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화전별곡> 고향, 소슬한 가을바람처럼 머릿속을 맑게 깨우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11.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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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머물고 우리가 물드는 요즘입니다. 가을의 한가운데 이른 지금. 발길 닿는 곳마다 말을 걸어오는 남해군에는 오랜 전설과 역사가 얽혀 있습니다. 남해군의 옛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 가을을 흠뻑 느껴보고 싶어 푸른 하늘과 바다가 한 몸을 이룬 곳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하동군과 남해군을 잇는 새로운 노량대교를 건너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 향했습니다. 노량대교와 남해대교, 두 다리 사이를 지나면 싱그러운 바람 사이로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함께 묻어옵니다.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서 바라본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바다로 난 방파제 끄트머리에는 여기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바다, 노량임을 떠올리게 하는 듯 투구 모양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남해대교와 맞닿은 바다 건너에 또 다른 노량마을이 보입니다. 하동군 노량마을입니다. 절로 경기체가인 화전별곡을 떠오르게 하는 풍광입니다.

 


남해군 노량리 방파제 끄트머리에는 여기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바다, 노량임을 떠올리게 하는 듯 투구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오가기 좋지만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육지에서 뚝 떨어진 섬이었던 남해군은 유배지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고향 떠나 유배지로 와서 노래로 승화한 사람이 있습니다.

 


남해군 설천면 노량 바다에서 한가로이 나는 갈매기

 

남해의 별칭인 화전을 노래한 화전별곡을 지은 자암 김구(金絿1488-1534)가 그중 한 사람입니다.

 

 

 

? 화전별곡(花田別曲)

자암 김구가 지은 6장의 경기체가(景幾體歌)로 남해로 유배 와서 남해의 풍경과 감회를 읊은 작품이다. 1장에서 산천이 수려하고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한 남해섬을 노래하며 이곳 사람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4장에서는 각각 벼슬아치, 기생, 향촌 사람들이 흥겹게 노는 모습을, 5장에서 술에 취해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6장에서 서울의 번화로움 보다 시골에서 소박하게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다.

 

 

天地涯(천지애) 地之頭(지지두) 一點仙島 (일점선도)/ 하늘의 가이오 땅의 머리인, 아득히 먼 한점의 신선섬에는,

左望雲(좌망운) 右錦山(우금산) 巴川高川(파천고천) / 왼쪽은 망운산이오 오른쪽은 금산, 그 사이로 봉내와 고내가 흐르도다.

山川奇秀(산천기수) 鍾生豪俊(종생호준) 人物繁盛(인물번성) / 산천이 기이하게도 빼어나서 유생, 호걸, 준사들이 모여들매, 인물들이 번성하느니,

() 天南勝地(천남승지) () 긔엇더닝잇고 / ! 하늘의 남쪽 경치 좋고 이름난 곳의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風流酒色(풍류주색) 一時人傑(일시인걸) 再唱(재창) / 노래, , 아리따운 여인들과 더불어 모여들었던 한때의 인걸들이,

() 날조차 몃 분이신고 / ! 나까지 보태어서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화전별곡 1)’

 

조용히 화전별곡을 떠올리며 걷는 길은 가볍고 싱그럽습니다. 노량 바다에는 거북선이 둥실 떠 있습니다. 주위에는 싱싱한 횟감들로 가득한 횟집들이 즐비합니다. 횟집들 사이로 이순신 호국길이 나옵니다. 잠시 정자에 앉아 숨을 고릅니다.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 있는 거북선

 

뒤편으로 충렬사가 나옵니다. 관리사무소 옆에는 거북선의 용머리를 본뜬 조형물 두 개와 거북선을 닮은 무대가 햇살을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충렬사로 향했습니다.

 

나무들과 더불어 해바라기 하듯 하늘 향해 우뚝 서 있는 척화비가 나옵니다. 바로 옆으로 자암 김구유허비가 나옵니다.

 


남해군 척화비

 

조선 시대 중종 때 문신이었던 김구는 1519(중종 14) 기묘사화 때 개혁파 조광조와 연루되어 이곳으로 유배를 왔습니다.

 


자암 김구 유허비


유허비 너머로 아름다운 노량의 바다가 무르익은 가을과 더불어 말을 걸어옵니다. 비석 옆 잔디 뜨락에 놓인 긴 의자에 해바라기처럼 앉았습니다.

 


자암 김구 유허비 근처 뜨락에 있는 긴 의자

 

河別侍(하별시) 芷芝帶(지지대) 齒爵兼尊(치작겸존) / 河別侍(하별시)의 치자로 물들인 허리에 띤 黃帶(황대), 나이와 관작이 겸하여 높으도다.

