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빛이 머무는 밤, 진주빛마루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6. 1. 26.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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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피는 장미가 있다면 바로 진주빛마루입니다. 밤의 진주는 낮보다 말수가 적습니다. 대신 빛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옛 단목초등학교가 있던 자리, 이제는 진주빛마루라 불리는 공간에 들어서면 어둠은 곧바로 물러섭니다. 아내와 나란히 걷는 발걸음 앞에 빛이 먼저 길을 내어줍니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서 빛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집니다. 이 밤의 산책은 걷는 게 아니라 빛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갈대 물결 위로 열린, 금빛의 산책로

입구를 지나자 하얀 덱길이 부드럽게 휘어집니다. 길은 직선이 아니라 머뭇거리는 곡선입니다. 난간 아래에 박힌 작은 조명들이 발밑을 조심스럽게 밝히며 길의 윤곽만 남겨둡니다. 밝히는 것이 아니라 안심시키는 빛입니다. 그 빛을 받은 갈대들은 낮의 색을 버리고 밤의 금빛으로 몸을 바꿉니다. 바람이 스치면 갈대가 빛을 털어내듯 흔들립니다. 이곳의 조명은 갈대를 꾸미지 않고 갈대가 스스로 빛나도록 돕습니다.

하얀 표지판 위에 적힌 ‘ENTRANCE 빛마루 진입로라는 글자가 밤공기 속에 또렷하게 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길은 어둠 위에 그어진 한 줄의 서체처럼 보입니다. 조명은 과장되지 않았고 어둠은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자리를 지킨 채 나란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 길은 걷는 사람의 마음조차 조용히 풀어줍니다.

 

수면 위에 내려앉은 달, 그리고 머무름의 시간

실내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바뀝니다. 학교 복도였던 공간은 이제 빛이 걸린 회랑이 됩니다.

천장에 매달린 색색의 등불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등들은 장식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걸음이 빨라지지 않도록, 사람을 멈추게 하도록 빛의 간격이 조율되어 있습니다. 복도 끝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빛의 원근이 공간을 더 깊게 만듭니다.

공간의 중심에는 긴 테이블 형태의 수조가 놓여 있습니다.

물 위에는 팔각형 모양의 하얀 등불들이 떠 있고 벽면 끝에는 커다란 달이 내려앉은 듯 둥근 빛이 걸려 있습니다. 천장은 반사 재질로 마감되어 위와 아래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물 위의 등이 천장에도 떠 있고 내 머리 위에도 등이 떠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테이블에 둘러앉아 말을 나눕니다. 소리가 낮아지자 물 흐르는 소리가 공간을 채웁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이끼 낀 바위와 푸른 식물 사이로 물줄기가 조심스럽게 흐릅니다. 작은 팔각등은 유등축제의 화려함보다 소망의 단위로 쪼개진 빛처럼 보입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한 잔에도 실내의 빛이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마치 밤이 잠시 잔 속에 들어와 쉬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주의 빛은 원래 소식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의 밤, 남강 위로 띄워 가족의 안부를 묻던 언어였습니다. 그 빛이 이제 폐교라는 빈 문장 위에서 새로운 장소의 기억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공간의 완성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이 밤처럼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빛 속에 내려놓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 갈대밭의 금빛 잔상이 눈가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 빛은 따라오지 않았지만, 마음은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진주 빛마루

- 위치: 진주 대곡면 오방로 6 진주빛마루(옛 단목초등학교 부지)

운영 시간 : 09:00~21:00 / 빛마루 카페 11~21

관람료 : 없음(카페 음료 별도)

휴무일 : 매주 월요일

주차 : 전용 주차장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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