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초정 김상옥 거리
‘비 오자 장독대 봉선화 반만 벌어 /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 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라//’
위 시는 윤이상의 가곡 <편지>로 더 잘 알려진 초정 김상옥 선생의 <봉선화>입니다. 세상의 꽃들은 지고 나무들도 민낯을 드러내며 숨을 고르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해마다 피는 봉선화 덕분에 문득문득 초정 선생의 시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교과서에 실린 덕분에 시를 읊조린 문학 소년의 바람은 그렇게 통영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통영은 빼어난 예술인이 많습니다. 이 중에서도 현대 시조의 아버지라 불리는 초정 김상옥 선생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선생의 자취는 많지만, 통영 시내 도심에서 그분의 흔적을 만났습니다.
통영 시내 항남1번가는 선생을 기리는 초정거리가 있습니다.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선생의 대표작이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습니다.
중천에 떠 있는 해를 안고 걸었습니다. 햇살 덕분에 곱게 드리운 바닥에는 선생의 작품들이 새겨진 바닥 장식이 걸음걸음 숨은 보물을 찾는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골목은 씨줄과 낱줄처럼 얽혀 서피랑과 통제영, 동피랑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넌지시 일러줍니다. 이곳은 어디로 가도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동진여인숙 앞에 이르러자 더욱더 선생의 흔적이 밀려옵니다.
새롭게 단장을 하려는지 기념 공간은 긴 겨울잠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생의 흔적은 빛바랜 안내판이 우리에게 넌지시 일러줍니다.
거리를 나왔습니다.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골목, 항남 1번가를 나오면 오가는 차들과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일상이 나옵니다.
시내버스 정류장에 선생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봉선화>, <백자부>, <사향>, <옥적>, <다보탑> 등을 쓴 시조 시인 초정 김상옥(1920년~2004년) 선생이 오가는 이들 곁을 바라봅니다.
‘멀리 바라보면 사라질 듯 다시 뵈고 / 휘날려 오가는 양 한 마리 호접처럼 / 앞뒤 숲 푸른 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 어룬님 기두릴까 가비얍게(가볍게) 내려서서 / 포란잔 떼어물고(포란잠 빼어 물고) 낭자 고쳐 찌른 담에 / 오질앞(오지랖) 다시 여미며 가쁜 숨을 쉬도다 //’
선생의 <그네>처럼 오늘도 우리는 어룬님을 기다리며 일상에 가쁜 숨을 쉽니다. 선생은 하늘나라에서 요즘 어떤 시조를 읊고 계실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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