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장기두는 사람 어디갔냐"고 놀리겠지요.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2. 4.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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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이 붉은 한나라를 잡고 마흔둘이 초잡다.

 

항우와 유방의 대결을 재현을 장기.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가 한나라를 잡고 마흔을 넘긴 내가 초나라를 잡았다. 보통은 나이가 많거나 상대적으로 잘하는 이가 붉은 색의 한나라를 잡지만 막내는 한자체를 휘갈겨쓴 글을 읽지 못한다. 물론 나역시 한자를 간결하게 쓴 글자를 읽지 못하지만 장기판의 기물들은 익히 아는 처지라 내가 초를 잡았다.

 

 

 

아직 장기 기물들이 가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에 나에게 지적(?)을 받기도 한다. 휴대폰 게임 속의 장기는 가는 길이 훤히 드러나 쉽게 가는 모양인데 장기판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나름 휴대폰 장기게임에서는 제법 전적이 있는듯 보이는데 휴대폰 장기게임이라는 게 원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조금만 변화를 주면 이기기 쉽다.

 

아무튼 막내는 장기판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 대고 열심히 수를 찾았다. 그가 찾은 수는 간단하다.

"아빠, 한번만 물리면 안돼? 안 돼~"

 

 

 

나는 지금의 막내나이 때 프라스틱 모양의 코끼리며 말로 이루어진 장난감 장기로 엉터리 기물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나름 실력을 쌓고는 감히 지금 현재의 내나이를 가진 선친께 장기를 청했지. 아버지는  "허허~"하며 떄로는 답답한 표정이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막무가내로 장기기물을 옮기는게 장기의 기초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갑갑하셨을거다.

 

아무튼 한해 두해 가끔 아버지와 장기를 두다 중학생이 되었다. 받은 용돈으로 장기관련 책도 구입해 읽고 나름 아버지를 이기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말에 큰 산처럼 높기만 하던 아버지를 이겼다. 나도 그때 외통수에 걸려 생각중인 아버지께 "장기두는 사람 어디 갔는지 알아요?"라며 내 스스로 대견스러워 놀렸던 기억이 있다. 결국 아버지는 소주를 큰 맥주잔에 따라 마시며  큰 유리병(500ml)의 콜라를 사주셨다. 기특했나 보다. 부자간의 장기도 오직 대학만 들어가기 위해 공부만 해야한다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드문드문으로 줄었다.  스무살을 넘겨서는 친구들과 놀기 바빠 아버지와 같이 장기를 두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그해 여름 선친은 돌아가셨다. 해솔이와 장기를 두면서 아직은 내가 녀석에게 "장기두는 사람 어디 갔냐?"고 놀린다. 머지 않아 막내가 나에게 이 말을 앙갚음 하겠지...

 

 

 

 

근데 이 녀석은 정말 장기를 두다 화장실로 대변보러 갔다. 화장실을 타고 녀석의 변 냄새가 참~

장기에서 졌다고 짜증낼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알까기로 하잖다.

 

 

뭐 열심히 장기알로 알까기를 했다...

 

아버지 보이세요. 당신의 손자와 지금 장기도 두고 알까기도 합니다. 이 녀석도 제가 당신께 그랬듯 "장기두는 사람 어디갔냐"고 놀리는 날이 오겠지요.

아버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5월6일 당신이 누운 자리에 새 이불을 준비해서 가져가려합니다.

아버지, 들리세요, 보이세요, 우리 이렇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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