.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책에 꽂혀서 만화영화 보러 친구들과도 영화관을 찾았지. 시리즈로 나오는 책을 용돈이 생기면 구해서 읽었지. 만화 못지 않게 더 많은 다양한 책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6년 동안 학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고 친구들과 형, 누나, 동생들과 화음을 맞춰 잘 연주했잖니. 가끔 집에서 피아노 치는 네가 부럽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아 참, 2010년 11월 21일이었을 거야. 마침 엄마도 일 마치고 아빠랑 함께 근처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함께 집으로 들어올 때였어. 맞벌이하는 우리를 대신해 네가 저녁 밥상을 챙겼더구나. 군만두도 굽고···. 군만두를 비롯해 김치며, 김이 나란히 밥상에 놓여 있고 숟가락과 젓가락이 따뜻한 밥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 네가 하나씩 깐 노란 귤들도 함께 있었지.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맛난 저녁을 먹었다. 고맙다.
올겨울, 우리 가족 신 나게 눈썰매를 탔던 거창수승대 눈썰매장도 잊지 못한다. 마감 시간까지 지칠 줄 모르고 즐겁게 노는 너의 모습이 해맑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에도 거창수승대에서 눈썰매를 타며 놀았구나. 더구나 거창수승대 가기 전에 들른 함양 정여창선생 고택에서 네가 엄마에게 물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 왜 아빠랑 결혼했어요~?”
네 말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왜 있잖아,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결혼 전 엄마랑 데이트할 때 얼마나 많은 편지와 말을 하면서 ‘사랑한다.’ 속삭이면서 약속을 했겠니. 미안할 뿐이더구나.
남편과 아빠로 우리 가족들에게 어떤 성적을 받을지 모르겠다. 다만, 좀 더 노력하고 노력할게.
세상에 나를 닮은 사람이 사랑하는 너라서 기쁘고 좋다.
가족이라는 소중한 인연을 함께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
찬솔아, 지금도 잘해 왔지만, 앞으로도 잘 해 나갈 거라 아빠는 믿는다.
2014년 3월 12일
이제 중학생이 된 찬솔에게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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