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진주 김서방, 함양처가에 가면 꼭 들르는...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2. 10. 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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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보름달을 보고 잠이 들었다. 시월의 날이 밝았다. 경남 함양 상림공원으로 향했다. 아침을 먹기 바쁘게 처가에 남은 일부가 아니라 다수를 뒤로 하고 초등학교 이하의 아이들만 데리고 후다닥.

 

 

천년 숲 상림은 한낮에도 숲이 우거져 어둑하다.

 

 

숲은 단풍으로 갈아입기에 아직 이르고 꽃무릇은 벌써 절정을 지나 일부만 반긴다.

 

 

단풍이 아니라도 어떤가. 숲이 주는 그늘이 좋고 시원하다. 저만치 부르는 <나도밤나무>를 보면 씩 절로 웃음이 나온다. 밤나무와는 전혀 닮지도 않은 남남이면서도 밤나무라고 자칭한 이 <나도밤나무>의 전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옛날 옜날에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아주 어렵게 귀한 아들을 늦게 보고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웠다. 어느날 지나가는 스님께 없는 살림이지만 심성이 찾한 부부는 공양을 했다. 스님은 몇월 며칠까지 밤나무 1천그루를 심지 않으면 호랑이한테 귀한 자식이 화를 당할 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귀한 내자식을 위해 부부는 밤낮으로 1천그루를 심었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스님이 나타났다. 스님은 호랑이로 변하더니 아이를 잡아먹으려 했다. 1천그루를 심었다고 알았는데 그만 한 그루가 덜 심어진 것이다. 그 순간 저만치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나도 밤나무요~"하는게 아닌가. 호랑이는 가짜 밤나무를 알턱이 없고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밤나무와 전혀 닮지도 열매도 다른(나도밤나무는 빨간 열매를 맺는다) 이 나무가 나도밤나무가 되었단다.

 

 

숲 그늘 아래에서 고개 잠시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가을 햇살이 <나도밤나무>의 전설을 알려주는 듯 영글어 있다.

 

 

 

숲 절반 못미쳐 지압공원이 나온다. 아들녀석과 조카와 양말 벗고 몽글몽글 돌로 꾸욱꾸욱 눌렀다.

"아야, 아야~"

아프다고 절로 나오는 말을 가까스로 아이들 앞에서 참느라 고생했다.

 

 

지압공원 주위로 나무 백일홍으로 더 알려진 <배롱나무>가 마지막 붉은 빛을 빛내고 있다.

"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게 아니라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는 도종환 시인의 시<백일홍>으로 막바지에 이른 배롱나무의 아쉬움을 달랬다.

 

 

 

 

이 나무는 나무가지가 매끄러워 간지럼나무라고도 하고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나무라고도 한다. 매끄럽고 시원한 기운을 손가락 사이사이로 담았다.

 

 

한여름에는 연꽃이 하늘하늘거렸을 연못. 시멘트다리가 아닌 징검다리는 하나하나 건너면서 바라보는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블링크>라는 이름표를 붙인 연꽃은 시월에도 피었다.

 

 

꽃이 양귀비를 닮았다는 <물양귀비>. 꽃도 없고 양귀비를 본적 없기 때문인지 양귀비를 떠올려보려 해도 어렵다.

 

 

상림공원 한켠에는 아이들 놀이터와 잔디밭이 펼쳐져 눈이 즐겁게 한다. 아이들은 더 신났다.

 

 

시소에서 무게의 중심을 잡으며 서로의 몸무게가 더 많다며 흉을 본다. 흉을 보면서도 스스로들 웃음을 참지 못한다.

 

 

물레방아가 국내 최초로 실용화된 고장답게 함양 곳곳에서 물레방아를 만날 수 있다. 상림공원 여기저기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실학자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 선생이 1792년 안의(경남 함양군 안의면) 현감으로 부임하여 연중 수량이 풍부한 용추계곡의 입구인 안심마을에 우리나라 최초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실용화되었다고 한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 징검다리 건너갈때 뒤돌아 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새봄이 오기전에 잊어버렸나 /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노래 <물레방아 도는데(정두수 작사/박춘석 작곡)>의 노랫말이다.

 

 

물레방아 주위로 메밀꽃처럼 하얀 들꽃무더기가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붉은 색으로 익어가려는가 싶기도 하고...

다만 이름을 몰라 소중한 들꽃, 너의 이름을 불러줄 수 없다는 아쉬움뿐...

 

 

물레방아 고장 아니랄까 조각도 마패 대신 물레방아를 쥐고 있다.

 

 

손에 물들이기 좋은 봉숭아가 짙은 검자주빛으로 빛난다. 어릴적 누나가 손에 물들여주었는데. 아이들과는 그 열매를 총알이라며 던지곤 했다. 봉숭아 열매가 옷에 묻으면 정말 피가 난듯 옷에 불긋불긋했으니...

 

 

좀체 사진 찍어달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아이들이 내게 사진을 찍어달란다. 해찬이도 둘 사이에 슬쩍 얼굴을 넣는다. 

 

 

 

하늘밭은 향해 호미를 움켜쥔 힘찬 손이 있다. 이름하여 <금호미손>.

조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기록했다.

 

통일신라 진성여왕(887~897)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옛 함양 천령군의 태수로 부임하면서 잦은 물난리를 겪던 마을에 뚝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렸다. 손수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활엽수를 캐어다가 수백종류의 나무를 심어 지금의 상림을 조성했다고 한다.

고운 선생이 조성된 숲을 보고 도와준 산짐승의 노고를 치하하고 작업 종료를 선언하는 의미로 "금호미"를 던지자 숲속의 신목가지 위에 걸려 "떙그렁"하는 소리를 시작으로 천령군은 일체의 재앙이 들어오지 않는 낙토로 바뀌었다고 한다.

 

천년의 전설이 살아쉬는 동안 마음은 평안해졌다.

진주 김서방, 함양 처가에 가면 꼭 들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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