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산청여행-시대가 만든 영웅, 산적- 산청 임걸룡을 찾아서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6. 11.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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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판치는 세상이다. 남의 집 담을 넘어 훔쳐가는 게 아니라 숫제 나라를 도둑질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입맛이 씁쓰레하다. 시대가 만든 영웅, 의적을 찾아 119일 지리산을 찾았다.

 


시대가 만든 영웅, 산적 임걸룡을 찾아 지리산으로 가는 길은 온통 단풍으로 물든 산자락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조선 시대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연산군 때의 홍길동, 명종 때의 임꺽정, 숙종 때의 장길산을 조선 3대 도적으로 꼽았다. 조선 3대 도적에 들지는 못하지만, 삼남지역 큰 도적으로 손꼽히는 이가 산청 출신의 임걸룡이다. 임걸룡의 출생지가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 시천면 내공리 정각사에 있다.

 

 

산청 정각사 앞에는 마치 땅을 뚫고 나온 칼을 닮은 돌이 있다. 의적 임걸룡이 말을 맨 돌이라 전한다.

 

덕산을 지나 지리산 천왕봉으로 향하다 삼성중공업 지리산 연수원가는 길에서 좀 더 위쪽으로 가면 정각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 기다란 나무들이 먼저 반긴다. 일주문 앞 주차장에 이르기 전에 차를 세웠다. 양옆에 돌이 서 있다. 오른쪽에 서 있는 돌은 불끈 솟은 남자 성기 모양인데 분필로 얼굴 형상을 그려 넣었다. 왼쪽 돌은 마치 땅을 뚫고 나온 칼을 닮았다. 임걸룡이 말을 맨 돌이라 전한다. 일주문을 겸하는 모양이다.

 


산청 정각사 천왕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수동자와 보현동자가 그려진 벽화 사이로 난 천왕문을 들어섰다. 왼편으로 절 창건주 공덕비가 나온다. 맞은편에는 빗물을 받아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물 담은 사각의 돌 앞에는 아주 굵은 고구마처럼 생긴 돌이 기다랗게 놓여 있다.

 


정각사 요사채 사이로 예전에 임걸룡이 무예를 익히면서 마셨던 샘물이라고 전한다.

 

법해루 밑을 지나자 왼편에 우물터를 주지 스님이 직접 시멘트를 바르며 만들고 있다. 요사채 사이로 함지박 덮은 샘이 있다. ‘장군수라고 하는 샘물이다. 예전에 임걸룡이 무예를 익히면서 마셨던 샘물이라고 전한다. 샘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샘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 대나무가 빙 두르고 있는 죽림선원으로 올라갔다. 선원 옆에 있는 산신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신각 앞 석등 안에 합창하며 수도 정진하는 작은 스님 조형물이 들어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산신각에서 내려다본 산청 정각사.

 

산신각 뒤로 올라가 절을 내려다보았다. 풍수설에 따르면 청룡단두혈(靑龍斷頭穴)로 보통사람이 살면 큰 도둑이 나고 살면 대적이 나고 공공기관이 들어서면 길지(吉地)라 했다. 지금의 대각사 자리에서 태어난 임걸룡은 엿장수를 하는 한 부부가 한 칸짜리 집을 짓고 살다가 낳았다고 한다.

 

임걸룡이 어렸을 때는 업고 다녔지만 4~5세가 되자 집에 두고 장사를 나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선반에 얹어둔 엿이 차츰 줄어들었다. 임걸룡 어머니가 하도 이상해서 도둑을 잡겠다고 생각하고 장사 가는 척하고 숨어 살폈다. 임걸룡이 문 열고 나오더니 사방을 한 눈으로 둘러보고는 인적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주머니에서 엽전 한 닢을 껴내어 화롯불에 달군 후 실을 엽전 구멍에 단단히 매어서 엿을 놓아둔 그릇에 던져두었다가 잠시 후 실끈을 잡아당기니 엽전에 녹아 붙은 엿가락이 실끈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었다.

 


산청 정각사 대웅전

 

이 비범한 지혜를 지켜본 어머니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처지로 볼 때 자기 아들이 도적보다 큰 인물로 발전할 수 없음을 알고는 성을 내어 꾸짖으며 요놈의 자식이 방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다 똥 싸면서 도둑질해 먹는 것이냐?”고 호통을 치며 앞으로 큰 도둑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임걸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하겠다고 했다. 과연 그는 큰 도둑이 되었다는 것이다.

 


산청 정각사 탑

 

산신각을 나와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리고 툭툭 털 듯 일어나 절 내를 구경했다. 명부전 앞에 향나무 다섯 그루가 서 있고 받아놓은 물이 졸졸 흘러가는 작은 연못이 있다. 대웅전 앞으로 나가 탑을 구경했다. 탑 아래에 수호신인 사천왕상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는데 정겹다.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든 사천왕상의 돋을새김이 어서 와 반가워하고 인사하는 모양새다.

 

절을 구경하고 의적 임걸룡이 산적으로 활동했다는 외송리 새고개를 찾았다. 경호강을 끼고 있는 새고개는 산청읍과 신안면 경계에 있는 고갯길이다. 왕복 4차선이 뚫린 진주-거창간 일반국도 3호선이 지나는 길이다. 새고개 정상에는 현재 6·25참전기념비와 베트남참전기념비, 88사건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참전기념공원이 4차선에 바로 인접해 있지만 찾기는 수월하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의적 임걸룡이 활동했다는 산청 새고개

 

임걸룡은 새고개에서 도둑질을 했는데 모두를 뺏지는 않았다고 한다. 도둑질한 물건으로 빈민을 구제하기도 했단다. 길목을 지나는 등짐장수는 미리 물품 일부분을 별도로 갖고 오다가 굴 앞에 던져주고 가기도 했다고 전한다.

 

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리는 차들이 보인다. 저 길 끝자락에 기다림이 밀려온다. 도둑이 판치는 세상, 시대가 만든 영웅 임걸룡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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