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9살 아들에게 받아쓰기 시험을 본 아빠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2. 4. 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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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10시. 4월 22일 오후 6시 근무를 마치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회사모임을 끝내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다. 안방에는 해찬과 찬솔이가 자고 거실에서는 막내와 아내가 앉아있다. 해찬솔네는 방이 3개고 해찬과 찬솔의 방이 따로 있지만 다들 안방에서 잔다. 비단 난방비 절감하려고 한방에만 보일러 트는 겨울만이 아니라 대부분.

 

 

해솔은 숙제를 아직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홉살 녀석의 학교 숙제는 주말동안 있었던 일을 일기로 쓰기였다.

 

 

해솔 표정이 영 아니다.

 

"호 밑에 ㅁ(미음)붙이면 홈이 되잖아~"

"그냥 엄마가 써주면 안돼~"

 

해솔과 아내가 실랑이다. 해솔은 글쓰기가 서툴러 엄마가 하얀 백지에 자신이 부르는 내용을 적어주면 보고 뻬겨서 자신의 일기장에 적으려한다. 아내는 해솔이가 아는 글자를 천천히 일러주고 받침을 가르쳐준다. 해솔은 성에 차지 않아 인상을 꾸긴다.

 

 

2주전의 숙제도 주말에 있었던 일, 일기쓰기였다. 토요일인 4월7일에는 남해 듈립꽃밭에 간 것을 몇자 적었다.('보물섬에서 찾은 보물 'http://blog.daum.net/haechansol71/267참조)오늘은 첫문장이 형네 가족들과 홈플러스갔다에서 멈췄다. 아니 오늘의 일기가 아니라 어제(4월21일)의 일기다. 오늘은 별로 적을 게 없다며 어제의 일기를 오늘 적는다. 해솔은 아직 글쓰기가 서툴러 받아쓰기도 0점도 심심하지 않게 받아온다. 엊그제 20점을 받았다. 다행히 그 앞날보다는 10점 보다 더 높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다행히 해솔의 담임선생님은 "해솔이가 아직 쓰기가 부족해도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늦게 될 아이"라며 오히려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격려를 많이 해주신다.('4가지 있는 부부 학교에 가다 '참조http://blog.daum.net/haechansol71/266 )해솔에게 칭찬도 많이 해주고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일도 부여해주셔서 해솔이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칭찬 받은 이야기는 이제 곧잘 가족들에게 들려준다. 공책에도 선생님의 응원문구가 자랑스럽게 적혀 있다.

 

틀렸다고 빨간줄을 45도 각도로 휙 그어버리는 게 아니라 맞추었다고 동그라미를 크게해주는 선생님. 덕분에 해솔의 시험지 등에는 비록 정답보다 틀린게 많아도 사선의 그 징그러운 줄은 없다.

 

"참, 네 고집도... 니 마음대로... 나는 몰라"

아내는 이말을 끝내고 해솔의 일기숙제를 봐주지 않고 휑하니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졸지에 두 모자의 실랑이를 지켜보는 내가 바톤을 이어 받았다.

 

 

 

나는 아내와 달리 해솔이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적었다. 내가 해솔이게에 받아쓰기 시험을  치룬셈이다. 일기는 날마다 그날 겪은 일이나 느낀 점 들을 적는 글 이라고  보리국어사전(보리출판사)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해솔 일기장은 일기가 아니라 일지다. 일지는 하루하루 일어난 일을 적은 글이기에.

 

그럼 내 블로그 <해찬솔일기http://blog.daum.net/haechansol71>는 일기인가 일지인가. 나역시 학교 다닐때 일기숙제 때문에 특히 방학때 곤혹을 치룬 경험이 있다. 일기를 검사하는 선생님을 의식해서 좋은 행동한 것 위주로 적으려 했다. 더구나 선생님에 대한 불만 등의 속내는 더우 드러낼 수 없었다. 또한 일기는 그날의 느낌을 콕 찍어 적으라는 말에 주눅들어 참 어렵게 여겼다. 일기 쓰기 싫은 날은 동시 등을 적으며 간단한 감상을 곁들이며 때운 적도 있다.

 

 

 

먹을 물을 끊이기 위해 가스렌지에 물 올리고 컴퓨터 켜서 사진 정리하려는데 안방에서 책 읽는 소리가 들린다. 좀전까지 내게 해솔의 숙제를 맡기고 먼저 들어간 아내가 해솔과 나란히 누워 책을 읽는다.

 

 

<도토리신랑>을 번갈아 가며 읽는데 정겹다. 아니 부럽다. 아내는 곧잘 내게 '아들만 넷을 키운다'며 나까지 싸잡아 덩치 큰 아들로 둔갑을 시킨다. 아내는 쉬는 일요일 집에서 낮잠까지 자면서 아이의 숙제를 챙기지 못해  늦게 직장에서 퇴근한 내게 맡겨버렸다. 그나마 다행은 내 판박이 같은 외모를 가진 막내가 나 닮아 공부 못한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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