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시의회와 함께 알아보는 진주 3·1 독립 만세운동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5. 3. 26.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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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의회와 함께 알아보는 진주 3·1 독립 만세운동

 

 
대한독립 만세~”
 
 

 
지난 3월 1일 경남문화예술회관 앞 남강 야외 공연장에서 106년 전의 함성을 진주시의회 백승흥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참가 시의원과 시민들이 외쳤습니다. 시민들은 3‧1운동 정신을 생각하며 하모의 숲까지 걷기도 했습니다.
 

 
14일에는 진주성 촉석문 앞 진주대첩 역사공원에서 ‘진주 걸인·기생독립단 만세운동’ 재현행사 열렸습니다. 이날도 백승흥 진주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여러 시의원과 조규일 진주시장, 권진회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김경규 경상남도 진주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지현 서부보훈지청장, 진주 시민과 학생 등 4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3·1 독립 만세 106주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이어 만세운동을 재연한 연극 ‘걸인이 일어났소, 기생이 일어났소’가 공연되었습니다. 끝으로 참석자 전원이 힘차게 만세삼창을 외치면서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백승흥 시의회 의장과 시의원들이 두 번에 걸쳐 삼일절 행사에 참여해 선열들의 자주독립 의지를 되새기며 만세삼창을 부른 진주 삼일절 행사는 다른 지역과 뭐가 다를까요?
 

 
106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지역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는 3월 초순 여러 지역으로 확산해 전국으로 퍼졌는데 진주는 18일 함성이 울렸습니다.
 

 
진주 지역 다른 지역보다 3·1 독립 만세운동은 늦었습니다. 하지만 천민 신분이었던 기생과 걸인들도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우선 진주 3·1 독립 만세운동의 시작을 살펴보면, 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했던 김재화, 박진환, 심두섭 등이 진주로 내려와 당시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집현면(集賢面) 하촌리(下村里)(현 진주시 하촌동) 김재화의 집에서 권채근, 강달영, 조웅래, 정용길 등과 비밀 회합을 하고 3월 13일 하기로 결의를 다졌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감시가 심해 13일 할 수 없어 18일로 연기되었습니다.
 
하촌동 마을회관에는 진주와 서부 경남 3·1운동 발상지. 의논 장소. 순국 지사 김재화 생장지라는 <3·1운동 발상지 기념비>가 있습니다.
 

 
3월 18일 장날 정오, 진주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진주중앙시장·옛 진주법원 앞(현 롯데인벤스 아파트)·진주성·대안동(현 중앙동)과 대사지 매립지(현 교육지원청과 경찰서 등지) 앞 다섯 군데에서 만여 명의 사람들은 동시다발로 “대한독립 만세”를 일제히 외쳤습니다.
 
1905년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 소속 의료선교사 커럴 가족이 세운 진주교회 앞에는 ‘3.1운동 기념 종탑’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습니다. 당시 울렸던 높이 86㎝, 지름 84㎝ 크기의 종은 충남 천안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박물관에서 보관 중입니다. 현재는 2012년 교인들의 헌금으로 종탑과 종을 복원해 그날을 기리고 있습니다.
 

 
18일, 독립 만세가 진주 전역을 울린 뒷날 우리는 자랑스러운 논개의 후예이다. 진주 얘기(藝妓)의 전통적인 긍지를 잃지 마라!”며 진주 기생 50여 명이 ‘기생독립단’을 결성하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일본 경찰은 한금화 등 6명을 붙잡았습니다. 한금화는 손가락을 깨물어 흰 명주 자락에 “기쁘다, 삼천리강산에 다시 무궁화 피누나”라고 감옥에서 혈서를 썼습니다.
 

 
걸인들도 ‘걸인독립단’을 결성해 만세 시위 현장에 나타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백승흥 시의장이 태극기를 움켜쥐고,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은 그날을 잊지 않겠다는 후손들의 다짐입니다. 한 세기가 흘렀지만, 그날의 함성은 우리 진주를 감싸고 남강과 함께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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