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 25

우연히 봄을 보았습니다, 집 앞 산책길에서 만난 매화와 동백

멀리 가지 않아도 계절은 이미 곁에 아침에 봄비가 내렸습니다. 쉬는 날이었고 어디로 가려던 계획은 틀어졌습니다. 집에 머물렀습니다. 오후가 되자 비가 잦아들었습니다. 집을 나섰습니다. 사는 아파트 단지 안을 어슬렁어슬렁 마실 가듯 걸었습니다.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20년이 넘었습니다.예전에는 테니스장이 있었고 아이들이 농구공을 튀기던 자리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풍경은 달라졌습니다. 나무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나무들입니다. 하얀빛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빛을 따라가니 매화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매향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잠시 멈췄습니다. 매향에 취했습니다. 매실이 주렁주렁 열릴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설중매가 사라져 아쉽습니다. 지금은 매취순으로 대신..

진주 속 진주 2026.02.28

영화가 나를 영화관으로 이끌 때, 진주엠비씨네

-소풍 같은 오전, 영화 한 편이 만든 선택의 이유 영화 한 편이 만든 선택의 이유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이끌었습니다. 평소 영화관을 자주 찾지 않습니다. 집에서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편이고, 그마저도 1년에 열 편 남짓일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가성비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산청작은영화관이 먼저 생각난 이유입니다.관람료는 7,000원. 익숙한 가격입니다. 다만 시간을 살펴보니 오전 10시 10분, 이른 시간대의 진주엠비씨네 시그니처 영화관 관람료는 9,000원이었습니다. 차이는 2,000원.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예매를 마친 뒤 가족 카톡방에 예매 사실을 올렸습니다. 소풍을 앞둔 전날처럼 작은 긴장이 밀려옵니다.아침이 밝아왔고, 진주엠비씨네로 향했습니다. 정식..

해찬솔일기 2026.02.27

산청 남사예담촌 유림독립기념관, 짚신에 담긴 파리 독립청원

신문을 접고, 다시 길을 나서다 신문을 읽다 문득 눈길이 멈췄습니다.1919년 3월,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조선 유림의 이름으로 독립을 호소한 청원서 원본이 공개됐다는 기사였습니다. 1919년 3월 29일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 선생 등 유림대표 137명이 서명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한 2천 674자의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날입니다. 오래된 문서 한 장이 오늘의 지면 위로 올라온 순간이었습니다. 그 문서를 바라보다 자연스레 한 장소가 떠올랐습니다. 산청 남사예담촌, 마을 안쪽에 자리한 유림독립기념관이었습니다. 몇 해 전 그곳을 찾았던 기억이 겹쳤습니다. 봄기운이 막 올라오기 시작한 날, 그 기억을 따라 다시 남사예담촌으로 향했습니다. ..

경남이야기 2026.02.26

홍매화 너머에서 만나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보물들

2월 20일자 동아일보를 펼치다 통도사 홍매화 사진에 시선이 멈췄습니다.분홍빛의 고운매화 아래로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장면입니다. 통도사를 떠올리면 봄의 홍매화가 먼저 언급됩니다. 풍경만 보고 돌아서기엔 이 절이 품은 시간은 너무 깊습니다. 꽃을 보기 위해 들어선 길이라면, 잠시 통도사의 숨은 보물들이 머무는 곳에도 발걸음을 옮겨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숨은 보물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꽃길을 지나, 보물의 자리로경부고속도로 통도사 나들목을 빠져나와 영축산으로 향하는 길은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줍니다. 옛 매표소에서 사찰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도 좋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무풍한송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도 좋겠지만, 이날은 박물관을 먼저 찾았습니다. 문화유산 ..

경남이야기 2026.02.25

3·1절 진주 가볼 만한 곳, 진주 3·1만세운동 발상지와 종소리의 길

다가오는 3·1절을 앞두고, 진주에서 한 번쯤 천천히 걸어보면 좋은 길이 있습니다. 기념일을 기념관 안에서만 보내기보다, 당시 진주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였던 자리들을 따라가 보는 길입니다. 진주의 3·1 만세운동은 거창한 무대가 아니라 골목과 장터, 종소리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시작했습니다. 골목에서 시작된 만세, 진주 3·1운동 발상지 하촌동진주 3·1운동의 출발점은 지금의 하촌동, 예전 이름으로 드무실이라 불리던 마을입니다. 말티고개 아래, 마을회관 옆에 놓인 작은 표지석 하나가 이곳의 의미를 전합니다. ‘진주와 서부 경남 3·1운동 발상지’. 진주에서 처음으로 독립 만세를 결의한 장소입니다.겉보기에는 평범한 마을 입구이지만, 1919년 이곳에서는 조용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고종의 장례식에 다녀온 이..

