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함양여행-‘도를 잘 관찰하라’는 관찰사의 숨은 뜻을 찾아서 경남 함양박물관에서 함양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구경하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6. 3.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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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를 목욕탕으로 보내고 나는 부랴부랴 걸음 옮겼다. 36, 아내와 장모님이 목욕을 마치기를 기다리며 경남 함양 상림공원 입구에 있는 함양박물관을 다녀왔다. 함양에 처가가 있어 자주 상림을 찾으면서도 201412월에 문을 연 박물관을 그동안 몇 번 지나쳐 아쉬웠다. 함양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둘러보고 싶었다.

 


3층으로 이뤄진 함양박물관 1층은 어린이 체험실 등이 있다.

 

문 열고 들어선 1층은 어린이 체험실이 한쪽에 있다. 아이들이 기와 지붕의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춘 공포 쌓기 등의 체험을 하느라 북적였다. 1층을 지나 올라간 2층은 2,000여 점의 기증 유물로 특별 기획 전시를 하고 있었다. ‘기증으로 꽃피운 문화재 사랑,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다는 말처럼 유물 하나하나 삼가 살폈다. 기증 유물 중에는 40여 년 동안 아내와 함께 수집해오던 유물을 기증한 한 사례도 있다. 오늘날 머그잔과 같은 삼국시대 컵형 토끼가 눈길을 끌었다. 커피를 담기에는 너무 큰 컵이고 그릇이다. 무얼 담아 손잡이로 마셨을지 궁금했다.

 


함양박물관 2층은 2,000여 점의 기증 유물로 특별 전시 중이다. 기증으로 꽃피운 문화재 사랑,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다는 말처럼 유물 하나하나 삼가 살폈다.

 

컵형 토끼를 지나 가운데 전시대로 걸음을 옮기자 졸업증서와 졸업앨범이 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인 1938년 함양중학교의 전신인 함양공립농업실수학교 제4회 졸업앨범과 졸업증서다. 앨범 속의 졸업생들은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다.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를 떠올리며 구경하는 재미가 또한 쏠쏠하다.

 



1938년 함양중학교의 전신인 함양공립농업실수학교 제4회 졸업앨범 속의 졸업생들은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다.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를 떠올리며 구경하는 재미가 또한 쏠쏠하다.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조선 시대 그림인 영모도속 고양이도 나처럼 꽃 속을 노니는 나비를 나처럼 바라본다. 반달 돌칼, 마제 석검, 돌화살촉이 나란히 옆으로 전시되어 청동기 시대를 드러내기도 한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 뒤편에는 삼국시대 뿔잔이 있다. 소와 같은 짐승의 뿔을 이용해 만든 잔으로 각배(角杯)’라고도 한다. 근데 나에게는 잔이 아니라 나팔 같다. ‘들어보라, 머나먼 삼국시대의 이야기뿔잔은 내게 삼국시대뿐 아니라 각 시대의 유물로 떠나게 한다.



함양박물관에 전시된 뿔잔은 소와 같은 짐승의 뿔을 이용해 만든 잔으로 각배(角杯)’라고도 한다. 근데 나에게는 잔이 아니라 나팔 같다.

 

손때 묻은 논어 앞에서는 입신양명 등을 위해 공부한 선조들의 열정이 엿보인다.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돌돌 말아 쓴 서찰은 깨알 같은 글씨로 어떤 사연 담았는지 훔쳐보고 싶다.

 


함양박물관에 전시된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돌돌 말아 쓴 조선 시대 서찰은 깨알 같은 글씨로 어떤 사연 담았는지 훔쳐보고 싶다.

 

서찰을 지나 경상남도 관찰사 보고서에서 걸음은 멈췄다. 경상남도 관찰사가 지방의 선비들이 연명을 달아 보내온 상서문에 대한 보고서를 써서 장례원에 보낸 문서다. 관찰사 보고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연호, 벼슬 이름 덕분에 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고 100여 년 전으로 역사 여행을 떠났다.

 

보낸 이는 경상남도 관찰사 조시영(曺始永, 1843~1912)이고 받는 이는 장례원경(掌禮院卿) 조병필(趙秉弼)이다. 보낸 때는 광무(光武) 3105. 보고서 속에 등장한 장례원경은 장례원에 소속된 으뜸 벼슬로 1895(고종 32) 궁중 의례 전반과 제사 등의 업무를 보던 종백부(宗伯府)를 고친 이름이다. 1895년 경남도 관찰사를 지낸 조병필은 단발령의 시행으로 을미의병이 봉기하자 도주했다가 이후 강원도 관찰사, 비서원승, 장례원경 등의 벼슬을 했다. 조시영은 조병필 이후 1896년 경남도관찰사를 맡았다.

 


함양박물관에 전시된 경상남도 관찰사 보고서에서 걸음은 멈췄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연호, 벼슬 이름 덕분에 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고 100여 년 전으로 역사 여행을 떠났다.

 

독립신문에는 조시영이 관찰사를 맡았을 때 한 달을 간격을 두고 상반된 기사가 실렸다.

