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하동 가볼만한 곳 - 하동 악양정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0. 6. 20.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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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엿보게 하는 하동 악양정

 

장수시대입니다. 그렇지만 한 나라가 장수하기는 드뭅니다. 그럼에도 조선은 무려 500년이 넘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힘에 의한 강압적인 지배가 아닌 명분과 의리를 밝혀 민중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왕도(王道)정치를 펼친 까닭입니다. 조선 시대 지식인, 선비들이 그러한 정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조선 선비들의 삶을 엿보기 위해 하동 악양정,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 선생의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동 악양면 넓은 평사리 들녘을 지나 화개장터로 향하다 멈췄습니다. 도로 확포장 공사로 어수선합니다. 악양정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마을로 올라가는 길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먼저 반깁니다. 넉넉한 그늘에서 숨을 고릅니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마을 속으로 들어나면 넓은 시멘트 마당이 나옵니다. 악양정 앞마당입니다.

악양정(岳陽亭)은 모친이 별세하자 3년간의 시묘살이를 마친 일두 선생이 처자식을 이끌고 아예 지리산 악양으로 다시 들어가 18년간 은둔하며 공부하며 제자를 양성한 곳입니다.

한 마리 좀벌레(一蠹)’라고 호를 지은 선생은 18세에 부친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다 순국하자, 나라에서 벼슬을 내렸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식이 영화를 누리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할 일이라면서 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선생은 술 마시고 않고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친이 소를 보고 놀랐고 술을 마시지 말라 명하신 것을 따른 것입니다.1483(성종 14)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가 세자시강원 설서(說書), 안음(安陰) 현감을 지냈습니다.

연산군 4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곤장 100대를 맞고 두만강 근처 함경도 종성(鍾城)에 유배되어 관노 생활을 하다가 1504(연산군 10) 음력 41, 55세를 일기로 유배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문인들이 2달에 걸쳐 시신을 함양으로 옮겨와 장사지냈는데 같은 해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다시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했습니다.

중종 때 우의정에 추증되고, 광해군 때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조선조 동방 5현과 동국 18현 가운데 한 분으로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234 향교와 9개의 서원에서 제향(祭享) 되고 있습니다.

 

들어서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려는 데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은 소나무가 눈길을 끕니다. 오가는 이들을 구경하려고 까치발을 든듯합니다.

대문 한쪽에는 방문을 원하는 이들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찾은 날은 연락할 필요 없이 문이 열려 있어 쉽게 정자로 들어갔습니다.

악양정 누각을 지나 뒤편에 있는 덕은사(德隱祠)에로 먼저 걸음을 옮겼습니다.

사당에는 주희(朱熹)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정여창,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돈재(遯齋) 정여해(鄭汝諧) 5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고개 숙여 예를 올리고 물러나왔습니다.

현재의 악양정은 선생이 지은 당시의 모습이 압니다. 무오사화 이후 400년 동안 정각은 허물어졌습니다. 선생을 추모하던 지역 유림이 19014월에 3칸의 정각을 중건하고 1920년에 다시 4칸으로 중수했습니다. 1994년 대대적으로 보수해 정면 4칸 규모로 5량 구조로 현재에 이릅니다.

악양정 대청에 올라 주위 풍광을 바라봅니다. 섬진강의 맑은 물줄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강바람만 시원하게 오갑니다.

일두 선생의 흔적을 통해 선비란 무엇인지, 지식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되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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