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돌담 너머로 바람도 솔솔 드나드는 평화가 드리운 -하동 조씨 고택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7. 3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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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악양면 사무소에서 북쪽으로 1km 가량 가면 정서리 상신마을이 나온다. 고샅길 사이로 마른 장작이 담처럼 빙 둘러 쌓인 집이 보인다. 옆으로 소나무와 초가가 정겹게 그려진 벽화가 그려진 집이 나온다. 벽화를 지나 돌아가자 흙과 돌이 버무려진 고즈넉한 돌담이 나온다.

 

돌담이 품은 세월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조씨 고택이다. 조선 개국공신 조준(趙浚,1346~1405)의 직계 손인 조재희(趙載禧)가 낙향하여 지은 16년에 걸쳐 지은 집이다. 흔히 조부자집으로 알려진 조선 후기 상류층 주택이다. 옛 영화는 아쉽게도 동학혁명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랑채와 행랑채, 후원에 있던 초당, 사당 등이 불타 없어지고 안채와 방지(方池)만 남아 있다.

 

소설 <토지>을 쓴 박경리 선생이 진주여고 재학 중일 때 조씨고택에 살았던 친구 집으로 자주 놀러갔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악양 평사리 들판을 눈여겨본 박경리 선생에 의해 소설 <토지> 속에 평사리 들판이 주 무대로 나오고 조씨고택은 최참판댁 실제 모델이 되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전통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을 표현한 네모반듯한 방지(方池) 형태의 연못이 먼저 반긴다.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연못은 묵묵히 들려준다.

 

연못을 지나쳐 오른편으로 살짝 고개를 들자 경사진 길 따라 하늘 높이 솟아오른 안채가 보인다. 언덕진 길 따라 오르면 자 모양의 팔작지붕이 인상적인 안채에 들어섰다.

 

마침 92세의 증손인 조한승 어르신이 우리를 맞았다. 연세보다 너무 정정하다는 말에 어르신은 “6살부터 8년 동안 세끼마다 보약을 먹은 탓이다라고 들려주신다. 툇마루에 앉은 우리는 어르신의 살아온 구한말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거렸다.



“6살에 종에 업혀 인근 초등학교에 등하교 다녔다. 주위에서 부잣집 아들이라고 따돌려 학교 가기 싫었다. 부모님께 떼쓰기도 했다라는 말씀에 학교 가기 싫었던 내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안채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장독대에 눈은 멈췄다. 옹기종기 다양한 크기의 옹기들이 담 너머에 펼쳐진 악양 풍경과 함께 정겹게 보인다.

 

안채 뒤편으로 후원 석축에 굴뚝이 붙어 있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후원에는 녹차밭이 꾸며져 있다. 후원을 나와 사랑채로 걸어가자 구석진 곳에 파란색 슬리퍼 2짝이 세워져 있고 옆에 층층이 신발들이 들어서 있다. 어디론가 떠날 그 날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밤이면 은은한 옛이야기가 새어들듯 문살이 정겹다. 나도 몰래 귀를 살며시 붙였다. 3개의 자연석 돌계단을 오르면 나무 문짝이 붙은 뒷간이 나온다. 모든 근심을 날려버릴 것 같은 해우소다.

 

사랑채를 돌아 돌담을 걸었다. 돌담 아래로 괭이밥이 노랗게 피었다. 돌담 너머로 바람도 솔솔 드나든다. 한결 편안하고 차분해진다. 고택을 중심으로 평화가 드리웠다. 평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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