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땡초 하나만 남기고 밤샘근무의 흔적을 지웠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4. 7. 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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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일하는 돌봄 노동자다. 오늘 밤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엊그제부터 저녁 9시30분부터 다음날 아침 7시30분까지. 세상이 점차로 밝아 올 무렵이면 몸은 양 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두개씩이나 채운 듯 무겁다. 더구나 직장인 경남 산청에서 집이 있는 진주까지 승용차를 운전하는 처지에서는 졸음 운전만큼 무서운 게 없다. 운전하면서 창문을 열고 신선한 바람을 쐬는 것은 물론이고 내 뺨을 떄리기도, 내 허벅지를 꼬집기도 한다.

 

다행히 오늘은 내 뺨도, 내 허벅지도 때리거나 꼬집지 않고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한 달에 사흘을 밤근무인데 오늘은 밤근무를 마치는 날이라 더 기분이 좋다. 차를 운전하면서도 전혀 졸릴지 않은 것은 아마도 내 자신에게 내가 주는 반가운 선물 덕분이라 믿는다.

 

내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 경비 아저씨들이 나와 출근하는 차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다. 나는 이렇게 퇴근하는 데 저렇게 출근이 한창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잠시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았다. 머리는 기름졌고 얼굴을 기름기가 빠진 듯 윤기 없었다. 두 눈만은 긴 밤을 지새운 사람이 아닌듯 똘망하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바닥에 신문 2부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출근에 바쁜 맞벌이 아내도, 학교 가기 바쁜 아이들도 문을 열고 나서자 배달된 신문을 부리나케 집안으로 던진 모양이다. 먼저 지역 일간지를 챙겨 소파에 앉아 찬찬히 읽었다. 20여 분이 흘렀나. 집을 나섰다. 아파트 내 작은 오솔길을 걸었다. 보통 때 같은면 무시하고 지나쳤을 길이다. 오늘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이슬보다 더 가는 비가 내 뺨을 어루만진다.

 

 

 

목적지인 아침을 해결할 국밥집으로 가는 길에 호프집 앞에 <벗을 만나>라는 시가 적혀 있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절친이었던 권필이 쓴 시를 풀언 쓴 글인지 모르지만 구절은 비 내리는 내게 술 마실 핑계를 더했다.

 

벗을 만나

 

벗을 만나 술을 찾으면 술이 날 따라오기 힘들고

술을 만나 벗을 생각하면 벗이 날 찾아오지 않네

한 백년 이 몸의 일이 늘 이와 같으니.

내 홀로 크게 웃으며 서너 잔 술을 따르네.

 

내홀로 크게 웃으며 서너 잔 술을 따르네 라는 구절을 힘주어 눈으로 읽었다.

 

 

목적지인 국밥집을 2차선 도로 앞 신호등에서 기다렸다. 신호를 기다리는 내게 영화 <복면달호>의 주제곡이 떠오른 것은 왜 일까. 

 

이차선 다리 위에 마지막 이별은
스치는 바람에도 마음이 아파와
왜 잡지도 못하고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어

---중략---

 

이차선 다리 위 끝에 서로를 불러보지만
너무도 멀리 떨어져서 안 들리네..

차라리 무너져 버려 다시는 건널수 없게
가슴이 아파 이뤄질수 없는 우리의 사랑

이차선 다리 위에 멈춰진 우리 사랑..

 

국밥집이 그렇게 그리웠나. 내 자신이 영화<복면달호> 주제곡을 떠오리면서도 웃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사랑을 노래할 만큼 편도 40여 분의 퇴근 길 졸음도 이겨낸 이 맛을 어찌 가벼이 여기겠는가.

 

 

 

음식을 주문하고 신문을 폈다. 목마른 참새가 방앗간 대신 수돗가에서 목을 축이는 사진이다. 나는 내 목마름을 축이기 위해 막걸리를 시켰고, 순대국밥을 주문했다.

 

 

 

사흘동안의 밤근무를 무사히 마친 나 자신을 위해 국밥이 오기 전에 먼저 잔을 채워 격려했다. 시원한 막걸리가 목을 타고 벌컥벌컥 들어간다. 지난날의 힘겨움이 벌컥이는 소리와 함께 내 배 속으로 들어갔다.

 

 

 

한 잔을 채워 마셨고 두 잔을 마시는 중에 순대국이 나왔다. 당면을 넣은 순대가 아니다. 돼지 피로 속을 채운 순대가 뽀얀 소 사골 국물에 담겨 있다. 후~ 후~. 뜨거운 기운을 입으로 바람을 불어 잠재워 후르륵 입속으로 넣었다. 피곤에 쩔여 눅진한 몸이 순대와 함께, 국물과 함께 씻겨가는 느낌이다.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었다. 아뿔사, 늦었다. 땡초다. 입에서 불이 나자 탁자 사발을 물인양 들이켰다. 속에서 화끈화끈 열이 난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더 마셨다. 밑반찬을 안주 삼아 마저 먹었다. 땡초 하나만 남기고.

 

국밥집을 나섰다. 올때와 달리 비가 세차다. 그저 맞았다. 기름진 머리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뛰지 않았다. 안경에도 방울방울 맺혀 앞을 가렸지만 익숙한 길이라 그냥 걸었다. 집에 도착했다. 샤워기를 틀어 온 몸에 밤샘 근무의 흔적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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