진주 속 진주 2026.02.24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알고 가면 더 보이는 단종의 유배

일 년에 극장을 찾는 횟수는 손가락에 꼽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아들은 친구와 이미 다녀왔다고 합니다. 영화 제목은 ‘왕과 사는 남자’입니다. 단종의 유배와 죽음을 다뤘다는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역사책에서 몇 줄로 지나쳤던 장면입니다. 영화는 그 몇 줄의 시간을 늘려 놓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호흡으로 그 시간을 채웠는지, 미리 알고 가면 더 보일지 궁금해졌습니다. 계유정난과 단종의 죽음, 실록이 멈춘 자리 1453년 계유정난은 조선 정치의 균형이 무너진 시점입니다. 문종의 조기 승하 뒤 어린 임금이 즉위했습니다. 김종서와 황보인을 중심으로 한 대신 세력이 국정을 주도했습니다. 종친의 정치 참여는 제한됐습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을 찾아갔고 철퇴가 휘둘러졌습니다. 한명회는 살생..

해찬솔일기 2026.02.23

왜 새끼줄이고, 자주색일까 – 삼국유사를 다시 읽다

“왜 자주색이지, 새끼줄은 또 뭐야?”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자줏빛 새끼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 끝을 살펴보니 붉은색 보자기로 싼 금합이 있었다. 그것을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삼국유사 「가락국기」의 한 대목이다.삼국유사를 읽다 보면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이 따라온다. 예전에는 그저 재미난 이야기, 신화쯤으로 넘겼던 장면들이다. 요즘은 이상하게도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왜 하필 자주색일까, 왜 새끼줄일까, 붉은 보자기와 금합, 황금알 여섯 개는 또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왜 이런 장치를 굳이 남겼을까 하는 의문까지 땅속의 고구마처럼 줄줄 따라온다. 요즘 나는 삼국유사를 예사로 읽지 않는다. 김원중의 번역본을 곁에 두고 ..

해찬솔일기 2026.02.23

경남산림박물관·경남수목원,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추운 바람에 움츠려 들었던게 언제인가 싶게 햇볕에 무거운 외투를 벗는 요즘입니다. 계절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 않습니다. 겨울과 봄 사이에는 늘 숨을 고르는 시간이 끼어 있습니다. 이럴 때 멀리 떠나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숲과 이야기가 함께 있는 곳, 경남산림박물관과 경남수목원이 나란히 자리한 이곳에서 겨울 외투를 벗습니다. 숨을 고릅니다. 봄을 맞습니다. 숲의 시간을 차분히 읽는 산림박물관수목원 입구에서 왼쪽은 산림박물관이고 오른쪽은 넓은 잔디 광장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입니다. 먼저 산림박물관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입구 주변 구조물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 바닥에 그림자를 남깁니다. 전시를 보기 전부터 숲의 분위기가 몸에 먼저 닿습니다. 로비에 들어서면 나무의 결이 공간을 채웁니다. 반듯함보..

진주 속 진주 2026.02.22

홍매화 너머에서 만나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보물들

2월 20일자 동아일보를 펼치다 통도사 홍매화 사진에 시선이 멈췄습니다.분홍빛의 고운매화 아래로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장면입니다. 통도사를 떠올리면 봄의 홍매화가 먼저 언급됩니다. 풍경만 보고 돌아서기엔 이 절이 품은 시간은 너무 깊습니다. 꽃을 보기 위해 들어선 길이라면, 잠시 통도사의 숨은 보물들이 머무는 곳에도 발걸음을 옮겨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숨은 보물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꽃길을 지나, 보물의 자리로경부고속도로 통도사 나들목을 빠져나와 영축산으로 향하는 길은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줍니다. 옛 매표소에서 사찰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도 좋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무풍한송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도 좋겠지만, 이날은 박물관을 먼저 찾았습니다. 문화유산 ..

경남이야기 2026.02.21

진주 말티고개, 말띠 고개 아니다

설날이 지나며 말띠 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진주 말티고개 이름도 함께 거론됩니다. 말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지명 때문입니다. 말띠와 관련된 곳으로 오해받는 이유입니다. 말티고개는 말띠와 관계가 없습니다. 동물인 말과도 연결되지 않습니다. 지명에 담긴 뜻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진주시 옥봉동과 초전동을 잇는 말티고개는 비봉산과 선학산 사이를 가르는 고갯길입니다. 비봉산은 진주의 주산으로 불립니다. 선학산은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산입니다. 두 산 사이를 잇는 자리입니다. 지형으로 보면 도시의 등줄기에 해당합니다. 서부 경남에서 진주 도심으로 드나들던 길목이었습니다. 말티라는 이름이 남긴 뜻말티고개의 본래 이름은 마현(馬峴)입니다. 한자 표기만 놓고 보면 말과 연관된 지명처럼 보입니다. 지명학적 해..

진주 속 진주 20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