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 하고 나를 돌아보다- 남해읍 외금마을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9. 1. 2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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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바뀌자 그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길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지듯 유명 관광지가 아닌 여느 평범한 마을로 마실 떠나듯 보물섬 남해의 숨은 보물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남해읍에서 서면으로 가는 길, 괴음산 안쪽으로 향하는 길에 자리 잡은 외금마을이 그곳입니다.

 


남해군 남해읍에서 서면으로 가는 길에 있는 외금마을과 내금마을 표지석.

 

마을로 들어서면 외금마을과 내금마을 표지석이 나란히 서서 반깁니다. 어서 오시다. 여기서부터 외금마을입니다. 마을 옛 이름이 성배산 서쪽에 있다 하여 서편리라고 불려지기도 했다고 합니다라는 마을 청년회에서 붙은 표지석 아래에 쓴 인사와 마을 유래는 정겹고 살갑습니다.

 


남해읍 외금마을 표지석 아래에 적힌 마을 유래 안내문.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연대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데 일본 제국주의 강제 점령기에 내금마을에 광맥이 있어 본 마을에도 광맥이 있는 줄 알았으나 광맥이 없다 하여 외금이라고 지금껏 불린다고 합니다.

 


남해읍 내금 마을 입구에 있는 표지석 아래에 적힌 마을 유래 안내문.

 

금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이미 마을에 들어서자 아늑하고 빛나는 풍경은 황금 이상입니다. 내금저수지로 가는 갈림길에 민낯을 드러내는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대나무를 꽂고 금줄을 두른 성스러운 표시가 있습니다. 바로 옆에 막돌탑이 보입니다.

 


남해읍 외금마을에서 내금마을로 나뉘는 갈림길 왼편에 외금마을 막돌탑이 있다.

 

강변이나 산야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아무렇게나 생긴 돌(막돌)로 쌓았다고 해서 막돌탑이라 불립니다. 막돌탑이라고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쌓은 탑이 아니라 주민들의 정성으로 쌓은 탑입니다.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을 모시고 있는 마을의 역사입니다. 마을의 구심체로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마을 놀이문화의 산실로 마을 축제의 시작으로 각가지 민속놀이가 행해지기도 합니다.

 


남해읍 외금마을 막돌탑.

 

아무리 둘러보아도 개바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 마을 사람들이 개바위라 부르는 개의 형상을 한 선돌이 논밭 가운데 있다고 들었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회관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마당에 인조잔디들 두른 회관 안에는 할머니들이 따뜻한 아랫목에 모여 점 10원이 동양화(?) 그림에 한참입니다. 개바위 위치를 여쭈자 도둑맞았다고 합니다. 개바위를 잃어버리고 다시금 마을 주민들이 새로운 바위를 구해 그 자리에 놓았는데 누군가 또 훔쳐 갔다고 합니다.

 


남해읍 외금마을 마을회관과 버스정류장.

 

아쉬움이 진하게 배여 옵니다. 아쉬움을 머금은 채 마을 안으로 걸었습니다. 마을회관을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파릇파릇 시금치밭들이 나옵니다. 바라보는 동안 어릴 적 즐겨보았던 만화주인공 뽀빠이처럼 힘이 솟는 기분입니다. 시금치밭을 지나자 커다란 당산나무가 나옵니다.

 


남해읍 외금마을 당산나무

 

당산나무 아래는 마을 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정자와 야외 헬스기구들이 있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대나무를 꽂고 금줄을 두른 바위가 있습니다. 마을의 신성한 장소임을 알려주는 까닭에 덩달아 옷깃도 여밉니다.

 


남해읍 외금마을 당산나무와 정자

 

당산나무를 올려다봅니다. 한때는 이 마을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가 되었을 나무는 지금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남해읍 외금마을 당산나무.

 

당산나무 옆에는 커다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 아래에 시비가 서 있습니다.

 


남해읍 외금마을 당산나무 곁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 옆에는 시비와 금줄을 친 바위가 있다.

 

작은 돌탑을 지나/ 큰 느티나무가 서 있는 이 곳을/ 내가 그리워하는 까닭은/ 온 산천 산열매 꽃 흐드러진 봄/ 뻐꾸기 함께 뭇 새 울음소리/ 흐르는 실개천 고랑물 가르는/ 신비로움 때문만은 아니오// (중략)// 이곳 아지매들 풍성한 웃음 소리와/ 길 가던 나그네 발길 멈추게 하는 인정이/ 메말랐던 내 가슴에/ 수천 개의 별을 뿌려 놓았기에/ 이곳을 그리워 하오//”

 


 남해읍 외금마을 당산나무 아래 있는 시비.

 

마을에 귀촌한 김진희가 쓴 외금마을 표석이 서 있는 이곳이라는 시입니다. 나지막이 시를 따라 읽는 동안 풍성한 웃음소리 들려오고 메마른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기분입니다.

 



정자에 앉았습니다. 햇살이 드는 자리에 앉아 가져간 캔 커피를 마십니다. 바람마저 상쾌하고 달짝지근합니다.

 


남해읍 외금마을 당산나무 아래 정자

 

정자를 나와 마을을 마실 하듯 거닐었습니다. 마을 속에서 돈가스 전문점을 만났습니다. 외진 마을에 돈가스 식당이라 의아스럽기도 했습니다. 재료가 소진하면 문을 닫는다는 말이 오히려 식당의 자신감으로 보입니다.

 


남해읍 외금마을 내 돈가스 전문점.

 

마실 가듯 마을을 돌아다니다 여러 갈래로 나뉜 길 앞에 섭니다. 인생을 닮은 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을 하고 나를 돌아본 시간이었습니다.

 


남해읍 외금마을을 마실 가듯 돌아다니는 시간은 나를 돌아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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