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곽재우는 숨어버렸고 이순신은 말이 없었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2. 9.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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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역전(舜臣力戰)의 모습. 광해군대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실린 이순신의 순국장면. 이순신은 순천의 고니시 군을 구출하기 위해 달려온 시마즈 함대를 요격하다가 장렬히 순국했다. 그림에 묘사된 이순신의 표정을 보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한겨레신문2012년9월29일자)

 

"지금 왜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명군 덕분이다. 우리 장사들은 간혹 명군의 뒤를 쫒아다니다가 요행히 적 잔병의 머리를 얻었을 뿐 일찍이 적 우두머리의 머리 하나 베거나 적진 하나를 함락시킨 적 없었다. 그 가운데 이순신과 원균 두 장수의 해상에서의 승리와 권율의 행주대첩이 다소 빛날 뿐이다. 만약 명군이 들어오게 된 이유를 논한다면 그것은 모두 호종했던 신료들이 험한 길에 엎어지면서도 의주까지 나를 따라와 천조에 호소했기 때문에 적을 토벌하여 강토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조일전쟁(임진왜란이라 폄하한 조선과 왜, 명나라의 국제전쟁)이 끝나자 조선 선조는 자신의 파천에 대한 무능을 명군을 부른 구국으로 둔갑시켰다. 선조는 논공행상에서 자신을 따라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갈 때 따라온 호종공신의 숫자를 무려 86명,선무공신18명,청난공신6명으로 선정했다. 호종공신에는 내시 24명이나 포함된다. 적들과 싸운 장수는 이순신과 권율 등 18명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선조는 명군을 높이평가하고 전쟁 때 영웅으로 떠오른 이순신과 곽재우를 애써 무시한다.

곽재우는 의병을 해산하고 숨어 버렸고, 이순신은 말이 없었다.

(한겨레신문2012년9월29일자 <한명기의 임진왜란>발췌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3889.html)

 

조선 민중들과 수도 한양을 버리고 자기 살겠다고 의주로 도망가고 여차하면 만주, 중국땅으로 내뺄려했던 선조.

한국전쟁 때 수도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이승만.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는가.

그럼 다시 한번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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