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야기

세 남자의 길 위에서 — 수원 화성에서 되찾은 사이의 온도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5. 11. 26.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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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일 아침, 진주의 공기는 유난히 낮고 고요했다. 첫째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오늘이 오래 기억될 하루가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둘째는 바로 오늘 대전에서 자격시험을 치러야 했다.

휴게소 식당에 마주 앉아 돈가스를 조용히 써는 녀석의 손끝에는 긴장보다 책임감이 먼저 보였다. 군복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목이 어느새 성숙해진 듯했다. 첫째는 돈가스를 같이 먹으며 말없이 동생의 마음을 다독였다. 조용한 밥상 위에서, 아버지와 두 아들의 마음은 작은 숨결처럼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시험장에 도착해 둘째를 내려주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짧은 말 뒤로 걸어가는 그의 등이 건물 모퉁이에 사라지자, 차 안에는 금세 빈자리가 생겼다. 또렷하게 남은 빈자리였다.

빈틈을 조용히 받아 안으며 나는 첫째와 함께 수원으로 향했다.

수원에 일찍 도착해 찾은 곳은 화성박물관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혜경궁 홍씨 가교도가 벽면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었다. 색색의 행렬 속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첫째는 그 작은 얼굴들에 오래 시선을 걸었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가는 첫째의 깊이를 바라보며, 나는 아버지로서 지나온 시간이 문득 마음을 울리는 것을 느꼈다.

유리 진열장 안의 거북 모양 인장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정조가 어머니를 위해 만든 이 작은 물건이 품고 있는 마음의 무게가, 시험장에 내려놓았던 둘째의 뒷모습과 겹쳐보였다.

360도 영상실에서는 정조의 행렬이 웅장하게 흘러갔다.

화면 속 북소리와 말발굽 소리는 우리 두 사람의 호흡까지 고요히 맞추어 주는 듯했다.

박물관을 나온 뒤 찾은 곳은 남문통닭이었다.

1970년대 시장 골목에서 시작된 수원 통닭거리의 역사는 오래된 기름 냄새처럼 골목 구석구석 스며 있었다.

양철 그릇에 담긴 치킨은 얇고 바삭한 껍질, 촉촉한 속살, 마늘간장의 묵직한 향으로 두 사람의 말을 대신했다. 첫째와 나는 거의 말없이 치킨을 뜯었지만, 튀김옷처럼 서로의 서먹함도 바삭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뒤 근처 화성행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붉은 기둥에 내려앉은 가을빛은 첫째의 어깨를 단정하게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말이 없어도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걸었다. 행궁 마루에 비친 두 개의 그림자는 가을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나란히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장면에서 나는 내가 걸어온 시간과 아들이 걸어갈 시간을 동시에 바라보는 기묘한 감정을 경험했다.

관람, 관광을 끝내고 수원 도심을 벗어나 연수원 앞에 도착해 첫째가 내렸다. 그에게서 차 열쇠를 받았다. 짧게 웃으며 조심히 내려가세요라고 말한 녀석은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끌고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진주로 돌아오는 길, 첫째의 차 핸들을 잡은 내 손끝에 오늘 하루의 장면들이 천천히 되감기듯 흘렀다. 박물관의 행렬, 행궁의 바람, 남문통닭의 뜨거운 온기, 시험장에 들어가던 둘째의 어깨. 그 모든 장면이 부드러운 끈처럼 한 줄로 이어졌다.

며칠 뒤, 가족 단톡방에 알림이 떴다.

둘째 합격했어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날의 빈자리와 걱정까지 한순간에 밝혀주는 빛이었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그날의 하루를 다시 떠올렸다.

그날참 좋았다.”

오늘의 따뜻함을 비로소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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