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마음 울린 동편제 명창을 찾아서-유성준‧이선유기념관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7. 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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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잔뜩 구름을 머금었다. 언제 비가 내려도 좋은 715일이었다. 별천지 경남 하동에서도 호리병처럼 생긴 악양면으로 들어서는 길은 내내 마주한 구름 안은 산이 둘러싼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토지>의 주 무대인 악양 들판을 지나 악양면 중대리에서 버스는 멈췄다. 차에서 내려 노란 장미가 아름다운 정원 한쪽에 고풍스러운 깜찍한 승합차가 천막 아래 쉬고 있는 집을 지났다. 밭에는 무얼 심었는지 검은 천에 구멍이 쑹쑹 뚫려 있다.

 

유성준이선유기념관으로 가는 이정표가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하동 블로그기자단으로 활동하는 악양왕언니농원간판이 개망초 사이로 솟아 보인다. 마을 개울을 따라 걷다가 시멘트 농로를 접어 들어 폐가를 지나자 판소리 기념관이 나온다.

 

들어서는 입구는 높게 솟은 2층 문루가 반긴다


문루를 지나 흙과 돌이 어우러진 돌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자 기념관 마당이 나온다. 기념관으로 가지 않고 옆으로 난 오솔길을 10m 걸었다.

 

국창 유성준 선생 추모비가 서 있는 옆으로 선생의 묘소가 자리 잡았다. 세습 예인 집안 출신의 유성준(劉成俊, 1873-1944) 선생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근대 판소리 5대 명창중 한 분이다.

 

잠시 묵례로서 예를 올리고 지나온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하동이 낳은 명창, 세상을 울린 절창이라는 글귀가 먼저 반긴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마음에 쌓아두고 오랫동안 삭이고 삭인 곰삭은 소리, 칼칼하고, 널널하고, 텁텁한 명창의 수리성, 밑으로는 바닥 모를 심연이요, 위로는 하늘을 닿는다. ~하동이 낳은 동편제의 명창, 유성준과 이선유라 적혀 있다.

 

왼편으로 들어가자 근대 판소리 5대 명창이자 동편제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국창 유성준(1873~ 1949), 이선유(1873~ 1949) 선생의 영정사진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 분은 동갑내기에 출신지가 같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경계로 그 동편에서 큰 소리 맥을 이룬 송홍록 집안에서 나온 소리를 동편제라 하며, ’그 서편의 소리 맥을 이룬 박유전 소리서편제라 한다.

 

유성준 선생의 제자로는 1980년대 광고에서 들었던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외치던 명창 박동진(朴東鎭, 1916-2003)을 비롯해 임방울(林芳蔚, 1904-1961), 김연수(金演洙, 1907-1974), 정광수(丁珖秀, 1909-2003), 박록주(朴綠珠, 1909-1979), 신숙(申淑, 1911-1970?), 강도근(姜道根, 1918-1996), 박귀희(朴貴姬, 1921-1993) 등이다.

 

선생의 제자를 가르치는 방식이 엄격해서 만약 만일 소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다른 견해를 제기하면, 목침을 집어 던지거나 소리 교습을 중단했다고 한다.

 

이선유 선생은 1872년 하동 악양에서 태어나 일생 대부분을 보낸 진주시 장대동에서 1949년 세상을 떠났다. 10살 때부터 소리 공부를 시작해, 15살 때 송우룡을 찾아가 3년간 공부했다. 김세종의 지침을 받아 성공했다. 진주 권번의 소리 선생으로 있었다. 제자로는 인간문화재 김수악, 박봉술 씨와 신숙, 오비치 명창 등이 있다. 1933년 김택수의 채록으로 최초로 인쇄된 판소리 창본 <오가전집>을 출판했다. 이선유는 수궁가를 장기로 삼았는데, ‘수궁가’,‘심청가’, ‘적벽가중에서 몇몇 대목이 유성기판으로 전해진다. (진주문화연구소에서 펴낸 <명창 이선유> 중에서>)‘

 

이선유 선생은 딸딸이 아빠였다. 그냥 딸딸이가 아니라 딸딸딸딸! ‘나그네 설움단장의 미아리고개등 수 많은 애창곡을 작곡한 한국의 슈베르트라는 별명을 가진 이재호 선생을 양자라 들였다.

 

기념관 너머로 회색빛 머금은 하늘은 물방울을 떨군다. 잠시 처마에 앉았다. 떨어지는 빗소리에 장단 맞추듯 툭툭 소리치는 메마른 흙 내음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을 품에 안고 소리가 기념관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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