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랭이는 그 잘난 ‘가죽’ 땜시 뒈지고, 사람은 그 잘난 이름값 허느라 개죽음 허는 겨, 이 화상아!”
영화 <황산벌>에서 장수 계백(박중훈 분)은 전장에 나가기 전 가족을 불러 모은다. 이때 계백의 아내(김선아 분)가 어차피 적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제 손으로 죽이는 게 낫다며 칼을 든 계백에게 일갈하는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잘난 이름 석 자 남기기 위해 얼마나 나 자신을 비롯해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골병들게 하는 사람이 많은가.
남명 조식 선생 흉상(합천 용암서원⸱위쪽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과 영정, 큰들 마당극 <남명> 속 남명선생, 남명 동상(남명기념관)
내가 요구하고 바란다고 명예와 권위가 생기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삶을 곧고 바르게 충실하게 살면 절로 따라오는 게 명예와 권위가 아닐까. 2018년도 물러설 곳 없는 12월. 올 한 해 얼마나 부질없이 헛된 망상을 좇아 왔나 반성하면서 죽어서도 죽지 않고 이름과 정신이 살아오는 남명선생을 찾아 지리산을 향했다.
산청 덕천서원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산청군 시천면 입구 산천재와 남명기념관을 지나 좀 더 천왕봉 쪽으로 몇 걸음 더 옮기면 덕천서원(德川書院)이 나온다.
붉은 홍살문 옆 450여 년이 넘은 은행나무를 지나 서원으로 들어갔다. 때를 어기지 않고 고요하다는 뜻을 품은 서원 외삼문 시정문(時靜門) 동쪽 문을 열고 들어섰다(東入西出). 이는 해가 마치 해가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지듯 자연 섭리를 따른 것이다.
산청 덕천서원 외삼문인 시정문(時靜門)
배롱나무의 민낯과 경의당도 곧장 지나 남명선생의 위패를 모신 숭덕사(崇德祠)로 향했다.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 선생을 모신 곳이라 선생께 제일 먼저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다.
산청 덕천서원 숭덕사(崇德祠)
사당으로 들어서려는데 내삼문 왼쪽에 1m 내외의 돌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마치 허리 숙여 공경하게 인사하는 모양새다. 덕분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가다듬고 내삼문을 들어서자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 집인 숭덕사가 나온다.
산청 덕천서원 숭덕사 앞 내삼문 왼쪽에 1m 내외의 돌 두 개가 공경한 모양새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지붕 기와 암막새에는 바다 해(海)가 새겨져 있다. 남쪽에 있다고 하는 큰 바다를 뜻하는 ‘남명(南冥)’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온다.
산청 덕천서원 숭덕사 지붕 기와 암막새에는 남쪽에 있다고 하는 큰 바다를 뜻하는 ‘남명(南冥)’을 상징하는 바다 해(海)가 새겨져 있다.
사당 가운데에는 선생의 위패가 있고 오른쪽에 수제자인 수우당 최영경(守愚堂 崔永慶⸱1529∼1590)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당을 나와 서원 마당에 다시금 섰다. 민낯의 배롱나무 뒤편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 작지 붕 집의 경의당(敬義堂)이 보인다. 경의당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유생들이 기거하는 동재와 서재가 있다. 경의당 중앙에 대청이 있고 양쪽으로 툇마루와 난간이 달린 2개의 작은 방이 있다.
산청 덕천서원 경의당(가운데)과 동재, 서재
경의당 대청마루에 앉았다. 햇살에 곱게 들어온다. 삼가고 두려워하면서 순간순간 정신을 집중하고 깨어있는 상태를 말하는 경(敬)을 통해 배운 것을 곧고 바르게 행동하는 의(義)를 실현하기 바랐던 선생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산청 덕천서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남명선생의 가르침이 들려온다. 삼가고 두려워하면서 순간순간 정신을 집중하고 깨어있는 상태를 말하는 경(敬)을 통해 배운 것을 곧고 바르게 행동하는 의(義)를 실현하기 바랐던 선생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남명선생을 기리기 위해 1576년 후학들이 창건한 당시와 현재의 서원을 규모 등에서 비교할 수 없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불탄 서원은 이후 여러 번 중수했다. 1870년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방치되었다. 1918년 지금의 서원으로 복원했다.
산청 덕천서원 경의당에서 바라본 풍광
현재 배롱나무가 있는 자리가 예전에 연못이 있던 곳이다. 창건 당시에는 담 안으로 샘물을 끌어들여 못을 만들고 연꽃을 심었다.
산청 덕천서원 동재 앞 배롱나무 자리에 창건 당시에는 못이 있어 연꽃이 심어져 있었다.
동재 옆 담장 위로 고들빼기가 가을을 떠나보내기 아쉬운지 노랗게 가을을 붙잡고 있다.
산청 덕천서원 동재 옆 담장 위로 고들빼기가 가을을 떠나보내기 아쉬운지 노랗게 가을을 붙잡고 있다.
가을을 붙잡고 있는 고들빼기 뒤로 감나무가 빨갛게 농익어간다. 문득 ‘잎은 글을 쓰는 종이가 되어 문(文), 단단한 나무는 화살촉으로 쓰여 무(武), 겉과 속의 색이 같은 과실은 충(忠), 노인도 치아 없이 먹을 수 있어 효(孝), 서리가 내려도 늦게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어 절(節)’이라는 감나무의 덕이 떠오른다. 감나무 덕에서 선생을 떠올렸다.
산청 덕천서원 담장 너머 감나무의 덕(文武忠孝節)에서 선생을 떠올렸다.
서원을 나와 2차선 도로 앞에 있는 세심정(洗心亭)으로 향했다. 남명의 제자인 진주 수곡면 출신 각재 하항(覺齋 河沆⸱1538-1590)이 지은 것으로, 『주역周易』 에 나오는 ‘성인세심(聖人洗心⸱성인이 마음을 씻는다)’에서 뜻을 취했다.
산청 덕천서원 바로 앞에 있는 세심정(洗心亭)
수우당 최영경이 덕천서원을 건립한 뒤 마음 놓고 쉬면서 자연과 하나 되길 바라며 1582년에 2칸으로 지은 것이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는 등 현재의 정자는 당시의 모습이 아니다. 서원 앞으로 도로가 확장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 지으며 1칸이 되었다.
정자 옆에 서 있는 시비에 적힌 ‘냇물에 목욕하며(욕천(浴川)’이란 시를 글자 하나하나 따라 읽으면 나지막이 읊었다.
산청 덕천서원 바로 앞에 있는 세심정(洗心亭)에서 덕천강을 바라보며 남명선생의 시 ‘욕천’을 떠올렸다.
全身四十年前累 (전신사십연전루) 온몸에 쌓인 사십 년 간의 허물
千斛淸淵洗盡休 (천곡청연세진휴) 천 섬 맑은 물에 모두 씻어버리네
塵土倘能生五內 (진토당능생오내) 만약 티끌이 혹시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 (직금고복부귀류) 바로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치리.
비록 옛 정취는 많이 사라졌지만, 세심정에서 남명선생의 숨결을 느껴보자. ‘자기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의롭게 행동하자’라는 남명선생의 사상과 정신을 되뇌었다.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 아는 것을 올바르게 실천하자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산청 덕천서원과 세심정을 찾아 남명의 숨결을 느껴보자. ‘자기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의롭게 행동하자’라는 남명선생의 사상과 정신을 되뇌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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