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500리 남강 물길따라 만나는 경남 사람들의 삶과 문화-함양 화림동계곡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9. 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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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은 내게 늘 진주에서 머물렀다. 진주에게 나고 자란 내게 진주성과 촉석루, 논개로 떠올려지는 진주 남강이 전부였다. 기껏 산청 경호강이나 덕천강이 남강의 지류인 줄 알았다. 남강의 뿌리를 찾아 경남 전역을 누린 권영란의 <남강오백리 물길여행>은 열심히 읽으며 대리 만족을 하기도 했다. 저자와 함께하는 진주시립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 500리 남강 물길따라 만나는 경남 사람들의 삶과 문화인문학 강좌는 직장 근무까지 바꾸며 강의를 들었다. 저자이자 강사인 권영란은 수강생에게 우리에게 남강은 어떤 강이냐?”며 강의 내내 물었다.

 


915, 저자와 함께 남강의 발원지 상류 쪽으로 답사 떠났다. 장마 같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남덕유산 자락에 안긴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靈覺寺)로 향했다. 남강 발원지는 남덕유산 참샘이다. 남강은 남덕유산 정상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을 쥐어짜듯이 한데 모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서 첫 물길을 이루는데 우리 일행은 참샘 가까이에서 남강의 첫물을 받아 생활하는 영각사에서 시작했다.

 


남강 발원지는 남덕유산 참샘이지만 남강의 첫물을 받아 생활하는 곳은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 승려들이다. 영각사 입구에 있는 단추 구멍 같기도 하고 돼지코 같기도 한 구멍 2개가 뻥 뚫린 돌.

 

영각사는 876(신라 헌강왕 2)에 창건해 1770(조선 영조 46) <화엄경> 판목을 새겨 봉안했다는 오랜 절이다. 들어서는 입구인 일주문도 보이지 않았다. 아름드리나무 아래 단추 구멍 같기도 하고 돼지코 같기도 한 구멍 2개가 뻥 뚫린 돌이 먼저 반긴다. 당간지주를 세웠던 돌로 추정할 뿐 정확한 용도를 모른다.

 


함양 서상면 영각사 사천왕상은 마치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처럼 빛나는 칼을 들고 절을 지킨다.

 

돌을 뒤로하고 몇 걸음을 옮기자 코스모스가 저만치에서 어서 오라 손짓한다. 내려앉은 가을을 보는 듯 반갑다. ‘덕유산 영각사란 편액이 적힌 문을 들어서는데 사천왕상이 든 칼이 마치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처럼 빛난다. 문을 지나자 구광루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함양군 서상면에 있는 천년 고찰 영각사의 구광루는 분위기가 고풍스럽다.

 

천년 사찰의 기운이 여기에 모두 모여든 기분이다. 2층 창살이 고풍스럽다. 백일홍이 붉게 핀 화단 뒤편의 화엄전으로 향하지 않고 앞에 있는 약수터로 향했다. 남강의 첫물이라 생각하고 마셨다. 물은 맑고 시원했다. 온몸이 깨끗하게 정갈해지는 기분이다.

 


함양군 서상면에 있는 천년 고찰 영각사 화엄전.

 

영각사를 나와 남강 물줄기가 흘러가는 곳에 있는 논개묘라고 전해져 오는 방지마을 탑시기골로 향했다. 진주에서 고향 전북 장수로 가던 중 함양 서상에 이르러 시신이 부패해 더는 갈 수 없고 육십령 고개를 넘기 어려워 이곳에 안장했다고 전해져 온다. 함양군에서 논개묘 성영화 사업으로 비석과 높이 1.2m·지름 5.4m·길이 5.3m 대형분묘를 조성했다.

 


함양군 서상면 방지마을 탑시기골에 있는 전() 논개묘

 

고 김수업 전 경상대학교 교수는 <진주문화를 찾아서-논개>에서 이름 모를 무덤이 논개 무덤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로 지역에서 내려오는 말을 듣고 무덤을 찾았다고 언론에 소개하면서부터였다.”라며 논개의 묘라는 주장에 확인할 증거는 내려오는 이야기뿐이라고 했다. 무덤 보랏빛 무릇하나가 비바람에 고개 숙인다.

