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형평문학제 생활글쓰기 대회 장려상-의자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6. 7. 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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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받았다.



6월 25일 진주 남강 야외무대에서 열린 형평운동 정신을 기리는 형평문학제 시민생활글쓰기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밤 근무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참가한 글쓰기 대회였다. 컴퓨터로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다가 하얀 종이에 쓰려니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더구나 산문의 글 제목이 <의자>였다. 주어진 시간 1시간 30여 분은 훌쩍 지나갔다. 부랴부랴 괴발개발 쓴 글을 제출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청했더니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아래는 글쓰기 대회에 제출한 글이다. 일부는 집에서 나중에서 고쳤다.

 

뜨거운 뙤약볕을 피해 은행나무 아래 의자에 앉았다. 지리산 둘레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정겨운 목소리가 호수처럼 맑다는 경호강 흘러가는 소리에 합창처럼 들린다. 시원한 소리에 취해 의자 밑으로 손이 내려갔다. 의자 밑을 더듬어도 잡히는 것은 까칠한 시멘트 조각뿐이다. 있을 턱이 없다. 몇 해 전에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내가 일하는 한센인 생활복지시설 산청 성심원에서도 독신 할아버지들이 생활하는 프란치스코의 집 은행나무 옆 의자는 레오나르도 어르신의 전용의자였다.

 



어르신은 곧잘 의자 밑에 소소한 읽을거리를 넣어두고 틈날 때면 읽곤 하셨다. 내가 만든 <성심원 소식지> 10월호를 드리자 어르신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에서 여느 때처럼 의자에 앉고 읽으셨다. 어찌나 열심히 읽는지 내가 카메라 셔터 소리 요란하게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도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A4 용지 12쪽 분량의 작은 소식지를 다 읽고는 쏠쏠하니 재밌다며 칭찬도 해 주셨다. 평소 같으면 문디 얼굴 찍어서 뭐할 거냐며 불호령을 내실 텐데...

 

고마운 마음에 어디가 특히 재미있었는지 여쭈었다. “허허~하고 웃고는 소설 <토지> 읽어봤는가?” 물으셨다. 머리를 긁적이는 나를 보더니 젊은 사람이 재미난 이야기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며 혀를 차시고는 소식지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며 들려주셨다.

소설<토지>에도 나오는데...‘백정각시놀음이라는 거 아는가?”

좀 전보다 더 머리를 더 긁었다.

 

옛날에 말야 자네 태어나기도 전에 말이야. 마을 잔치 때 백정의 딸이나 아내가 보이면 가축으로 삼아서 옷을 벗겨 등에 타고 마을을 돌아다녔어~ ”

마을 잔치에 구경나온 백정 각시를 마치 소처럼 남정네들이 재갈을 물리고 올라타서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는 놀이였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그때는 나도 재미난 놀이라고 여겼어. 백정을 예사로 무시하고 업신여겼지. 백정 각시가 나타나면 나도 그렇게 재갈 물리고 타고 놀려고 했지.”

 

백정이 멸시와 차별을 받았다는 것은 어르신이 말씀하기 전에 알고 있었다. 백정은 태어나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이름마저도 충이나 효니 예니 하는 글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지을 수 없었고 돌 석(), 이름 돌(), 가죽 피()를 사용해야 했다. 죽을 때는 상복과 지팡이도 사용 못 하고 삼베와 두건만을 사용해야 했다. 상여도 금지되고 자신들만의 격리된 곳에 묘지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등 태어나 죽을 때까지 각종 차별을 받았다. 나이가 아무리 많은 백정도 어린아이에게 존댓말을 사용해야 했다. 나치독일 때 유대인들처럼 가슴에 별을 단 옷을 입었듯 남자는 상투를 틀지 못하고 여자는 비녀를 꽂지 못했다. 한눈에 봐도 백정임을 드러내야 했다. 백정 각시놀이는 이날 처음 들었다. 사람이 아니라 백정이라는 짐승으로 본 끔찍한 놀이에 치가 떨렸다.

 

“(한센)병에 걸려 혼자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했지. 병든 손으로 농사도 못 짓고. 내 나이 서른일곱에 결혼도 못 하고···. 내 대에서 씨가 끊어지나 참 걱정스러웠어. 인연이 될런가 그때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지. 17살 터울이야. 고맙지.”하면서 백정 각시처럼 놀림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데 함께해줘 어찌나 고마웠는지 몰라~”

 

3대 독자였던 할아버지는 고마운 할머니를 만나 자녀를 두어 조상께 볼 면목이 생겼다고 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고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할아버지의 눈가에 한센병에 관한 오해와 편견은 고향에서도 두문불출하고 숨죽여 살아온 서러운 세월이 눈물 되어 주르룩 흘렀다. “가입시더. 제가 막걸리 한 잔 올리겠습니다.”

 

백정에 관한 차별은 한센인에게도 이어져 왔다. 이제 한센인에 관한 오해와 편견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차별과 편견이 결혼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에게 이어지지 않는지 반성하고 살펴볼 일이다.

 

할아버지는 자네 술은 내 외상 장부에 적어 놓을 테니 다음 기회에 마시자.”고 하셨다. 그런데 외상 장부에 적힌 술을 받으러 오시지 않는다. 은행나무 의자에 앉으면 그날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르신 하늘나라 은행나무 아래 의자에서는 맘껏 막걸리 드세요~ 제가 이곳에서 갚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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