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고 좋은 글

열애쑥쎅당 당수와 인터뷰 하는 날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4. 1. 23. 11:07
728x90

오늘(123) 드디어 열애쑥쎅당 당수이신 곽도송 선생과 인터뷰 하는 날입니다.

그분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따라서 업계의 관행과 경애하는 지도자 각하의 잘 짜여진 각본에 따른 신년 기자회견처럼 사전 질의를 아래와 같이 보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사전 질의 마저도 비공개가 아니라 공개로 합니다. 왜냐면 오후 11, 사상 최초의 댓글을 통한 인터뷰는 각본 없이 흐를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대표 위 성표권성표 선생의 넘치는 질문이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으리라 믿습니다.

 

먼저 간단한 호구 조사부터 하고 인터뷰 들어가겠습니다. 1972년생으로 설 지나면 마흔 셋. 성별은 여성. 산청에서 출생, 고교시절부터 진주에 있는 제일여고로 유학, 경상대학교 화학과 입학하셨습니다. 대학 재학 중에는 몸짓패 함께하는 터에서 열정적인 몸짓으로 뭇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뜻한바 있어 진주를 떠나 강원도 원주에서 국내 최초 댓글작가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호구조사가 빈약합니다만 사실인지 확인 부탁합니다.

 

진주제일여고는 1990년대 진주지역 남자고등학생들이 기피하는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여고생과 달리 발랄함의 극치였다는... 그럼에도 고교시절 미팅 등을 해보셨는지.

 

무수히 많은 학과 중에서 화학과을 선택한 것은 성적에 맞춘 소신 지원인지요?

 

실버댄스를 능가한 몸짓패 함께하는 터는 재학 중 어떤 계기로 만들었나요?

 

 

몸짓패는 학교 내 각종 집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해 무수히 많은 뭇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팬들의 열화 같은 성화 덕분에 팬레터를 비롯한 많은 테이트 신청 등이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때 팬관리는 어떻게 하셨는지.

 

대학을 졸업하고 진주지역에서 공장에서 경리로, 학습지 교사로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나요?

 

한때 진주지역에 신화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가 방송,잡지,신문, 각종 기업 사보 등에 많은 사연과 경품 응모를 통해 한해 2천만원이 넘는 유가증권과 상품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전해 옵니다. 이제는 그 실체는 밝혀주실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진주에서 생활하다 홀연히 먼나먼 강원도 원주로 떠난 이유가 삼각관계에서 파생한 상처를 씻기 위한 도피처로 떠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강원도 원주는 특히 군인아저씨들이 많은 군사도시라 젊은 군인들의 기운을 받기 위한~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당수께서는 자칭 국내 최초 댓글작가로 근무한다고 하셨는데 댓글작가는 무엇을 말하는지. 대선 때 논란일 빚은 국정원 여직원과 비슷한지?

 

어머니 생신을 맞아 경남도민일보에 드디어 어머니를 세상에 드러낸 효녀인데요. 형제자매가 어찌 될까요? 어머니께서 많은 선을 주선했을거라 믿습니다. 어찌 그 험난한 유혹을 다 넘기셨는지요?

 

연인관계가 복잡미묘한 듯 합니다. 페북 회원 중 절대 다수가 남성입니다. 원하는 남성, 또는 여성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를 일컫어 정당이라고 합니다. 열애쑥쎅당은 어떤 이상을 가진 단체입니까? 언제부터, 어떻게 운영하고 당명에 담기 뜻과 회원은 몇 명인지?

 

열애쑥쎅당 당수께서 페북에 올리는 사진은 초록 리본으로 정체성을 드려내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참, 댓글 작가로서 사바대중들에게 어떻게 하면 댓글을 잘 쓸 수 있는 지 큰 가르침 부탁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