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악마의 유혹이 필요한 출근길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2. 10. 3. 08:30
728x90

 

"아빠, 잘 다녀오세요~"

"여보, 운전 조심하고 잘 다녀와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직장맘 아내의 배웅을 받고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선 시간은 8시30분.

근데 오전8시30분이 아니라 오후8시30분.

즉 저녁 8시30분이다.

나이트, 밤근무다.

오후9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7시30분까지.

차에 오르기전 근처 슈퍼에서 원두커피 블랙으로 샀다.

275ml를 운전하는 동안 들이켰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여러 이유가 있다.

한잔의 여유를 위해 마시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도 마신다.

또한 나처럼 밤 근무를 위해 잠을 쫒기 위해...

 

'기원전 3세기 에티오피아에서 키우고 있었다. 평소 얌전하던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뜯어 먹더니 밤새 흥분해 춤추듯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 열매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준다는 것을 알려지고 널리 퍼저 나간'커피.

 

커피를 통해 잠을 쫒고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게 하고 들이마셨다.

 

 

오후9시30분. 인수인계를 마치고 본격적인 밤근무에 들어갔다. 기저귀 교체하고 이기저것 살펴보면 자정을 향해간다.

자정을 넘어가면 몸은 '정신을 맑게하고 피로를 들어주는'커피의 유혹이 간절하다.

 

 

어르신들 침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텔레비전 위에 있는 조화(造花)가 취침등 아래 교교히 보인다. 시들지도 않는 조화. 오직 시간이 지나 자신에게 덧칠해진 색이 바래거나 질린 사람들에 버려지기 전까지 꽃인양 웃음 짓겠지.

 

 

일단 '악마의 유혹'을 넘겼다.

날이 바뀌고 새벽4시.

보름달이 점차로 기울어 가지만 아직 지붕 위에 달은 커다랗다.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길도 가로등 불빛이 아니면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둠이 짙다.

 

 

노인전문주택(가정사)쪽도 마찬가지고.

싸늘한 새벽공기 덕분에 정신이 번쩍한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나. 해가 뜨기 전 새벽5시부터 7시까지가 어르신들 아침준비로 바쁜 시간이다. 바쁘게 아침을 준비하면서 텅빈 침대가 을씨년스럽다. 주인 떠난 자리를 '아녜스'가 지키고 있다.

이 침대의 주인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어르신이 애지중지 여기는 인형의 애칭이다. 어르신이 돌아와 '아녜스'와 반갑게 만나길 기원한다.

 

 

아침준비가 끝나갈 무렵, 동료들이 하나둘 출근한다. 생기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동료와 반비례, 몸은 에너지를 원한다. 책상 한켠에 예수상 사이로 피로회복제가 함께 한다. 음료수 둥근을 따고 온몸으로 우주의 기운을 채운다.

퇴근...

다시 오후8시30분이면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