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에서 떠오르는 전의 해를 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 사이로 구름이 여유롭다.
일요일 아침 7시. 아이들도, 아내도 자고 있다. 평소 같으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거나 씻는다고 요란할 시간. 학교도, 직장도 쉬는 날이라 여유가 있다. 먼저 일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떠오르는 전의 해를 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 사이로 구름이 여유롭다. 해돋이를 찬찬히 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이를 깨우고 아내를 깨웠다.
“아빠, 안 가면 안 돼요?”막내 해솔이가 일어나기 싫은 표정이 가득한 얼굴로 연거푸 묻는다.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된다. 가야 한다! 우리 가족 모두!”
“가기 싫단 말이에요~”
막내가 다시 내게 말한다.
나 역시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안 된다. 가야 한다! 우리 가족 모두!”
며칠 전부터 중학생인 큰 애와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인 아이들에게 말했다. 17일 온 가족 함께 시사(時祀)가야한다고. 친구들과 다른 약속 잡지 말라고.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커가면서 차츰 가족이 함께 시간 내기 어렵다. 쉬는 날이면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거나 놀러 간다고 아이들은 바쁘다. 그러고 보니 올해 우리 가족 함께 떠난 나들이가 몇 번인지 가물가물하다.
아침을 먹고도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표정의 아이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게임할 수 있도록 챙겨라.”는 마누라님의 복음 말씀(?)에 아이들의 표정은
밝은 햇살처럼 환하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게임할 수 있도록 챙겨라.”는 마누라님의 복음 말씀(?)에 아이들의 표정은 밝은 햇살처럼 환하다.
시사를 지내는 재실(齋室)은 살고 있는 곳에서 불과 3~40여 분의 거리에 있다. 조수석에 앉은 큰 애가 스마트 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개 짖는 소리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가 들려준 노래에 막내 녀석도 따라 부른다.
‘니니이닝니닝~’
잠자코 들으니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집에서도 아이는 곧잘 틀었다. 아이에게 물었더니 노래 제목이 "The Fox (What Does the Fox Say?)" 란다. 집에서 아이가 틀어 놓을 때 웬 개 짖는 소리가 노래인가 싶었다. 좁은 차 안에서 아이와 이야기하면서 들으니 가사가 좀 더 잘 들렸다.
Dog goes woof(강자지는 ‘멍 멍’) / Cat goes mewow(고양이는 “냐옹 냐옹”)
Bird goes tweet(새는 “짹 짹”)/ and mouse goes squeek(쥐는 “찍 찍”거리지)
Cow goes moo(송아지는 “음 메”)/Frog goes croak(개구리는 “개굴 개굴”)
and the elephant goes toot(코끼리는 “쿵쾅 쿵쾅”거리지)
~중략
What does the fox say?(여우는 무슨 소리 내지?)
Ring-ding-ding-ding-dingeringeding!(링-딩-딩-딩-딩디디디딩!)
Gering-ding-ding-ding-dingeringeding!(그딩-딩-딩-딩-딩디디디딩!)
Gering-ding-ding-ding-dingeringeding!(그딩-딩-딩-딩-딩디디디딩!)
What the fox say?(여우는 무슨 소리를 내지?)
~중략
I want to…(난 정말) / I want to know!(난 정말 알고 싶어!)
2013년 9월 3일에 유튜브에 올려져, 10월 14일 7시 16분 시점으로 1억 2200만 회의 조회를 기록한 일비스가 부른 <What Does the Fox Say?> (사진 출처 : 유튜브 화면 갈무리)
노르웨이의 코믹 일비스 (Ylvis)의 전자음향의 춤노래다. 2013년 9월 3일에 유튜브에 올려져, 10월 14일 7시 16분 시점으로 1억 2200만 회의 조회를 기록하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받아들인 외국인들도 나와 같았을까? 차 안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집에서 함께하며 대화하는 시간보다 더 밀도 있다. 집중도가 높았다. 게임기에 눈을 고정한 둘째와 막내도 큰 애가 틀어놓은 노래를 함께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문을 읽는 아내도 흥얼거리며 따라한다. 은근히 흥얼거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나 역시 이 노래가 좋아진다.
비단 이 노래뿐 아니라 헬멧 쓰고 노래하는 크레용 팝의 노래도 아이는 들려주었다. 막내는 차 안이 작은 노래방이 된 듯 춤을 따라 한다.
덕분에 재실에 도착하는 길이 더 멀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였다.
아빠를 따라온 아이는 손을 땅에 붙이고 납작 엎드린 어른들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본다.
재실에 모여 문중 사람들이 제사를 올린다. 아빠를 따라온 아이는 손을 땅에 붙이고 납작 엎드린 어른들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본다.
“아빠 몇 번 남았어요?”
막내는 절을 하면서도 몇 번을 절을 해야 하는지 연신 묻는다.
평소 집에서 하는 제사와 달리 축문도 읽고 시간이 길어지자 몸을 꼰다.
점심을 먹으며 문중 일을 서로 나누기 무섭게 길 막힐까 다들 바삐 차를 몰아 나간다.
우리도 재실에서 나와 집으로 오기 전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멧돼지 발자국이 선명하게 아버지 산소의 잔디를 파헤쳤다.
우리도 재실에서 나와 집으로 오기 전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멧돼지 발자국이 선명하게 아버지 산소의 잔디를 파헤쳤다. 봉분도 그렇고 주변도 엉망이다. 내년 봄, 다시 잔디를 심어야겠다.
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아침과 달리 이야기가 짧았다. 겨울 방학 때 가족 휴가로 무주 스키장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큰 애는 오히려 눈썰매장으로 가자고 말하자 아이들이 동조한다. 아내는 말없이 듣기만 하다. 암묵적으로 올겨울 가족 나들이는 거창 금원산 얼음축제와 수승대 눈썰매장으로 정해졌다. 이후에는 별 말이 없다. 노래도 없다. 피곤한 모양이다. 늦가을의 햇살이 차 안에 들었다. 아내가 먼저 잔다. 아이들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잔다.
시사(時祀)라는 문중 일을 핑계 삼아 함께한 우리 가족의 나들이. 시사에 맞춰 가지고 간 <가락의 역사와 가계>라는 책을 통해 들려줄 우리 가계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비좁은 차 안에서 나눈 노래 한 곡 흥얼거림은 서로 소통하는 계기였다. 엄마보다 키가 크고 이제는 아빠인 나와 손가락 작은 마디의 차이밖에 없는 중학교 1학년 큰애가 비좁다고 투덜거리는 차. 경차라는 비좁은 공간에서 나눈 가족 간의 대화는 소중한 추억이다. 장소가 중요할까 함께하는 우리 가족이 있으니 더 즐거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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