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밤샘 돌봄 노동자의 하루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3. 12. 2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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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30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어제(28일)저녁 9시 30분부터 밤새워 일하고 퇴근하는 길이다. 나는 돌봄 노동자다. 경남 산청 성심원이라는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일하는 돌봄 노동자(또는 사회복지 종사자)다. 한 달에 서너 번 밤샘을 한다. 또한, 한 달에 서너 번은 당직이라고 밤 9시 30분까지 일한다. 밤샘과 당직 근무를 제외하고는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 휴식시간 1시간을 포함해 근무한다. 아침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는 시간 외 근무다. 아침도, 점심도 여기 원내 식당에서 먹는다. 때로는 당직을 비롯해 시간외 할 일이 있으면 저녁도 여기에서 먹는다. 가끔 퇴근하면서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면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어르신들도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일상을 함께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청에서 진주까지 3호선 국도를 내달리다 차를 갓길에 멈췄다. 산너머에 붉은 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는 광경이 아름다웠다. 산너머 떠오른 태양이 고개 내민 까닭인지 하늘에 비춘 것인지 파란 하늘에 붉은빛이 보기 좋다. 남들 출근할 무렵 퇴근하면서 이런 광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색다른 느낌이 좋다.

집 도착했다. 일요일이라 가족들 아직 자고 있다. 샤워하고 나왔다. 아내가 자신이 누워 잤던 침대를 내주었다. 아내의 체취가 남아 있는 침대 위로 이번에는 내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창가 블라인드는 올라갈 틈이 없다.

알람을 맞추었다. 그럼에도 눈을 알람 소리를 듣기 전에 떠진다. 오후 1시. 가족들은 없다. 아마도 종교 모임에 나가는가 싶다. 머리가 엉망이다. 다시 샤워했다. 따뜻한 물줄기에 정신이 든다. 부랴부랴 시내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늘 진주 동네 기행이 있는 날이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도 참석하겠다고 했다. 촉석루 맞은편 진주시 천전동 중앙광장. 일행을 만났다. 오늘 둘러볼 동네가 옛 망경동과 칠암동, 주약동이다. 통합되면서 진주 인구 10%인 3만 4천 명이 사는 동네로 바뀌었다. 일행과 인사를 나누고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점심을 먹지 않은 빈속이지만 커피의 카페인이 졸리는 내 몸을 깨울 것이라는 믿음으로 홀짝홀짝 마셨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쉬는 시간(오전 7시 30분~오후9시 30분)은 출·퇴근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깊은 잠을 자지 못해 이불에서 뒹굴기 일쑤다. 함께 밤새운 동료 역시 기숙사에서 2시간 남짓 잠을 자고 깨었다고 한다. 깨었다고 일어나 활동하기는 몸이 따라오지 못해 이불 속에서 뒤척였다고.

 

 

근처 유등체험관을 둘러보고 망진산 봉수대를 찾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는 자신이 사는 지역을 손으로 일러준다. 하늘이 파랗다. 머리가 차츰 맑아진다. 옛 진주역사와 <쥐라기 공원>이라는 별칭을 가진 경남과기대 교정을 거닐었다. 오후 5시, 경남문화예술회관을 구경했다. 마침 서예전도 관람했다. 한자 글씨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옆에 주석 달아 놓은 글에 눈이 더 간다.

 

찾는 손님 없이 홀로 앉아 있노니/ 빈 뜰엔 빗기운이 어둑어둑

고기가 흔들어 연잎이 움직이고/ 까치가 밟아 나무 끝이 너풀거리네.

거문고 그쳐도 줄에 아직 소리 있고/ 화로는 찬데 불은 상기 남아 있네.

진흙길이 출입을 방해하거니/ 오늘 하룰랑 문 닫아 두자.

 

 

문화회관 앞 예쁜 이름의 편의점이 보인다. ‘발길이 머무는 모퉁이 편의점’. 여기를 끝으로 오늘 동네 기행을 마쳤다. 아니, 저녁 먹으러 가는 일행을 뒤로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데 전화가 왔다.

“아빠, 지금 어디야. 아침부터 어디 갔어? 구체적으로 말해~”

집에 가서 말해주겠다는데 둘째 녀석은 속사포처럼 질문을 연달아 한다.

 

 

어둑어둑한 거리에 가로등 불빛이 밝아온다. 아내가 어제 삼천포에서 구매한 멸치와 홍합으로 맛을 낸 미역국이 시원했다. 모두가 나름의 일요일을 즐기고 모여 먹는 저녁이다. 우리는 가족에서 한 식구가 모처럼 되었다.

오후 7시, 오지 않는 잠이지만 침대에 누웠다. 둘째가 오후 8시를 알려준다. 일어났다. 옷을 챙겨 입고 가족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자동차 보닛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웠다. 방금 주차한 차의 열을 온돌방에 누운 듯 배를 길게 붙이고 나를 바라본다.

 

 

오후 9시 10분. 오늘 다시 밤새워 일할 일터이자 일상인 곳에 도착했다. 동료가 책상 위에 박카스 2병을 올려놓았다. 함께 근무할 동료와 나눠 먹으라고. 그렇게 오늘 하루가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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