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은 진짜 사나이들이 깃든 임란창의기념관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8.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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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임란창의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합천댐으로 가는 길에서 용주면으로 넘어가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산비탈 쪽에 있다.

 

끝이 없을 줄 알았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도 끝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일을 하루 앞둔 28, 의를 실천한 진짜 사나이들을 찾아 경남 합천으로 향했다.

 


임란창의기념탑

 

합천댐으로 가는 길에서 용주면으로 넘어가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산비탈 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목숨 바친 선열들의 영위 봉안과 유물, 유품들을 전시한 성지입니다라는 선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합천호(陜川湖) 옆의 산비탈을 4단의 층으로 터를 닦아 2001510일 개관한 임란참의기념관(壬亂倡義記念館 )이다.

 

붉은 홍살문을 들어서 차를 세우고 고개 들어 높다란 계단 위에 우뚝 솟은 탑을 바라봤다. 합천 임란 창의 기념탑이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올라가면서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패퇴만을 거듭한 관군을 대신하여 붓과 호미를 던지고 분연히 일어난 정인홍 의병장을 중심으로 윤탁, 박사제, 전치원, 이대기를 비롯해 6천여명이 넘는 무명 의사(義士)의 충혼을 기렸다.

 


임란창의기념탑 하단 세 모서리에는 죽창·괭이··쇠스랑 등을 든 의병 조각상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탑 하단 세 모서리에는 죽창·괭이··쇠스랑 등을 든 의병 조각상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사당으로 향하는 쪽으로 있는 ()’라는 깃발을 든 조형물에 걸음을 멈췄다. "일제가 그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 200년은 갈 줄 알았다"라며 자신의 친일 행각을 변명하기 급급했던 미당 서정주의 말이 겹쳐 떠올랐다.

 


임란찬의기념탑은 의를 실천한 조선 민중들의 넋을 기린다.

 

기념탑 뒤의 두 번째 계단을 올라 숭인문(崇仁門) 지나자 왼편에 왜적을 물리친지 400돌인 1988년에 세운 합천 임란 창의 사적비가 나온다. 맞은편에 연못이 있다. 세 번째 계단을 오르면 유물관과 교육공간으로 쓰이는 강당 건물인 경의당(敬義堂)이 나온다.

 


임란창의기념관 내 유물관

 

찾아오는 이가 적어서 그런지 뮤물관 문은 열려 있지만 안내하는 이도 전등불이 모두 꺼져 있어 휴대전화에 붙은 전등으로 겨우겨우 전시물을 읽었다.

 


임란창의기념관 내 유물관에는 <임진왜란 발발>, <항일 의병의 활약>, <합천 의병의 활약>, <합천 의병의 맥>로 꾸며져 있는데 전쟁 당시의 유물 30여 점도 전시되어 있다. 찾아오는 이가 적어서 그런지 뮤물관 문은 열려 있지만 안내하는 이도 전등불이 모두 꺼져 있어 휴대전화에 붙은 전등으로 겨우겨우 전시물을 읽었다.

 

유물관에 들어서는 정면에 정인홍의 <과무계(過茂溪, 무계를 지나며)>가 먼저 반긴다. ‘필마로 옛 싸움터를 지나노라니(匹馬經過舊戰場)/강물은 한을 품고 길게 흐르네./(江流遺恨與俱長)/지금도 그 누가 왜적과 강화를 말하는가?(於今誰唱和戎說)’

 

1595년 평양과 서울에서 후퇴한 일본군들이 남해안 일대를 점령하고 있는데도 조정 일부에서 평화협정을 맺자고 주장하는 등 국론이 분열되자 정인홍이 경각심을 주기 위해 현재의 고령 성산 무계지역을 지나면서 지은 시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당시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합천지역 의병들의 전투 장면을 재현한 전시물.

 

유물관에는 <임진왜란 발발>, <항일 의병의 활약>, <합천 의병의 활약>, <합천 의병의 맥>로 꾸며져 있는데 전쟁 당시의 유물 30여 점도 전시되어 있다.

 

의병활동의 사상적 기반이 실천하는 선비 남명 조식 선생에 있다고 적혀 있다. 의병장 정인홍을 비롯해 망우당 곽재우 등 50여 명의 의병장들이 선생의 제자들이었다.

 


임란창의기념관 충의문에서 바라본 악견산과 임란창의기념비

 

네 번째 계단을 올라 충의문(忠義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내삼문을 지나면서 잠시 멈췄다. 눈앞에 악견산(嶽堅山)과 합천호의 풍경이 펼쳐진다.

 


임란창의기념관 창의사는 의병장 정인홍과 의병 113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충의문을 지나 곧장 의병장 정인홍과 의병 113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 창의사(彰義祠)로 향했다


창의사 현판은 12대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씌여져 있다. 사당 옆 나무 한 그루도 2001년 방문한 걸 기념해 심었다고 한다. 씁쓸하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가 비록 여기 합천 출신이지만 의()를 실천한 이들의 넋을 기리는 공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임란창의기념관 창의사 뜨락에 있는 아무런 글씨도 씌여 있지 않은 자연석에서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은 진짜 사나이들을 보았다.

 

정인홍의 위패를 중심으로 양쪽에 무명 의병 위패가 있고 양쪽으로 의사들의 위패가 놓여 있다. 향하나 피워 묵례를 올렸다. 사당을 나와 오른편에 덩그러니 있는 두 바위를 보았다. 아무런 글씨도 씌여 있지 않은 자연석이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은 진짜 사나이들이 바위에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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