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분양받았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3. 12.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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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받았다. 희망을! 올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란다. 하지만 우리 집 거실 한쪽에 있는 좌식 책상에 작은 희망이 함께한다. 고구마 순이다. 성심원 동료에게 분양받아 일하는 <프란치스코의 집> 식당 식탁에 놓았다. 분양받은 순애기 중에서 가장 작은 녀석을 집으로 가져왔다. 겨울을 건강하게 자라나면 햇살 좋은 봄에 성심원 뜨락에 심을 생각이다.

 

 

녀석을 내 서재로 사용하는 거실에 놓고 보니 주위에 작은 화분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춥다고 베란다에서 거실로 옮겨온 녀석들.  이 겨울을 날 생명은 비단 고구마 뿐 아니다. 갑자기 든든해진다. 

 

 

엄지손톱보다 작은 고구마 순애기(고구마 어린 순)는 작은 접시에 축축한 헝겊 위에 놓여있다. 자줏빛 몸통에 초록빛 이파리 두 개를 띄웠다. 하찮다고 보잘 것 없다고 업신여길 까닭도 없다. 녀석은 온 우주의 기운을 받아 무럭무럭 자랄 태세다.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얻기를 바라는 마음과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을 끝까지 버리는 않는 마음희망이라고 한다. (보리국어사전) 나도 녀석에게 희망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더불어 내 새해 바람도 이루어지길 소원하면서.

   

 

추운 바람에 군고구마가 그립다. 군고구마보다 더 그리운 것은 빼때기. 칼로 썰어 말린 절간 고구마를 일컫는 빼때기’. 어릴 적 덜 마른 말랑말랑 빼때기는 요즘의 비데기 오징어처럼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입안에 물컹하며 흐르는 단맛. 빼때기가 본연의 모습처럼 마르면 처음에는 딱딱해 한입에 깨물 순 없었다.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게 아이스크림 저리가라였다. 간혹 어머니께서는 빼때기로 죽을 끓여주셨는데 나는 차마 먹지 못했다. 그때는 맛이 없었다. 거무스레한 빛깔이 맘에 들지 않았다. 밥이 아니라 죽 자체가 싫었다. 그래서 죽이 아닌 빼때기로 먹었다.

 

엄지손톱만 한 요 녀석 희망을 봄에 심으면 주위를 초록빛으로 덮을 정도로 잎줄기 무성해지겠지. 손톱만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자라겠지. 고구마는 아메리카가 원산지다. 1492년 콜럼버스가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에게 선물로 바치면 유럽에 퍼졌다. 우리나라는 영조 때(1763) 조엄이 일본 쓰시마에서 가져왔단다. 덕분에 굶주림에 허덕인 우리 조상님들의 모진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다. 모진 목숨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고구마. 이제는 내게 이 겨울을 아니 내 삶의 용기를, 희망을 안겨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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