朴敎授(박교수) 손저이 醉中(취중) / 朴敎授(박교수)가 손을 휘두르며 흔드는 술취한 가운데 버릇과.

姜綸雜談(강륜잡담) 方勳鼾睡(방훈한수) 鄭機飮食(정기음식) / 姜綸(강륜)이 잡담과 方勳(방훈)이 코골며 자는 모습, 그리고 鄭機(정기)가 잘 마시고 먹는 모습들,

() 品官齊會(품관제회) ()긔엇더닝잇고 / ! 품계를 지닌 벼슬아치들이 가즈런히 모여드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河世涓氏(하세연씨) 발버훈風月(풍월) 再唱(재창) / 河世涓氏(하세연씨)漢詩(한시)의 발인 韻字(운자)로서, 겨루는 시짓기인 吟風弄月(음풍롱월)에서,

() 唱和(창화) ()긔엇더닝잇고 / ! ()을 부르면 화답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화전별곡 2)’

 


자암 김구 유허비에서 바라본 남해대교

 

자암을 떠올리며 가져간 캔커피를 마십니다.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고 바람이 살랑살랑 간지럼 태웁니다. 바람이 밀어주는 덕분에 주위에 난 작은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탐스럽게 익은 미니 사과 열매를 닮은 미국산사나무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오가는 사람의 눈과 걸음을 붙잡습니다.

 

그 아래 빨간 석산이 무리 지어 핀 뜨락에는 검은 나비가 춤추듯 꿀을 먹습니다. 석산과 나비 곁을 떠나 충렬사로 향해 올라갔습니다.

 


남해 충렬사 앞 석산이 붉게 꽃을 피우자 나비가 찾아와 춤추듯 꿀을 먹는다.

 

? 남해 충렬사(忠烈祠)

사적 제233. 면적 12,088.55. 안에는 사당·재실(齋室비각(碑閣) 1, 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 4(), 가분묘(假墳墓) 1기가 있다. 1598(선조 31) 1119일 이순신 장군이 노량 앞바다 전투에서 순국하자, 처음 이곳에 유해를 안치하였다가 충남 아산의 현충사(顯忠祠)로 이장했다. 이곳에는 봉분(封墳)뿐인 가분묘만 남아 있다.

 


남해 충렬사

 

외삼문 오른편 청해루로 향했습니다. 청해루 바로 옆에는 아름드리나무가 하늘 향해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인지 가운데 줄기는 텅 비었습니다.

 


남해 충렬사 청래루 바로 옆에는 아름드리나무가 하늘 향해 당당하게 서 있다. 세월의 흔적인지 가운데 줄기는 텅 비었다.

 

청해루에 앉았습니다. 온 세상 빛이 여기에 다 모인 듯 커다란 나무에 빛들이 총총 열렸습니다.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풍광 앞에 누구나 시인을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해 충렬사 청해루

 

京洛繁華(경락번화)ㅣ야 너불오냐 / 서울의 번화로움을 너는 부러워하느냐.

朱門酒肉(주문주육)ㅣ야 너/ 붉은 단청을 올린 지위 높은 벼슬아치집 대문안, 거기 있는 술과 고기를 너는 좋아 하느냐.

石田茅屋(석전모독) 時和歲豊(시화세풍) / 돌무더기밭 가운데 있는 띠집에서나마, 사계절이 화순하여 오곡이 풍등하게 되면,

鄕村會集(향촌회집)이야 나됴하 노라 / 이 향촌에서 갖는 모임을 나는 좋아하노라.(화전별곡 6)’

 

이곳은 어느 세상이기에 이다지도 아름다울까요. 충렬사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1598(선조 31) 1119일 이순신 장군이 노량 앞바다 전투에서 순국하자, 처음 이곳에 유해를 안치하였다가 충남 아산의 현충사(顯忠祠)로 이장한 사실도 잊게 합니다.

 


남해 충렬사 담장

 

청해루에서 나와 충렬사 사당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주변 사당과 주변 정비공사가 한창이라 그만 걸음을 물렸습니다.

 

충렬사를 나오는데 괭이밥 꽃이 시멘트 계단 한쪽에 노랗게 피었습니다. 빛나는 마음이라는 꽃말처럼 여기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스라이 쌓이는 시간의 풍경은 마음을 빛나게 합니다.

 


남해 충렬사 시멘트 계단 한쪽에 노랗게 핀 괭이밥꽃




 

남해군을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 고요하고 아늑합니다. 발걸음은 느리게 움직이고 소슬한 가을바람은 머릿속을 맑게 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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