 

먼저 189855일 독립신문 기사에는 경상 남도 관찰사 조시영씨가 진주군 강대중을 잡아다 죄 없는 사람을 때려 가두고 엽전 일만 냥 뺏고 놓았으며 진주군 윤재선의 여식을 양첩 아니 준다고 윤재선을 때려 가두었다고 그곳 사람의 편지 본사에 왔으니 참 그런지 우리는 알 수 없거니와 다만 편지만 기재 하노라(경샹 남도 관찰조시영씨가 진쥬군강대즁을 잡아다 죄 업려 가두고 엽젼 일만량 고 노핫스며 진쥬군윤션의 녀식을 양쳡 아니 준다고 윤션을 려 가두엇다고 그곳 사의 편지본샤에 왓시니 참 그런지 우리알슈 업거니와 다편지 노라)’며 관찰사의 학정을 고발한 투고가 실렸다.

 

이후 같은해 67일자에는

오월 오일 목요 제 오십 삼호 신문 잡보에 경상 남도 관찰사 조시영씨가 진주군 강대중을 잡아다 때려 가두고 엽전 일만 냥을 뺏고 진주군 윤재선의 여식을 양첩아니 준다고 윤재선을 때려 가두었다고 그곳 사람의 편지가 본사에 여러 번 왔기에 참 그러 한지 우리는 알 수 없노라고 다만 기재만 하였더니 지금 강진희와 강규형이가 강원로씨의 편지를 가지고 본사에 와서 말 하는데 그 편지에 하기를 강대중은 본시 돈도 없고 지금은 단성군 산협에 가서 사는데 이런 허무한 말이 신문에 난 까닭에 관찰사 조씨가 억울 하여 강대중을 잡아 가두고 발명 하기 전에는 놓을 수 없다 하니 강대중은 무단히 횡액에 들었으며 윤재선은 진주 경내에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강진희 강규형 양씨가 또 말씀으로 발명 하기에 이에 정오 하노라(오월 오일 목요뎨 오십 삼호 신문 잡보에 경샹 남도 관찰조시영씨가 진쥬군강대즁을 잡아다 려 가두고 엽젼 일만량을 고 진쥬군 윤션의 녀식을 냥쳡아니 준다고 윤션을 려 가두엇다고그곳 사의 편지가 본샤에 여러번 왓기에참 그러 지 우리알슈 업노라고 다 엿더니 지금 강진희와 강규형이가 강원로씨의 편지를 가지고 본샤에 와셔말  그 편지에 기를 강대즁은 본시 돈도 입도 지금은 단셩군 산협에 가셔사 이런 허무말이 신문에 난 에관찰조씨가 억울 야 강대즁을 잡아가두고 발명 기 젼에노흘슈 업다 니 강대즁은 무단히 횡에 들엇시며 윤션은 진쥬 경에 업이라고 엿스며 강진희 강규형 량씨가 으로 발명 기에 이에 졍오 노라)’라는 정정 기사가 실렸다.

 


함양박물관 3층에는 지리산 높이 솟아올라 만 길이나 거대한데/그 산 속엔 묻힌 옛 고을 함양이라 이르네/화장사 옛 절터 지나서 엄천으로 가는 길에/푸른 대밭 띳집 있는 곳 거기가 내 고향일세라고 쓴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시가 먼저 반긴다.

 

관찰사를 무고(誣告)한 지역민의 편지가 실린 기사였는지 명확하게 나는 모른다. 관찰사(觀察使)라는 벼슬 이름은 도를 잘 관찰해서 도민(백성)들의 삶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 숨어 있다. 조선시대 지방 장관으로 종 2품 벼슬아치였던 관찰사는 요즘의 도시자에 비할 바 없는 절대 권력자였다. 관찰사는 관할 지역에서 경찰권, 사법권, 징세권을 가졌다. 관찰사를 다른 말로 감사라고 불렀는데 관찰사가 있던 관청을 감영이라 했다.

 


함양박물관 3층은 함양인의 삶과 정신, 자연의 조화라는 주제로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함양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상설 전시장이다.

 

 

조선 시대에 경상도 관찰사는 경북인 대구에만 주재했다. 1895년 경상도는 진주, 동래, 대구, 안동부에 관찰사를 두고 모든 군을 나누었다. 지금의 행정구역인 경상남도는 1896(건양 1) 84일 칙령 제36호로 지방제도 관제 등을 개정하며 종전 23부를 13도로 개칭할 때 경상도를 남·2개 도로 나누면서부터 진주에 경남도 관찰사가 머물렀다. 1910년 일제강점 이후 관찰부는 도청으로, 관찰사는 도장관으로 바꿔 부르다가 다시 도지사로 불리게 되었다. 초대 관찰사는 진주 부사로 재임하던 이항의를 경상남도 관찰사로 승진 임명하였다.

 


함양박물관 3층에 전시된 남계서원 모형. 남계서원은 경북 영주 소수서원 다음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린다.

