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 응석사 무환자나무, 의사가 싫어한다는 나무 이야기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6. 2.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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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모시고 병원 다녀오던 날이었습니다. 무병장수라는 말이 귓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차를 집현산 쪽으로 돌렸습니다. 응석사. 그곳에 무환자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저수지에서 절까지, 길이 먼저 건네는 인사

진주 도동지역에서 합천으로 가는 옛 국도변에 이르면 정평교차로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집현산 쪽으로 더 들어가면 응석사저수지가 먼저 반갑게 맞이합니다. 물은 겨울인데도 얼지 않고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산그림자가 수면에 반쯤 누우니 물빛은 초록과 회색 사이에서 흔들렸습니다. 둑 위에 서자 솔숲이 잉크처럼 내려와 물 끝을 찍었습니다. 저수지는 절로 들어가는 첫 문장 같았습니다.

저수지를 에둘러 가자 저만치 절이 성큼 다가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일주문 기와 끝은 제비 꼬리처럼 들렸고 단청은 세월에 씻겨 고요했습니다.

종루 아래에서 천장의 비천이 먼저 맞아 주었습니다. 붉은 기둥 사이로 계단이 뻗어 있었고, 한 칸 오를 때마다 절이 한 뼘씩 가까워졌습니다. 돌 틈에서는 작은 동자승이 미소를 품고 서 있었습니다. 눈은 반쯤 감겨 있고 입꼬리는 둥글었습니다.

종루 아래를 지나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우리를 거인의 나라에 초대받은 양 반깁니다.

한쪽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 네 아이는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웃으며 지나갔지만, 아이들은 침묵으로 절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경내에는 스님의 염불 소리가 잔잔히 흘렀습니다.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목소리가 목탁 소리와 함께 마당을 건넜습니다.

그 소리 사이에서 절은 한층 깊어졌습니다.

대웅전 앞 주련이 겨울 공기처럼 또렷했습니다.

佛身普遍十方中汪洋覺海渺難窮(불신보편시방중왕양각해묘난궁)”

자비와 깨달음이 한결같다는 뜻을, 바람이 찾아온 이들에게 전합니다.

 

무환자나무, 껍질이 들려준 오래된 처방전

관음전 뒤편에서 마침내 나무를 만났습니다. 전각 사이가 액자처럼 열리고 무환자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른 붓 같고, 가까이서는 오래된 사람의 등뼈 같았습니다. 줄기에 손을 대니 껍질이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겹겹이 벗겨진 결은 세월이 쓴 일기장이었습니다. 이끼는 낮은 숨을 쉬고 상처 자리는 굳은 마음처럼 단단했습니다.

뿌리는 돌과 흙 사이에 발가락처럼 퍼져 있었습니다. 지붕 너머로 뻗은 가지는 절을 안으려는 두 팔 같았습니다. 안내판에는 수령 약 280년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도선국사가 전염병을 막기 위해 심이었다고 전해옵니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이 나무 곁에서 마음으로 빌어 왔습니다. 덩달아 저 역시 나무의 줄기에 손을 얹고 지그시 눈을 감았습니다.

 

무환자나무라는

이름은 환자가 없기를 바란다는 뜻이라 합니다. 우리나무의 세계1에서는 중국에서 무환수를 근심 없는 나무로 여겼다고 적습니다. 열매는 단단하여 염주 재료가 되고, 껍질에는 사포닌이 들어 있어 옛날에는 비누 대신 쓰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문헌에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바람이 지나가자 마른 열매가 낮은 종소리를 냈습니다. 의사가 싫어한다는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환자가 없기를 바라는 뜻. 나무는 그 소망을 몸에 새기고 서 있었습니다. 껍질의 체온이 손금 사이로 천천히 스몄습니다.

저수지 쪽으로 돌아오는 길, 물 위 하늘이 좀 전보다 밝아 보입니다. 무병장수는 오래 사는 일이 아니라 오늘을 다치지 않고 건너는 일이라고 응석사 무환자나무가 일러주는 듯합니다. 다음 계절에 다시 오면 잎을 달고 더욱 풍성하고 건강한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 그때도 나는 잠시 손을 얹고 내 안의 바람을 내려놓을 것 같습니다.

 

진주 응석사

- 주소 : 경남 진주시 집현면 응석로 435

- 주차 : 사찰 입구 주차장(무료)

- 관람 : 상시 개방, 무환자나무는 관음전 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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