 


함양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있는 거연정

 

() 논개 묘를 나와 가늘어지는 가을비를 벗 삼아 화림동 계곡으로 향했다. 먼저 찾은 곳은 흐르는 계곡 사이 바위 위에서 우뚝 솟은 거연정이다. 옥빛으로 흐르는 물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다리를 건너 정자로 향하는 나 자신이 그대로 신선이 된 기분이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살아 움직이는 한 폭의 그림이다.

 


함양 안의면 화림동 계곡은 한 폭의 움직이는 그림이다.

 

기암괴석이 빚은 풍경 속 물은 웅덩이를 채운 다음에야 앞으로 나간다. 선비들이 이곳에 정자를 세운 까닭도 계곡물이 웅덩이를 가득 채운 후에야 흘러가듯 공부도 한 단계씩 완성해 나가야만 통달할 수 있다는 뜻을 되새겨 학문에 정진하려는 뜻은 아닐까.

 


함양 안의면 화림동 계곡 기암괴석이 빚은 풍경 속 물은 웅덩이를 채운 다음에야 앞으로 나간다.

 

풍경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내게 한다. 그림 같은 풍경을 시 한 수 절로 떠올렸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의 시(안음 옥산동에서 놀다 遊安陰玉山洞(유안음옥산동)를 읊었다.

 

푸른 봉우리 우뚝 솟았고 물은 쪽빛인데 碧峯高揷水如藍(벽봉고삽수여람)

좋은 경치 많이 간직했어도 탐욕 되지 않아. 多取多藏不是貪(다취다장불시탐)

이 잡으면서 어찌 꼭 세상사 이야기할 것 있으랴? 捫蝨何須談世事(문슬하수담세사)

산 이야기 물 이야기만 해도 이야기가 많은데. 談山談水亦多談(담산담수역다담)’



함양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있는 군자정은 일두 정여창 선생의 후손들이 선생을 기려 정자를 짓고 군자가 머무르는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지었다. 사진 왼쪽 나무 우거진 곳에 정자가 있다.

 

거연정을 나와 하류 쪽으로 150m 거리에 있는 군자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두 정여창 선생의 후손들이 선생을 기려 1802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지었다. 군자정을 에워싼 식당 때문에 마치 식당에 딸린 건물로 보인다.

 

군자정을 나와 좀 더 아래 동호정으로 향했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도망갈 때 등에 업고 갔다는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95년 건립한 정자다.

 


함양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있는 동호정은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도망갈 때 등에 업고 갔다는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9년 건립한 정자다.

 

정자 아래 1층은 자연 그대로의 재목이 틀어지거나 울퉁불퉁한 그대로 썼다. 2층의 목재는 정연하게 다듬어 사용했다. 누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을 올라야 한다.

 


함양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있는 동호정 2층 누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을 올라야 한다.

 

대들보 위 충량(衝樑)에는 용머리가 좌우에 있다. 여의주를 문 용과 달리 한쪽에는 물고기를 물고 있다. 색다른 모습이다. 물고기를 문 용은 다산을 상징하거나 풍요를 상징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살짝 손을 얹고 기원이라도 하고 올 걸 뒤늦은 후회다.

 


함양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있는 동호정에는 대들보 위 충량(衝樑)에는 여의주를 문 용과 달리 한쪽에는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이 있어 색다르다.

 

정자 앞에는 수백 명이 앉아 쉴 수 있는 차일암이라 불리는 너른 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술 마시며 악기를 연주해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면 가슴이 뻥 뚫릴 듯하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함양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있는 동호정 앞에는 수백 명이 앉아 쉴 수 있는 차일암이라 불리는 너른 바위가 있다.

 

지금 여기 흐르는 물은 함양과 산청을 거쳐 내 사는 진주로 오는 동안 남강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남강 여행이 아닌 물길여행이다. 아름다운 풍경 너머에는 아픈 역사가 스며있다. 고된 삶을 강물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남강 오백리, 물길의 시작 상류에 있는 함양 안의면 화림동 계곡.

 

남강 오백리, 물길의 시작과 끝은 경남이다. 길이 189km에 달하는 남강의 상류 일부만 걷고 남강이 품은 전설과 풍경의 일부를 맛보았다. 남강은 우리에게 남강은 어떤 강이냐?”고 쉼 없이 묻고 흘러간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귓속에 졸졸졸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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