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커피, 코피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1. 2. 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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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후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듯 어르신들의 아침식사 도움이 끝나고 직원들도 아침을 챙겨 먹었다. 조회가 끝난 뒤 함께 마시는 커피 시간. 달짝지근한 커피 한 잔의 위로를 받으려는데 짙은 흑갈색 커피 위로 붉은 코피가 흘러내렸다. 어제 이브닝(E) 근무하고 다시 출근한 여파인듯 싶다.

 

데이(D),이브닝(E),나이트(N).

아내 덕분에 낯선 용어들은 아니지만 1월 24일 전문요양팀으로 옮긴 이후 더욱 익숙하다 싶었다. 익숙한게 아니라 익숙한 척, 스스로 속고 있었다. 어제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첫 이브닝, 저녁근무를 동료 한 명과 섰다.

 

도착해 데이 근무때 인수인계를 시작으로 동료들과 어르신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으로 일을 시작했다. 어르신들의 저녁식사가 끝나고 오후 5시 30분 오전 일찍 출근해 근무하며 낮에 근무했던 동료들도 퇴근했다.

저녁 6시 30분, 할아버지들의 기저귀 교체를 시작으로 이제는 이브닝 근무가 본격적이다. 낮근무를 통해 나름 익숙하다 싶었지만 왠 걸 어르신들은 낮과 달리 설사 등으로 다 갈아 놓은 기저귀에 다시 변을 보신 까닭에 시트와 의복을 교체하기를 여러 번. 등줄기로 여름철 소나기가 지나듯 땀이 흘러내렸다.

오후 8시, 어르신들의 기저귀도 갈고 어느 정도 안정이 찾아왔다. 야간근무자 메뉴얼을 펴놓고 빠트린 것은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보고...

 

오후 9시 이미 잠든 어르신들도 있지만 몇 몇 어르신은 아직 주무시질 않는다. 텔레비전을 꺼달라는 할아버지와 옆 침대에 계신 할아버지는 아직 봐야겠다며 켜달라고 하시는...결국 대부분의 어르신들의 취침을 위해 텔레비전을 껐다. 그 까닭인지 어르신은 나이트 인계하는 자정까지 주무시지 않고 침대에 누워 팔 베개하고 간혹 왔다갔다하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마치 시위하는양.

 

요양원 3층에  9시까지 당직근무를 선 가정사요양팀 동료도 퇴근하며 인계를 하고 간다. 이제 이 큰 건물에 이브닝 근무자 나와 동료 한 명, 두 명이 함께한다.

요양원 1층부터 문단속부터 시작해 2층 어르신 방까지 살며시 살펴보는 라운딩시간. 손전등에 의지해 순찰하다 원내 영안실 문을 열었다. 문 단속하면서 의식적으로 문을 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다행히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순찰을 마치고 다시 2층 집중실로 올라와 동료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 여유로움을 깨지 않으려는 듯 다행히 어르신들이 소변보고 싶다거나 하는 까닭으로 부르시지 않았다. 할머니의 숨소리에 오히려 놀란 것은 나였다. 마치 말씀하듯 숨쉬는 모양에...

 

나이트와 근무를 교대하기 전 다시금 어르신들의 기저귀를 갈 시간. 이번에도 설사에 제대로 대처 못해 시트와 의복을 갈았다. 소나기 한바탕 지나고 숨을 고르고 요양원 건물 라운딩을 나섰다.

'밤 새 안녕"이라는 말처럼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어르신들이 성심원에는 한두분이 아니다. 평균연령 75세이상의 어르신들. 크고 작은 장애와 고령 등의 만성질환을 가진 움직이는 종합병동과 같은 분들이 많다. 아예 밤 근무자 매뉴얼에도 선종에 따른 가족 연락처와 직원 비상 연락망이 적혀 있다. 언제나 죽음과 함께하는 곳, 나는 이곳에서 밤 새 안녕을 확인했다.

 

오전, 어르신들의 목욕이 끝나고 잠시 숨고르기 시간에 다시금 달짝지근한 믹스커피의 유혹에 빠졌다. 오늘은 아마도 커피의 도움으로 코피를 이겨내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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