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야기

밥 한 사발이 만든 또 하나의 전선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5. 12. 15. 03:32
728x90
밥 한 사발이 만든 또 하나의 전선

― 실록으로 읽는 임진왜란의 식문화 충돌

 
전쟁은 무기만으로 치러지지 않습니다. 동아시아국제전쟁(임진왜란)을 기록한 실록을 찬찬히 읽다 보면, 칼과 창보다 먼저 부딪힌 것이 밥상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군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밥을 먹었고, ‘당연함’의 차이는 때로 전투만큼이나 날카로운 갈등을 낳았습니다.
 

실록 속 명군의 밥상, ‘天字號飯을 만나다

 

선조 26년(1593) 1월 12일 자 『조선왕조실록』에는 명나라 병부 주사 원황(袁黃)이 정리한 군율 문서, 곧 금약(禁約)이 실려 있습니다.

금약에 등장하는 것이 천자호반·지자호반·인자호반, 명군의 등급별 식사 규정입니다.
 
天字號飯 : 고기, 두부, 채소, 절인 생선, 밥 한 사발, 술 세 잔
地字號飯 : 고기, 두부, 채소, 밥 한 사발
人字號飯 : 두부, 절인 새우, 밥 한 사발
 
(『조선왕조실록』 선조 26년 1월 12일 정묘,〈兵部主事 袁黃 所出 禁約〉 원문보기: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눈에 띄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휘관과 병사를 가르더라도 밥의 양은 모두 ‘한 사발’로 동일합니다. 차이는 반찬에만 있습니다. 세 등급 모두에 빠지지 않는 음식, 바로 두부입니다.

 

두부는 사치가 아니었다

 
조선의 눈으로 보면 전쟁통에 두부까지 요구하는 명군의 식단은 지나치게 세세하고 사치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명나라의 기준에서 두부는 달랐습니다. 두부는 검소함의 상징이었고, 콩밥처럼 사기를 떨어뜨리는 음식이 아니라 병사를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단백질이었습니다.

명군은 밥에 콩을 섞는 대신, 쌀밥은 유지하고 반찬으로 두부를 요구했습니다.
그 요구는 호화가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선이었습니다.
 
이 식단표는 단순한 급식 요청이 아니라 “이만큼은 보장하라. 병사들이 함부로 약탈하지 않는다”라는 명군식 전쟁 질서의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밥상, 엇갈린 상식

 
같은 시기 일본군은 하루 쌀 5홉, 오늘날 기준으로 약 생쌀 750g을 정확히 배급받았습니다. 반찬은 단출했지만, 밥의 양만큼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곡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주에서 전선까지 밥을 옮길 길이 막혀 속을 태웠습니다.

명군은 은으로 봉급을 받았지만 은을 밥으로 바꿀 시장이 없었습니다. 문서로 밥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자의 밥상에서 너무도 당연했던 기준은 조선 땅에서 만나는 순간, 갈등이 되었습니다.

동아시아국제전쟁, 임진왜란은 무력의 충돌이기 이전에 생활의 충돌이었습니다.
 
실록 속 ‘天字號飯’이라는 네 글자는 말합니다. 전쟁은 언제나 칼보다 먼저 밥상 위에서 시작된다고. 밥 한 사발, 두부 한 모에 담긴 이야기가 임진왜란을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사진은 국립진주박물관 전시물을 촬영한 것입니다.
 
#동아시아국제전쟁 #임진왜란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임진왜란식문화 #명나라군대 #조선역사 #역사읽기 #전쟁과음식 #두부의역사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