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밤 새지 마란 말이야!"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3. 9. 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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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밤 새지 마란 말이야!"

1990년대 <테마게임> 등에서 개그맨 김국진 씨가 유행시킨 철지난 유행어다. 이말이 어제 오늘 내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밤 새웠다. 밤 9시 30분부터 다음날 아침 7시 30분까지 밤 근무가 사흘 일정으로 근무로 잡혔기 때문이다.

 

 

응급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밤 근무는 잠과의 싸움뿐이다. 다행히 오늘도 어제처럼 위급한 상황은 없었다. 평균연령 76세의 중증장애인 생활시설의 밤 근무를 하면서 동료 직원은 <성심원 밤 부엉이 글라라의 기도>라고 짧은 글을 아래와 같이 썼다.

 

주여 충성 이옵니다

 

오늘밤

할배 할매들 무탈하게 잘 주무시게 자장가를 불러 주시옵기를

정히 안자겠다면 수면가루를 뿌려서라도 재워 주시옵고

기저귀 가는 손에 모타 달아 주시옵고

밤 부엉이처럼 눈과 귀 소머즈로 만들어 주시옵기를

짝지가 슈퍼맨처럼 변신, 척척 잘하게 해주옵소서

순한양이 싫다면 순한 굉이로라도 만들어 주소서

    

기상시간 조금더 일찍 일어나게 해주시옵고

 

급하다고 차임벨이 아니라 비상벨 누르지 않게 하여 주소서

 

휠체어 태울 때 깔려 죽지 않게 해주시고

할배들 다이어트 시켜 주소서

 

순한 양처럼 할배 할매들과 잘 지내게 하여 주옵소서

동시다발로 응급상황 생겨 뛰어다니는 일 없게 해주옵소서

 

잠자는 성질, 섬 머슴아 기질 안 나오게 해주소서

 

아침 살아서 대성당 인사 들이러 가게 하소서

~~~~~~아멘

밤마다 츨근 길에 깊은 바다와 같은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올려다보는 즐거움을 주셔서 감사하옵고

하루를 잘 마친 아침의 감사 기도를 드리게 해주소서

  

 

동료의 기도 덕분인지 오늘도 무사했다.  별일 없었다.

 

 

 

밤이 깊어도 어둠을 밝히는 새벽이 오면 밤 근무자는 아침을 맞기 위해 바쁘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5시 30분 어르신들 얼굴을 물수건으로 씻겨 드리고 요양원 밖으로 나왔다. 건너편 노인전문주택 위로 안개와 구름이 산자락에 걸려 해를 가리고 있다.

 

 

노인전문주택(가정사)에 계시는 어르신이 타고온 자전거가 우편함 아래에서 조용히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의 주인은 오늘도 어둠을 가르며 아침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요양원 성당으로 자전거를 타고  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빠지지 않고 성당을 찾아 기도로 위안 받는 어르신. 성당가는 길은 삶의 습관이 되어 버려 오히려 밥 먹는 것처럼 편안하다고 했던가.

 

 

비교적 건강한 어르신은 일어나자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붙어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다행히 주무시기 전과 달리 텔레비전 소리는 크게 하지 않는다.  식당에 어르신들 식사 준비를 하고 회복실로 돌아왔다.

 

 

긴 밤을 함께 지새운 동료도 부지런히 침대에 누워 계신 어르신을 휠체어로 모시고 있다.

 

 

아침이 밝아 오자 주간 근무자들이 하나둘 출근을 하고 휠체어를 탈 수 없는 어르신을 침대에 앉혀 식사 준비를 하면서 얼굴을 닦는다.

"야이 **야, 얼굴도 안 닦아주고"라며 내가 물수건으로 닦아 드린게 영 성에 차지 않는지 회복실 내 근무하는 주간 근무자에게 다시 얼굴을 닦아달란다.

 

 

 

씩씩한 군인처럼 테이블에 어르신들 식판이 2열 종대로 서 있다. 가위는 이가 부실한 어르신들을 위해 반찬을 자르기 위해 반찬이 오기를 밥 그릇 위해서 대기중이다.

 

 

하동할매가 애타게 직원을 부른다.

"직원아~직원아~"

막상 불러도 딱히 요구하는 말은 없다. 단지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다. 그저 허공을  휘두르는 손을 잡았다. 어르신의 차가운 손을 타고 어르신보다 더 따뜻한 내 체온이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주간근무자에게 밤근무 상황을 인수인계하고 주차장으로 걸었다. 화단 속 해바라기가 축 늘어져 있다. 아직 해가 떠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인가.

차에 앉아 시동을 걸고 룸미러를 보았다.  머리는 밤새 떡져 있고 눈은 휑하니 붉은 핏발이 두서너개 눈동자에 어려 있다. 차안에 어제 출근 때 마신 커피 옆에 다시 커피를 마셨다. 창문을 내리고 40여 분 거리의 집이 있는 진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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