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웠던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다 - 통영 이순신공원
문득 하늘을 올려봅니다. 성큼 다가온 가을이 농익어 갑니다. 계절의 변화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쫓기듯 바삐 살아온 나를 위해 선물 같은 휴식을 안겨주고 싶어 통영 이순신공원을 찾았습니다.
통영 시내를 잠시 벗어나 공단 지대의 어수선 풍경을 지나면 조선 수군이 연락용으로 사용한 연을 그려놓은 방파제가 나옵니다. 방파제의 시작에 이르면 좀 전의 어수선함과 달리 아늑한 공간이 곁을 내어줍니다.
이순신공원입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총총히 들어서 반깁니다. 덕분에 나무 곁을 지나면서도 몸과 마음도 성큼성큼 커지는 기분입니다.
메타세쿼아 가로수길 끝자락에 이르면 바다를 향해 우뚝 솟은 이순신 동상을 만납니다.
거북선 모양의 기단 위로 장군의 친필 휘호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라 기둥 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장군의 말씀이 귀가를 올리는 기분입니다.
동상 아래에는 32전 32승의 해전 싸움터를 알리는 지도가 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동상이 마주하는 짙푸른 바다는 1592년 8월 14일(음력 7월 8일) 조선 함대 59척과 일본 함대 73척이 맞서 학이 날개를 편 듯 진(鶴翼陣)을 펼쳐 적선 59척을 격침한 한산대첩의 현장입니다.
한산대첩의 승전보를 전해주려는지 시원한 바람이 바다와 하늘에서 밀려와 뺨을 어루만지고 지납니다. 병풍처럼 펼쳐진 가을을 품은 바다와 하늘의 풍경 덕분에 마음은 개운해집니다.
바다는 잔잔한 호수 같습니다. 해안의 기암절벽은 병풍을 두른 듯합니다.
이순신공원은 이름에 걸맞게 이순신 장군의 어록과 시를 적은 빗돌이 곳곳에 있습니다. 고즈넉한 공원을 걷는 동안 이순신 장군이 동행이 된 기분입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풍경은 일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우리를 위로합니다.
곳곳에 쉬어가라 유혹하는 쉼터와 긴 의자 덕분에 걸음은 쉽게 옮길 수 없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한가운데에서 온전히 나만을 위해 넉넉한 가을을 담습니다.
문득 고개 들어 올려다본 하늘을 헤엄치듯 한 무리 새들이 날아갑니다. 여유롭습니다. 덩달아 공원을 거니는 발걸음은 더욱더 가볍습니다.
학익정(鶴翼亭)에 올라 공원의 전경과 너머의 바다, 하늘을 봅니다. 바라보이는 풍경 그 자체는 자연이 그린 한 폭의 그림입니다. 가져간 캔커피가 달곰합니다.
정자에서 내려와 느리게 걸어가는 바다 산책로 ‘토영이야~길’을 거닙니다. 공원은 바다 산책로가 지납니다.
저만치에서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는 까치 한 마리도 유유자적 거닙니다. 덕분에 발걸음과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공원은 나무들이 깊습니다. 무성한 나뭇잎을 비집고 들어온 가을 햇살과 인사를 나눕니다.
힘겨웠던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습니다. 몸과 마음이 보약 한 첩을 지어 먹은 듯 힘이 솟습니다.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면 통영 이순신공원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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