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생각>이 주최한 제11회 생활문예대상에서 <장려상>으로 뽑혔다.
아래는 장려상으로 뽑인 글이다.
“아시죠? 심부름 값 10%!”
장날, 읍내로 심부름 가는 내게 예순을 앞둔 그가 2,000원을 건네자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장날이면 직원에게 언제나 복권을 부탁한다.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그에게 복권은 희망이고 1주일을 살아가는 활력소다. 1등 당첨되면 심부름 값 10%는 물론이고 주위 장애인들에게 크게 한턱내겠다는 공약은 언제나 짱짱하다.
중증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사는 그는 어눌한 말투와 달리 여간 깔끔한 게 아니다. 불편한 몸으로 자주 씻고 주위를 늘 깨끗하게 정리한다. 한때는 깔끔한 성격이 가시처럼 날카로워 조심스러웠다. 여러 장애인의 일상을 도와야 하는 내게 자신의 부탁이 해결될 때까지 휠체어를 타고 내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그가 귀찮고 미웠다.
다행히 시를 쓸 때는 조용했다. 그는 강태공처럼 시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자작시를 내게 읽어보라고 권하곤 했다. 시는 말장난 같았다. 평가를 재촉하는 나에게 그만 ‘머릿속에만 든 시 같다’며 살아온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자랑하려고 내민 시를 쓴소리하자 고개 푹 숙이고 휠체어를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자신의 시를 읽어보라 권하지 않았다. 서로 데면데면했다. 여러 날이 지나 다른 동료에게 건넨 시를 우연히 읽었다. 시는 예전보다 거칠지만 진솔했다. 먼저 알은체를 하며 칭찬 한마디 건네자 소풍 가는 날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좋은 시를 읽게 해 준 답례로 바람 시원하게 불어오는 날, 나무 그늘에서 캔 커피를 함께 마셨다. 지나가는 바람에 내 과거를 무심코 실었다. 나는 한때 주식투기에 빠져 신혼집 전세금을 날렸다. 지인들에게 거짓말로 돈을 빌리고는 배 속의 아이를 가진 아내와 연년생 두 아이를 나 몰라라 하고 서울로, 대구로 숨어 살았다. 그때는 앞뒤 좌우로 꽉꽉 막힌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일확천금 벌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야간 경비 일하면서도 졸음에 겨운 낮에도 컴퓨터를 켜놓고 주식 그래프에 일희일비하는 하루하루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아내는 힘겹게 숨어 살던 나를 찾아왔다. 화도 내지 않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나를 말없이 받아준 어머니와 형네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 우리 가족 다섯 명이 부대끼며 살았다. 마땅한 일자리도 없어 온갖 일들을 했다. 수년 전 이곳에서 일하며 평온을 찾았다.
며칠이 지나자 그가 커피 한잔하자며 산책길로 이끌었다. 그는 파란 하늘에 살랑거리는 구름을 보며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40대 초반 우여곡절 끝에 가정을 이뤘지만, 사업은 부도 직전이었다. 낚시갔다가 마신 술기운을 빌려 차와 함께 낭떠러지 너머 바다로 향했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구했다. 그러나 대가는 가혹했다. 여생을 휠체어 없이는 살 수 없고, 말도 어눌해지고 손과 발에 힘도 빠졌다. 어렵게 꾸린 가정도 산산조각이 났다. 한순간의 충동이 평생을 옥죄는 수렁으로 빠트렸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 소원이 나 스스로 대소변을 보는 거였는데···.” 큰 수술만 여러 번 하며 죽을 고비를 넘긴 그의 곁에서 칠순의 어머니가 대소변을 직접 받았다. 정작 그가 스스로 대소변을 해결할 즈음에는 아무도 곁에 없었다. 의탁할 곳 없어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여기에 입소한 게 몇 해 전이다.
서로의 지난 과거를 털어놓자 씁쓰레했던 커피는 달곤 해졌다. 감춘다고 사라질 지난 과거는 아니다. 아픈 시간을 되새기며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얽매이지도 않는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시 시작이라는 것도 안다.
다가올 장날이면 복권 사달라며 2,000원을 건넬 그에게 '1등 당첨 심부름' 값을 미리 앞당겨 받아서 씁쓰레하면서 달곤 한 커피 한 잔 마시러 가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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