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옛 성현을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남해향교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11. 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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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놓고 걸었습니다. 보물섬 남해군 읍내에 차를 세우고 오달지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골목을 걸었습니다. 마치 이 계절이 누구나 성숙을 꿈꾸듯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며 시간이 머문 공간 속으로 걸었습니다.

 

남해성당 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유림회관이 나옵니다.

 


남해향교 앞 유림회관

 

회관을 지나면 붉은 홍살문과 함께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이 있습니다. 남해향교(南海鄕校)입니다. 향교 앞에는 마치 선비들이 드나든 폼새로 차들이 서 있다.

 


남해향교

 

남해향교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22

조선 시대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했다. 1669(현종 10) 10월 대성전을 중수하고 1678(숙종 4)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하였으며, 1892(고종 29)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내삼문(內三門) 등을 현 위치로 옮겨 세웠다.

19174월 명륜당과 그 밖의 부속 건물을 옮겨왔고, 1982년 홍살문을 건립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외삼문·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서문(西門관리사(管理舍홍살문·고자가(庫子家) 등이 있다.

 

홍살문 들어서자 양옆에 있는 나무들이 시멘트와 돌에 둘러싸여 애처롭게 서 있습니다. 특히 오른쪽에 있는 나무는 담장에 끼어 있는 모양새가 목에 칼을 차고 감옥에 갇힌 죄수 같습니다.

 


남해향교 양쪽에 있는 나무들은 담장에 끼어 있는 모양새가 목에 칼을 차고 감옥에 갇힌 죄수 같다.

 

대소인원 하마비(大小人員下馬碑)를 지나 외삼문으로 갔습니다. 동입서출. 동쪽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이는 해가 마치 해가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지듯 자연 섭리를 따른 것입니다.

 


남해향교 앞 대소인원 하마비

명륜당(明倫堂)에 햇살이 곱게 드리웁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습니다.

 


남해향교 명륜당

갑오개혁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습니다.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습니다.

 


남해향교 명륜당과 동재(東齋서재(西齋)

 

명륜당 뒤편에 있는 대성전 사이 왼쪽에 동백나무들에 둘러싸인 도덕동산이 있습니다. 향교에서 공부하며 배우고자 하는 바가 뭔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남해향교 내 도덕동산

 

대성전에는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공자를 비롯한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의 5(五聖)과 송조 2((宋朝二賢)인 정자와 주자 그리고 우리나라 18(十八賢)이 모셔져 있다. 18현은 홍유후 (弘儒侯) 설총, 문창후 (文昌侯) 최치원, 문성공 (文成公) 안유, 문충공 (文忠公) 정몽주, 문경공 (文敬公) 김굉필, 문헌공 (文憲公) 정여창, 문정공 (文正公) 조광조, 문원공 (文元公) 이언적, 문순공 (文純公) 이황, 문정공 (文正公) 김인후, 문성공 (文成公) 이이, 문간공 (文簡公) 성혼, 문원공 (文元公) 김장생, 문열공 (文烈公) 조헌, 문경공 (文敬公) 김집, 문정공 (文正公) 송시열, 문정공 (文正公) 송준길, 문순공 (文純公) 박세채 이다.

 


남해향교 대성전으로 가는 내삼문

 

남해향교 대성전에서는 학교 제사라고 할 수 있는 <석전>을 봄, 가을 하고 있다. 학문 정진하자는 결의를 다지면서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을 담은 축제인 셈이다.

 


남해향교 대성전

 

향교를 나왔습니다. 옛 성현을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향교 근처 담벼락 담쟁이 위로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바람이 달곰하게 붑니다.

 


남해향교 근처 담벼락 담쟁이 위로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바람이 달곰하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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