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쌀국수 한 그릇으로 한 해를 건네다
12월의 마지막 날 점심이었습니다. 직장동료 한 사람이 앞장섰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습니다. 연말이라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길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정리하는 자리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청읍 주택가 골목, 숨은그림찾기처럼 만나는 자리
식당은 산청읍 주택가 골목 안쪽에 있었습니다.

번화한 길에서 한 발만 비켜나도 풍경은 달라집니다. 큰 간판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소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문을 엽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자리, 숨은그림찾기처럼 마음을 낮춰야 만나는 곳입니다.
메뉴는 단출합니다. 우리도 쌀국수와 반미 샌드위치, 반세오. 연말의 점심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맑은데 가볍지 않은 국물, 속에 남는 평화
가장 먼저 이름이 오른 건 쌀국수였습니다. 동료들의 평은 한결같았습니다.
“여긴 쌀국수죠.”

먼저 작은 접시에 나온 선명한 노란색 반찬은 베트남식 채소 절임, ‘도 추어(Đồ chua)’입니다. 무를 식초와 설탕으로 가볍게 절여 만든 찬거리로 입안의 묵은때를 벗기듯 헹굽니다.

이윽고 쌀국수가 옵니다. 먼저 국물을 숟가락 한입 떠먹었습니다. 국물은 맑은데 가볍지 않습니다. 숟가락을 넣으면 향이 앞서지 않고, 삼킨 뒤에야 깊이가 따라옵니다. 과하지 않게. 국물의 흐름을 정리해 준다. 도 추어 한 젓가락 집어 먹고 다시 국물을 마시면, 육수의 깊이가 더욱 또렷해지는 기분입니다.

문득, 어젯밤 술을 한 잔 마신 뒤라면 이 국물이 더욱더 고마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괜스레 미리 해장국을 먹었다는 핑계로 저녁에 한 잔 마시고 싶게 속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자극 없이 스며들고, 급하지 않게 내려앉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방식과 닮아 있었습니다. 잘한 일과 아쉬운 일이 섞여 있지만, 결국은 무사히 건너온 시간이라는 사실처럼요.

반미 샌드위치는 자연스럽게 나눠 먹게 됩니다. 바게트는 단단하고 속은 촉촉합니다. 고기와 채소가 층을 이루되, 어느 하나 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빈대떡을 닮은 반세오(베트남식 부침 요리)는 그 사이를 메웁니다. 쌀가루 반죽에 각종 채소와 고기, 해산물 재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부쳐나왔습니다. 쌀국수와 반미 사이에서, 식탁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말이 길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입니다. 음식이 대신 설명해 주니까요.

그릇이 비워질 즈음, 인사도 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올해도 수고 많았습니다.”

짧은 말들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에게 기대어 버텨온 시간과 앞으로의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12월 31일의 점심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쌀국수 한 그릇이 한 해의 마침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잘 먹고, 잘 건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던 점심. 새해의 첫날, 그 기억이 조용히 입안을 맴돕니다.
※ 포엔식당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62번길 23-7(주택가 골목, 그냥 지나치기 쉬움)
-영업시간: 11:30 ~ 19:00 (브레이크타임 14:00~16:30, 변동 가능)
-휴무일: 매주 토요일·일요일 정기휴무
-한줄평: 숨은 그림찾기처럼 만나는 맛집, 쌀국수 국물이 깊어 기억에 남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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