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그저 길을 나섰을 뿐인데 진주라는 보물을 만나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5. 9. 30.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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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실로 천행이다(此實天幸).”

충무공 이순신 장군마저도 이날의 승리를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1592916(음력), 13척의 전선으로 10배가 넘는 300여 척의 일본 수군에 맞서 전라남도 진도와 해남 사이의 좁은 명량해협에서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명량대첩이라고 부릅니다.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 중일 때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원균은 거제도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 대부분을 잃고 패전하며 전사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다시금 조선의 바다를 구한 그날의 기적은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승용차로 2시간 30분이 넘는 진도 앞바다에서 이루어진 명량대첩이 진주에서 이루어졌다니 웬 뜬금없는 말이냐 싶지만 사실입니다.

 

뜬금없는 듯한 사실을 찾으러 수곡면으로 향했습니다. 진양호에 둘러싸여 진주 도심에서 곧장 가는 길이 없습니다. 덕분에 진양호를 둘러 가는 동안 하늘을 품은 호수를 두 눈에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습니다.

 

수곡면에 이르면 먼저 커다란 딸기 조형물이 우리의 눈길을 이끕니다. 전국 딸기 생산량의 30%, 우리나라 수출용 딸기 생산량의 70% 이상이 수곡면을 비롯해 대평면 등 진주 인근 지역에서 생산됩니다. 딸기로 유명한 고장답습니다.

 

면 소재지가 가까워질 무렵이면 요산마을이 나옵니다. 마을에는 보물 제379호인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晋州妙嚴寺址三層石塔)’ 가 있습니다. 이정표를 따라 마을 속으로 100m 가면 석탑이 나옵니다. 고려 시대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4.6m의 삼층석탑입니다. 2층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석탑 1층에 빛바랜 염주가 놓여 있습니다. 석탑 서쪽에는 문짝이 돋을새김해 있습니다. 고려 민중의 간절한 바람에 덩달아 두 손을 모았습니다.

 

진주 속 보물을 만나고 다시금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면사무소 앞 삼거리에 이르면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를 알리는 표지석이 마치 나침판처럼 우리에게 목적지를 일러줍니다.

 

하동 쪽으로 내달리다 창촌 삼거리 못 미친 곳에서 차를 세웠습니다. 아름드리나무가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운 아래에 <독립 투사 심호섭 선생>을 기리는 비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1~2분 더 가면 덕천강 강가에 진주 농민 항쟁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진주 농민 항쟁은 1862(철종 13) 214(양력 314) 조선 시대 말기 조세제도인 삼정(三政·전정·군정·환곡)) 의 문란과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백낙신(白樂莘)과 진주목사 홍병원(洪秉元)을 비롯한 수령, 아전, 토호 층의 수탈에 진주 민중이 들쳐 일어난 봉기입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는 진주민란으로 배웠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생각이 달라지면 평가도 대접도 바뀝니다.

 

이 걸이 저 걸이 갓 걸이, 진주(晋州) 망건(網巾) 또 망건, 짝발이 휘양건(揮項巾), 도래매 줌치 장도칼(장독간), 머구밭에 덕서리, 칠팔 월에 무서리, 동지 섣달 대서리.”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또는 언가(諺歌)’라 불리는 이 노랫말은 1862(철종 13) 진주 농민 항쟁을 이끈 류계춘이 지어 진주 백성들이 부른 우리나라 최초 혁명 가요입니다. 이 노래는 2년 뒤 동학 농민 항쟁 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로 이어졌습니다.

 

農事(농사)/ 하늘 뜻 섬기는 일/ 농부(農夫)/ 사람을 섬기는/ 하늘 외다/ 하늘 보고/ 침 뺃지 말라/ 사람이 곧/ 하늘이니/ 人乃天(인내천)人乃天탑 앞에 세워진 정동주 시인의 <하늘농부>라는 시가 동학 농민 항쟁의 뿌리가 여기임을 넌지시 일러줍니다. 탑 주위에는 항쟁에 참여했던 류계춘을 비롯한 이들의 이름 석 자가 아로새겨져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들의 꿈과 바람이 하늘 향해 솟아오른 원통 계단을 타고 올라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여기 강너머에 하동 옥종면 고성산성이 설핏 보입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 하동 옥종면은 진주목(晉州牧), 진주 지역에 속했습니다. 1894년 전라도에서 농민군들이 떨쳐 일어나자, 같은 해 7월 하동을 비롯한 서부 경남 농민들도 봉기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한때 진주성을 함락하기도 했지만, 일본군의 반격으로 고성산성을 중심으로 항거했습니다. 1014일에 5천여 명으로 구성된 농민군은 이곳으로 출병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농민군 186명이 전사했습니다.

 

항쟁 탑을 뒤로하고 지리산 쪽으로 한 걸음 더 나가면 덕천강이 친구인 양 따라옵니다. 강둑 옆 너른 들에 비닐하우스들이 숲을 이룹니다. 비닐하우스들은 모두 딸기를 재배합니다. 이 비닐하우스들 사이로 <이충무공 진배미 유지(遺址)> 비석이 있습니다. 백의종군 중이던 장군께서 이곳에서 군사들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진배미를 둘러보고 나와 근처 원계마을로 향하면 백의종군로 표지석이 마을 입구에 서 있습니다. 아울러 백의종군 중이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삼도수군통제사를 다시 제수받았다는 <손경례가()> 이정표도 나옵니다.

 

마을회관 앞 수백 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지나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손경례 집이 나옵니다. 물론 500여 년 전의 건물은 아닙니다. 마당에 들어서면 무성한 감나무 아래로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 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적힌 나무 표지판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허름한 처마 아래에는 빛바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도 붙어 있습니다. 잠시 마루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2014년 배우 최민식이 열연한 영화 <명량> 속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조선 수군에게 한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합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한다면 반드시 살 것이다.”

 

가늠하기 힘든 세월 속에 역사의 기억조차 아스라이 사라져 흐릿합니다.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역사는 조금씩 말문을 열고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알면 다시 보이고, 관심을 가지면 더 깊이 보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묻혀 오늘 하루의 감사함을 잊을 때면 진주의 역사 현장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그저 조용히 삶의 쉼표를 찾아 목적지를 따라 길을 나섰을 뿐인데 진주 속 진주라는 보물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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