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신문 사진 속 커피 한 잔이 멈추게 한 이유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6. 1. 27.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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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커피값·물가가 말해준 세금과 복지의 구조

 

남강 쪽 창으로 겨울 햇살이 들어오던 아침이었습니다. 걷지 않는 날에도 남강은 늘 하루의 방향을 정해 줍니다. 신문을 읽다 눈이 멈췄습니다. 기사 내용이 아니라 사진 속 종이컵 때문이었습니다. 그린란드에서 열린 덴마크 군함 개방 행사. 군함의 좁은 선내로 들어온 주민들 손에 들린 커피 종이잔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전투 장비도 국기도 아닌 커피였습니다. 짙은 검청색 바탕의 종이컵을 들고 무리 속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 사진은 126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 이후 그린란드 문제를 취재하러 파견된 특파원의 기사에 담긴 장면이었습니다. 정치 기사 한 귀퉁이에 실린 사진이었지만, 제 시선은 종이컵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커피를 따라가다 덴마크 물가와 세금, 복지 구조까지 보았습니다.

사진 속 커피는 덴마크 전역에서 볼 수 있는 Circle K 커피로 보였습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30~45덴마크 크로네. 우리 돈으로 6천 원에서 9천 원 수준입니다. 한국 기준으로 높은 가격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 가격을 두고 크게 말하지 않습니다. 물가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물가와 커피값이 비싼 구조

덴마크의 커피값에는 임금과 세금, 복지 비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페나 편의점 직원 시급은 130~180크로네. 한화 기준 25천 원에서 35천 원 정도입니다. 부가가치세 25%가 붙습니다. 커피 한 잔 가격의 4분의 1은 세금입니다. 덴마크에는 최저임금법이 없습니다. 노사 협약으로 임금이 정해집니다. 그 비용이 상품 가격에 반영됩니다. 팁 문화가 없는 이유도 같습니다. 서비스 비용이 이미 가격 안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덴마크 재무부와 OECD 자료는 세금의 사용처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의료, 교육, 돌봄, 실업, 노후가 주요 항목입니다. 병원비 부담이 거의 없고 대학 등록금도 낮습니다. 실직 시 일정 기간 소득이 보전됩니다. 세금은 행정 비용이 아니라 생활비로 기능합니다. 높은 물가는 복지 비용의 전가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의 유지 비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의 세금 인식과 복지 신뢰

덴마크 시민들은 세금을 손해로 보지 않습니다. 덴마크의 조세 문화를 연구한 학술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Danes pay their taxes maybe not exactly with pleasure, but at least with appreciation, since they are aware of the common good that the welfare state provides(덴마크 사람들은 세금을 즐겁게 내지는 않지만,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공동의 선을 알고 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 문장은 덴마크에서 세금이 비용이 아니라 공동체 유지 비용으로 인식된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출처: Karen Boll, Taxing Assemblages, PhD Thesis, 2011)

 

세금은 국가에 맡겨 둔 개인 보험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의료와 교육, 노후가 개인 책임이 아니라 사회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떠올리는 생각은 단순합니다. 누군가의 생활, 아이의 학교, 노인의 병원, 개인의 미래가 가격 안에 들어 있다는 인식입니다.

 

이 인식은 감정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입니다. 조세가 실제 서비스로 환원된다는 반복된 경험이 조세 수용성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동합니다.

사진을 다시 떠올립니다. 군함 안에서 커피를 마시는 주민들의 표정은 가볍습니다. 군함을 구경하러 온 자리에서 국가 시스템을 마주한 모습처럼 보입니다. 총 대신 커피를 든 장면은 덴마크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무기는 군함이 아니라 세금입니다. 방패는 미사일이 아니라 복지입니다.

 

생각은 한국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도 기초연금을 지급합니다. 매달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이 연금은 어르신들의 하루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기반이 됩니다. 병원비와 약값, 난방비 같은 필수 지출을 보완합니다. 곁에서 보면 금액보다 의미가 더 큽니다. 국가는 나를 잊지 않았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연구에서도 기초연금 수급 가구의 빈곤 위험 감소와 소득 보장 효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초연금은 이전소득이 아니라 노후 소득 안전망으로 기능합니다.(출처:한국 사회정책학회(2010). 기초노령연금의 빈곤 완화 및 소득 보장 효과 분석)

 

세금,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금은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서로에게 건네는 생활비입니다. 오늘 낸 세금이 내일 누군가의 하루를 살게 한다면 커피값은 비싸지 않습니다. 커피 한 잔은 나라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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