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선생 발자취

남명의 가르침, 시대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는 마당극 <남명>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11.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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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를 위해서만⸱⸱⸱. 사흘 밤 근무를 마친 나는 집으로 가지 않았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청 덕산으로 향했다. 그 길 끝에서 남명 조식(1501~1572)의 일대기를 주제로 한 창작 마당극<남명(임경희 작, 김상문 연출)>1020일 초연되기에 온전히 나를 위해 구경 나섰다. 마당극 전문극단 큰들이 소설 <토지>를 토대로 한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산청 한방약초를 주제로 한 <효자전>에 이어 새 마당극을 들고나왔다는 소식에 밤 근무의 피곤을 씻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남명선생 묘소

 

지리산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가을이 내려앉아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덕산 입구에 이르러 먼저 남명 조식 선생이 61세에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산천재에 들른 뒤 길 건너 남명기념관으로 향했다. 선생의 동상 옆으로 유명한 단성사직소를 새긴 비 앞에서 찬찬히 사직상소문을 읽은 뒤 옆으로 난 길을 타고 선생의 묘소에 올랐다. 잘 닦인 임도가 아닌 오솔길이 주는 평화로움에 밤 근무에 지친 몸은 가쁜 숨을 내쉰다. 묘소에 올라 예를 잠시 올리고 근처 덕천서원으로 향했다.

 


산청 덕천서원 경의당에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쏟아진다.

 

덕천강 가에 세워진 마음을 씻는 세심정(洗心亭)을 지나자 지난 밤의 묵은내가 덩달아 씻기는 기분이다. 아직은 노란 물보다는 연둣빛이 더 강하게 남은 커다란 은행나무 곁을 돌아 발을 들이자 가을 햇살이 경의당으로 가는 나를 반긴다. 경의당을 돌아 사당에 이르러 선생 먼발치에서 예를 올리고 다시금 경의당 마루에 앉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진다.

 


산청 덕천서원 앞을 흐르는 덕천강

 

가을 햇살과 이별하고 축제가 열리는 한국선비문화연구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명 사상은 경남정신의 뿌리, 시대정신의 좌표라 적힌 걸개 아래 너른 마당에 사람들이 앉아 있고 경의루에 제단이 갖춰져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초헌관으로 한 제례가 끝나자 간단한 개막식과 의병출정식이 잇따라 열렸다.

 


 42회 남명선비문화축제 중 남명 제례

 

홍의장군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를 비롯해, 내암(來菴) 정인홍(鄭仁弘) 등 남명의 제자 50여 명이 동북아 국제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삼가고 두려워하면서 항상 깨어 있는 경()과 의()로서 옳고 바른 삶을 실천하라고 일러주신 스승의 가르침에 분연히 일어난 셈이다.

 


42회 남명선비문화축제 의병출정식

 

바로 옆 야외공연장에서 열리는 마당극 <남명>까지 20여 분의 시간이 남았다. 차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잠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좀 전에 본 의병장들의 외침이 또렷하게 들린다. 숨을 고르며 캔커피를 다시금 마셨다.

 

1240분에 열리는 공연 예정 시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사람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이틀에 걸쳐 설치했다는 무대에는 큰 갓이 지리산처럼 솟아 있고 그 아래 정중앙에 큼지막한 경의(敬義)’라는 글자 적혀 있다. 극단 <큰들>에서 준비한 종이 모자 900개는 벌써 동이 났다고 한다. 관중석은 온통 파란 종이 모자가 일렁이는 파도처럼 물결친다.

 


마당극 <남명>이 초연된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야외공연장

 

김 서방의 구수한 충정도 사투리와 함께 마당극이 막이 올랐다. 우물을 만드는 순박한 마을 사람. 당시는 어린 임금(명종) 대신한 어머니 문정왕후와 외삼촌 윤원형이 정권을 쥐락펴락하던 때였다. 부조리한 시대에도 마당극 특유의 구수하고 정겨운 모습이 우물가에 펼쳐진다.

 


마당극 <남명>

 

조식(朝食) 먹으러 가는 마을 사람을 바라보는 조식(曺植). 이어 유생들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에 나선다. 유생들은 왜 학문을 하는 우리가 빗자루를 들고 청소해야 하는지 짜증을 낸다.

