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가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일이 있습니다. 큰아들 돌반지를 일찍 팔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무 해 전 돌반지는 5만 원이었습니다. 지금은 백만 원이 넘습니다. 시간은 금값을 바꾸었습니다. 기억의 무게도 함께 달라졌습니다. 1월 28일자 동아일보 지면에서도 같은 감정이 스쳤습니다. 신문 제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금은값 폭등에 ‘함평 황금박쥐상’ 27억→386억”.
기사에 따르면 순금 162kg과 은 281kg으로 만든 함평 황금박쥐상은 금값 급등으로 가치가 386억 원을 넘겼습니다. 2008년 제작 당시 재료비는 약 27억 원이었습니다. 18년 만에 13배 이상 오른 셈입니다. 가로 1.5m, 높이 2.1m의 이 조형물은 은으로 된 원형 위에 순금으로 만든 황금박쥐 6마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관광객 유입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때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금값이 오를 때마다 다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혈세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기사 속에서 오래 머물게 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혈세 낭비’라는 표현입니다. 혈세라는 말은 1872년 일본 메이지 정부가 징병제를 공포하며 발표한 문서 「徵兵吿諭(징병고유)」에 등장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것을 혈세라 부른다. 살아 있는 피로 나라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혈세는 비판의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병역 의무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설명의 언어였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의무를 피에 비유해 설득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사회에 스며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단어의 방향은 바뀌었습니다. 혈세는 국가에 바치는 피가 아니라 시민들의 시간과 노동과 인내를 함부로 사용한, 낭비의 개념을 담았습니다.
가정맹어호,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금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전국을 유람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깊은 산속에서 과부를 만납니다. 호랑이가 출몰하는 곳이었습니다.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었지만, 과부는 산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묻자 과부는 산 아래에는 가혹한 세금이 있다고 말합니다. 공자는 그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입니다. 세금은 맹수보다 사람을 더 멀리 떠나게 만든다는 인식이 이 고사에 담겨 있습니다. 과부는 산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함평 황금박쥐상은 같은 자리에 서 있었지만, 금값이 오르자 평가는 달라졌습니다. 혈세 낭비라는 말은 조형물의 크기나 재료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쓰임과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세금이 목적을 잃는 순간, 단어는 날선 칼로 다가옵니다.
저는 혈세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말에는 불신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먼저 깔립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없고, 신뢰 없는 세금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늘도 신문 지면에서 이 단어를 만납니다.
#황금박쥐상 #함평황금박쥐상 #금값폭등 #금값상승 #혈세낭비 #혈세뜻 #세금의의미 #공자 #가정맹어호 #생각하는칼럼
'해찬솔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문 사진 속 커피 한 잔이 멈추게 한 이유 (2) | 2026.01.27 |
|---|---|
| “밥 먹었냐”는 인사, 『삼국유사』에서 다시 묻다 (0) | 2026.01.08 |
| ‘무용지용’, 장자가 묻는다-쓸모 있는 사람인 척 살아온 나에게 (0) | 2026.01.06 |
| 2026년 새해 계획|초등학교 1학년이 된 해찬솔의 공부와 기록 (0) | 2026.01.01 |
| 새벽책상 (0) | 2025.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