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천천히 느긋하게 즐기는 별천지- 하동 섬등 갤러리 골목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8. 2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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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 하는 나들이는 늘 조심스럽다. 여든을 코앞에 둔 어머니가 불편하지 않게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과 더불어 색다른 구경거리를 볼 수 있는 곳을 찾기라 쉽지 않다. 그런 걱정을 날려버릴 곳으로 19일 어머니와 하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동 최참판댁 마을을 지나자 어머니는 다소 의아해했다. 최참판댁 동네를 지나 면사무소 쪽으로 더 가면 하덕마을이 나온다. 들어가는 초입 나무 그늘에 동네 사람들이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마을 쉼터 앞에 차를 세우자 왼쪽으로 커피와 단팥죽, 팥빙수 등을 파는 카페 팥이야기가 나온다. 카페 초입 마당에는 자잘한 흰 꽃 겹물망초들이 안개처럼 피었다. 아쉽게도 여름휴가 중이라 문이 닫혔다.

 

그 앞으로 섬등 갤러리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하덕마을을 예전에는 섬처럼 뚝 떨어진 마을이었기에 지역말로 섬등이라고 불렀다. 외떨어진 듯한 이곳에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고 있다. 이 마을에 27명의 작가들이 동네에 살며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림과 사진, 조형물이 마을 속에 녹아만든 벽화 마을이다.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과 색다른 풍경이다.

 

그 옆 담벼락에는 차 꽃 피던 날이란 설레는 글귀가 분홍빛으로 그려져 있다.

하덕마을 골몰길 갤러리를 본격적으로 걸었다. ‘스스로 풍경이 된 마을이라는 이선일의 작품이 담벼락에 담쟁이 넝쿨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 알알이 매달려 오르고 있다. 조상이라는 내 뿌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고마움을 자연스럽게 느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만남이 이번 골목길 나들이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려준다. 하늘을 담은 파란 대문 옆으로 하얀 꽃들이 피었다. 오치근의 차꽃이다. 마치 황금알을 품은 하얀 꽃들이 나뭇잎을 날개 삼아 시원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다.

 

맞은편에는 다양한 다기를 담은 그림이 차향을 품어낸다. 처마 끝에는 차꽃 조형물이 내려다본다. ‘달 아래서라는 박현효의 작품은 잠시 고단한 나그네의 힘을 위해 빈 의자를 내밀었다. 통영 동피랑의 천사 날개 부럽지 않다.

 

골목은 어디를 가도 아기자기한 소품을 이용한 다양한 볼거리가 걸음을 붙잡는다. 그중에서도 쌍계사 가는 길이라는 김준현의 작품은 시멘트 담벼락 위에서 초록 넝쿨을 따라 신명나는 농악을 울리며 가는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뒤따른다. 절로 어깨가 올라갈 무렵 빨간 석류가 깊어가는 여름을 품었다.

 

소 멍에를 받던 사람들 사이에 문득 농사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소를 위해 고마운 마음이 솟구친다. ‘함께했소라는 넉넉한 마음이 햇살과 함께 드리운다.

 

흙과 돌이 어우러진 돌담길 위로 진녹색 나뭇잎들이 하늘하늘 바람에 춤춘다. 양은 대야 속에서 생활차를 만드는 할머니 손길이 정겨운 모습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거울에 비친 나도 더불어 비춘다.

 

시멘트 담벼락 사이를 빨간 트럭이 앞서자 초록색 트럭이 뒤따른다. 함께한 어머니는 연신 골목길 사이사이 그림을 구경하기 바쁘다.

어머니도 세월을 낚으시는 강태공이 되셨는지 돌담 위에 녹슨 철망으로 투망하듯 펼쳐진 작품을 한참을 들여다본다. 옆으로 담쟁이덩굴이 어머니를 살포시 바라본다.

 

타박 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고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명태 줄라 명태 싫다 가지 줄라 가지 싫다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는 전래 민요를 담벼락에 적은 카페 타박네가 골목 끝자락에 우리를 반긴다.

 

가게 안은 작고 귀여운 소품들과 좋은 말만 하자! 그러자!(말이 씨가 된다)’와 같은 좋은 말씀을 담은 글귀들이 메모지처럼 여기저기 붙어 있다. 얼음 커피와 찐빵을 시켜 먹었다.

 

타박네에서 숨을 고른 뒤 다시금 차를 세웠던 곳으로 걸었다. 담벼락 아래 토란대가 햇볕에 익어간다. 골목길이 이렇게 고즈넉할지 몰랐다. 마을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그림 동화처럼 펼쳐진 이곳은 보물섬이다. 어머니와 함께 산뜻하게 데이트를 즐기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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