 


 마당극 <남명>에서 유생들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장면에서 남명선생이 퇴계선생에게 쓴 편지가 떠오른다.

 

여기에서 선생 64(조선 명종 19) 안동에 있는 퇴계 이황에게 쓴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물 뿌리고 빗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手不知洒掃支節·수부지세소지절) 천리(天理)를 얘기한다.~ 선생 같은 장로(長老: 퇴계)께서 꾸짖어 그만두게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쓴 편지가 떠오른다.

 


마당극 <남명>을 관람하는 관객들. 극단에서 준비한 종이 모자 900개는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벌써 동이 났다.

 

감초처럼 관객을 무대로 불러올린다. 졸지에 신관 사또로 부임한 관객과 더불어 우리 모두의 웃음보가 터진다. 불과 5분의 여의 시간 후다닥 지나고 다시금 이번에는 진짜 신관 사또가 부임한다. 뇌물로 사또 자리를 얻은 신관 사또는 본전(?) 이상의 수입을 위해 부임하자마자 백성을 쥐어짜기 위해 우물 이용료를 착취하려는 계략을 꾸민다.

 


마당극 <남명>은 감초처럼 관객을 무대로 불러올린다.

 

이를 알 리 없는 마을 사람들은 우물가에서 아낙들이 빨래하고 하인들이 즐겁게 수중 발레(?)를 한다. 유쾌한 트로트가 끝나자 지방 아전들이 들이닥치고 우물 이용료를 착취한다. 선생이 쓴 상소문 <무진봉사>가 떠올랐다. 선생은 <무진봉사>에서 가렴주구를 일삼는 아전(서리)들의 폐해를 피력했다.

 


마당극 <남명>1시간 동안 20여 출연진이 펼치는 익살과 감동에 웃다, 울기를 반복한다.

 

착취당하는 백성 모습에 무기력하기만 한 자신을 자책하던 선생은 꿈에서 깨어난다. 단성 현감에 제수받자 유명한 단성 현감 사직소(단성사직소)를 쓴다. 두건을 쓴 선생이 왕으로서 원칙을 지키시라라는 사직소를 읽자 내 마음도 덩달아 짠하다.

 


 마당극<남명>에서 착취당하는 백성 모습에 무기력하기만 한 자신을 자책하던 남명선생은 꿈에서 꺠어 유명한 단성 현감 사직소(단성사직소)를 쓴다.

 

뉘라서 감히 목숨을 내걸고 직언을 할 수 있을까. 선생의 기상에 세상을 놀라고 유생들은 산천재로 몰려든다. 선생은 평소 경을 실천하기 위해 옷에 매달았던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과 과감한 실천()을 다짐했던 경의검을 각각 제자에게 건네며 선생은 경의(敬義)라고 적힌 무대 배경으로 향한다.

 


남명선생이 평소 경을 실천하기 위해 옷에 매달았던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제자에게 건네는 모습(마당극 <남명>).

 

학문하는 선비들이 청렴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해야 백성이 행복하다라는 당부와 함께 생을 마감한다. 괜스레 눈가가 촉촉하다.

 


남명선생은 학문하는 선비들이 청렴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해야 백성이 행복하다라는 당부와 함께 생을 마감한다.

선생이 떠나고 20년 뒤 동북아 국제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선생의 제자들이 의병장이 되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칼과 창을 들었다. ‘경의라 적힌 깃발이 펄럭이는 출정식 장면은 북소리와 함께 가슴을 두드린다.

 


남명선생의 제자들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칼과 창을 들었다.(마당극 <남명>)

 

퇴계 이황과 같은 해 태어난 남명 조식은 실천의식과 비판 정신이 투철했던 조선 중기의 선비다.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참으로 찰지게 마당극으로 버무린 덕분에 지리산을 들썩이는 박수가 울렸다. 남명 조식 선생의 가르침이 지금 시대를 일깨우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자 관중 모두가 일어섰다.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참으로 찰지게 마당극<남명>으로 버무린 덕분에 지리산을 들썩이는 박수가 울렸다. 남명 조식 선생의 가르침이 지금 시대를 일깨우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자 관중 모두가 일어섰다.

 

한편, 1111일 오후 1시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두 번째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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