 

보고서에 적힌 광무1897년 고종 34년에 제정된 대한제국 연호다. 1895년 갑오개혁 때 양력을 사용하기로 하고 첫 연호를 건양(建陽)이라 정했다. 이후 아관파천(俄館播遷)이 있었던 뒤 18972월 다시 환궁하자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광무 원년은 조선 개국 506년인 셈이다.

 

2층 기증 유물 전시실을 나와 3층에 이르렀다. 3층은 함양인의 삶과 정신, 자연의 조화라는 주제로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함양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상설 전시장이다.

 

들어가는 입구에 중국의 명문장가 사마천, 구양수에 비유되었던 조선의 문신 사숙재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시가 먼저 반긴다.

지리산 높이 솟아올라 만 길이나 거대한데/그 산 속엔 묻힌 옛 고을 함양이라 이르네/화장사 옛 절터 지나서 엄천으로 가는 길에/푸른 대밭 띳집 있는 곳 거기가 내 고향일세

 


조선 시대 태종이 ! 그날 교외에 나가 전송한 게 평생의 이별이 될 줄이야!”라며 직접 애절한 조사(弔辭)를 지어 죽음을 애도한 하륜의 부조묘에서 출토된 향합과 향로

 

시처럼 내 고향처럼 푸근한 함양의 이야기가 전시실에 펼쳐졌다. 먼저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된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함양까지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연대표가 시대별로 이어져 있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 다음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의 모형이 나온다. 남계서원은 명종 7(1552) 지방 유생들이 일두 정여창(鄭汝昌) 선생을 기리고 후학을 기르기 위해 창건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망원경처럼 모형 건물을 비추자 가상의 영상 인물이 등장 서원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재밌다.

 


함양박물관에 전시된 조선 시대 종이로 만든 책가방.

 

서원 뒤편으로 함양을 빛낸 인물들이 나온다. 이중 하륜의 부조묘 소장 향합과 향로가 눈길을 끈다. 하륜은 조선 시대 태종이 ! 그날 교외에 나가 전송한 게 평생의 이별이 될 줄이야!”라며 직접 애절한 조사(弔辭)를 지어 죽음을 애도한 진주 사람이다. 현재 미천면 진양오방산 조선조팔각형고분군(晋陽梧坊山朝鮮朝八角形古墳群)’에 묻혀 있다. 그런데도 하륜의 부조묘가 함양에 있는 까닭은 후손들이 여기 함양에서 다시 터를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한다.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을 받아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다.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하륜도 불천지위가 되었다. 이렇게 모셔진 부조묘가 함양 병곡면 도천리에 있다.

 

하륜을 비롯해 고운 최치원, 일두 정여창 등과 같은 함양과 인연을 맺거나 태어난 인물들은 한둘이 아니다. 뒤편에는 짚으로 만든 도시락이 나오고 조선시대 종이로 만든 책가방도 있다.

 


에야 디야 에헤야 에 헤 헤 두견이 울음 운다. 두둥가 - 실실 너 불러라로 시작하는 함양 양잠가

 

물레가 나오는 뒤편으로 에야 디야 에헤야 에 헤 헤 두견이 울음 운다. 두둥가 - 실실 너 불러라로 시작하는 함양 양잠가가 씌여져 있다. 너는 죽-어 만첩 청산에 고드름 되거라 나-는 주- 죽어서 아이가이가 봄바-람 될거-/ 에야 디야 에헤야 에 헤 헤 두견이 울음 운다. 두둥가- 실실 너 불러라~”

 

양잠가의 노랫말을 한 구절 한 구절 따라 읽으니 고단하지만, 노래로 이겨낸 여인의 삶이 보인다.

 


함양박물관은 정자의 고장, 함양 거연정을 비롯해 농월정 등의 정자에 관한 글과 영상이 함께 소개되었다.

 

정자의 고장답게 함양의 거연정을 비롯해 농월정 등의 정자에 관한 글과 영상이 함께 소개되었다. 여기 박물관을 박차고 나와 기암괴석과 우거진 숲 사이에 있는 정자에서 자연을 벗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함양박물관 전망테크에서 바라본 상림공원 일대.

 

간절한 마음을 달래며 전망 테크로 올라갔다. 시원한 풍경 속에 볕이 참 따사롭게 내리쬐었다. 볕이 그리워 내려가자 허영자 기증 유물이 잔디 속에 걸음을 세운다. 네모 반듯한 돌이 맞댄 사이로 돌로 만든 두꺼비가 각각 앉아 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증을 자아내며 요모조모 살폈다.

 


네모 반듯한 돌이 맞댄 사이로 돌로 만든 두꺼비가 각각 앉아 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증을 자아내며 요모조모 살폈다.

 

걸음을 다시 옮겨 휴대폰 속 음악 감상, 뮤직박스라는 간판 아래 긴 의자에 앉았다. 휴대폰 블루투스를 켜고 음악 파일을 재생시켰다. 가방에서 꺼낸 캔커피 한잔을 마시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 감상하는 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박물관에서 가보고 싶었던 용추계곡의 거연정 정자에 앉았다. 맑은 물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여기로 옮겨온 듯 맑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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