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4

다시 남명이다8-의리 사나이 내암 정인홍, 그 스승에 그 제자

다시 남명이다! (8)그 스승의 그 제자, 내암 정인홍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은 사나이, 내암 정인홍 엉덩이가 들썩이는 가을이다. 어디로 떠나도 좋을 때다. 훅 가버릴지 모를 가을을 머금은 합천 가야산 소리길은 가을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가야산 해인사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가을과 팔만대장경 못지않게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단재 신채호가 을지문덕, 이순신과 함께 우리나라 삼걸(三傑)로 꼽은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1536~1623)을 만날 수 있다. 내암은 정인홍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빼닮은 수제자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일 일어나자 발발하자 영남 의병대장으로서 선봉에 서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광해군 집권기에는 대북세력의 영수로서 산림 정승의 위명을 높이 떨치기도 했..

다시 남명이다6- 지리산 별이 된 조선 선비, 남명 조식

지리산 별이 된 조선 선비 지리산으로 가는 길, 남명 만나러 가는 길 이름만 떠올려도 설레는 지리산. 마침내 지리산에서 별이 된 조선 선비가 있다. 바로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년)이다. 지리산을 수십번을 다녀온 남명은 나이 61세가 된 1561년(명종 6년),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진주 덕천동 (산청군 덕산면)으로 이사를 했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1572년 2월 8일 72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감했다. 남명을 만나러 가는 길은 지리산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지리산 자락은 뙤약볕이 무자비하게 내리쬐던 여름날에도 차 안 에어컨을 끄게 한다. 차창을 내리자 싱그러운 기운이 깊고 느리게 밀려온다. 계곡을 따라가다 길가 주차장에서 잠시 시동을 껐다. 지리산 중..

다시 남명이다5-남명과 퇴계 사이, 닮은 듯 다른 삶과 가르침, 남명과 퇴계 사이

▣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어릴 적, 마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묻는 뭇사람들의 질문처럼 부질없는 생각을 곧잘 하곤 했다. 경상 좌도와 우도를 대표하는 남명 조식 (南冥 曺植 1501∼1572)와 퇴계 이황 (退溪 李滉 1501-1570) 중 누가 더 뛰어난 선비인지 학자인지 묻는 말도 그렇다. “퇴계가 소백산 밑에서 태어났고, 남명이 두류산 동쪽에서 태어났다. 모두 경상도의 땅인데, 북도에서는 인(仁)을 숭상하였고 남도에서는 의(義)를 앞세워, 유교의 감화와 기개를 숭상한 것이 넓은 바다와 높은 산과 같게 되었다. 우리의 문화는 여기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 중에서)”는 성호 이익의 글처럼 조선 유학의 절정에 이른 남명과 퇴계 선생은 왜 서..

하동 가볼만한 곳 - 하동 악양정

지식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엿보게 하는 하동 악양정 장수시대입니다. 그렇지만 한 나라가 장수하기는 드뭅니다. 그럼에도 조선은 무려 500년이 넘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힘에 의한 강압적인 지배가 아닌 명분과 의리를 밝혀 민중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왕도(王道)정치를 펼친 까닭입니다. 조선 시대 지식인, 선비들이 그러한 정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조선 선비들의 삶을 엿보기 위해 하동 악양정,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 선생의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동 악양면 넓은 평사리 들녘을 지나 화개장터로 향하다 멈췄습니다. 도로 확포장 공사로 어수선합니다. 악양정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마을로 올라가는 길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먼저 ..

경남이야기 2020.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